[현장 르포] 고기 코너 식기류로 채운 홈플러스 “수저라도 팔아 다시 일어나겠다”

김병권 기자 2026. 6. 1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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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안받겠다”던 직원들
한달반 지난 현재 상황은
16일 오후 2시 15분쯤 방문한 서울 구로구 홈플러스 신도림점 신선식품 코너 매대에 육류나 생선 대신 PB(자체 브랜드) 식기류가 진열돼 있다. 홈플러스 직원이 이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김병권 기자

16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홈플러스 신도림점. 3600평이나 되는 매장에 손님이 10명도 안 됐다. 이 마트에 근무하는 직원(23명)이 손님보다 많았다. 매대도 휑했다. 신선 코너엔 고기나 생선 대신 국자 같은 식기가, 주류 코너엔 술은 없고 텀블러와 코펠이 진열돼 있었다. 그마저도 PB(자체 브랜드) 상품이었다. 업체들이 납품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 매장에서 15년째 근무 중이라는 40대 직원 김모씨는 “월급을 못 받아 고1 아들의 주택 청약까지 깼다”며 “그래도 회사가 인건비와 임대료를 아꼈으니 살아나기를 기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없는 고기 대신 수저라도 팔아 회사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뜻이었다.

홈플러스가 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1996년 ‘까르푸’란 이름으로 문을 연 홈플러스는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그러나 이커머스라는 거대한 파고에 휩쓸려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수년간 이어진 적자로 작년 3월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지난 4월 30일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단 회사부터 살리고 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노조의 ‘월급 포기 선언’ 후 한 달 반이 흐른 지금, 상황은 더 악화했다.

작년 2월 126곳이었던 홈플러스 점포는 지난달 104곳으로 줄었다. 이달 초에도 37곳이 추가로 문을 닫아 현재 영업 점포는 67곳으로 줄었다. 홈플러스 직원 수도 작년 2월 2만명에서 현재 9000명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점포가 문을 닫으면서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난 것이다.

본지가 찾은 홈플러스 신도림점은 그나마 살아남은 점포다. 하지만 분위기는 암울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23명은 일자리를 잃지는 않았지만, 지난달부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월급 포기를 선언한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직원들도 월급을 못 받긴 마찬가지다. 회사가 월급을 줄 형편이 못 돼 직원 9000명 모두 월급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한때 국내 2위 대형 마트였던 홈플러스 노조는 강성으로 꼽혔다. 2007년 사측이 비정규직 계산원 등 1000여 명을 해고하려 하자 512일간 파업해 비정규직 2000여 명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던 노조다. 그랬던 노조가 ‘월급 포기’를 선택한 것은 노조원 상당수가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회사가 경쟁력을 잃게 된 과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쿠팡에 이어 알리·테무·쉬인(알테쉬) 등 온라인 쇼핑몰이 순식간에 유통망을 장악해 나갔다.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홈플러스 경영은 계속 악화됐다. 이에 최대 주주인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매각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현 시점에서 급한 불을 끄더라도 회생까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적잖다.

유통 전문가들은 대형 마트의 수익 모델인 ‘규모의 경제’가 무너진 점이 홈플러스 회생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말한다. 대형 마트는 납품업체에서 물건을 싼값에 대량으로 매입해 수익을 남긴다. 그러나 지금처럼 매장 수가 줄어들면 납품업체를 상대로 한 가격 협상력을 잃게 된다. 이는 영업 수익 악화로 이어져 급기야 납품 중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신도림점뿐만 아니라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상당수 홈플러스 매장의 매대는 점점 비어 가고 있다.

지난 11일 찾은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도 정육 코너 매대에 고기보다 아이스박스와 효자손, 나무 수저가 더 많이 진열돼 있었다. 주류 코너에도 술 대신 홈플러스 PB 제품인 ‘심플러스 고구마칩’ ‘심플러스 감자칩’이 채워져 있었다. 정육 코너의 한 직원은 “매장에 물건이 안 들어오는 상황에서 매대를 비워둘 순 없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도봉구 홈플러스 방학점 식품 코너 사이사이엔 모자나 잠옷, 이불 같은 물건이 진열돼 있었다. 식품 코너를 찾은 한 손님은 “물건이 없네”라고 한마디 하더니 장을 보지 않고 마트를 떠났다.

지난 3월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기업 회생에 실패하면 긴급 운영 자금으로 투입한 1000억원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홈플러스는 지속적으로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추가로 대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메리츠금융은 “배임 논란을 피하고, 주주 설득을 위해 대주주인 MBK 김병주 회장의 보증 등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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