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주가는 화끈, 환율은 냉랭…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한국경제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2026. 6. 1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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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와 비명 교차하는 K경제
코스피 질주, 경상수지 사상 최대
고성장에 가계부채 위험 낮아져
반면 원화 추락하고 일자리 부족
초과세수 일회성 나눠먹기 안돼

2026년 대한민국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모순된 상황에 놓여 있다. 6월 2일 종합주가지수가 8933을 기록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6월 5일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1562원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1571원에 근접했다. 전자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대한민국을, 후자는 곧 무너질 수도 있는 대한민국을 보여준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

올해 3월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인 373억달러에 달했고, 4월에도 282억달러를 기록했다. 4월까지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026억7000만달러로 2024년 흑자액(999억7000만달러)을 넘어섰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작년 연간 경상수지 흑자(1230억5000만달러)의 84%를 이미 달성한 것이다. 거침없는 대한민국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은 대한민국 고질병 해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98.7%에 이르렀다. 위기감에 휩싸인 정부는 지난 4월 2030년까지 80% 수준으로 안정화한다는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했다. 하지만 GDP가 급증함에 따라 2030년이 아니라 당장 올해 말에 80%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고갈 우려도 사라지는 모양새다. 세수가 예상보다 덜 걷혀 고심하던 재정당국도 올해에는 최소 15조원 이상 추가 세수를 기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진격’ 중이다.

원화 가치 하락, 일자리 뒷걸음질

반대쪽 그림자는 서늘하다. 이란 전쟁 발발 후 원화 가치는 6월 5일까지 6.9%나 하락해 이집트 파운드(-8.1%), 인도네시아 루피아(-7.6%)에 이어 42국 가운데 셋째로 낙폭이 컸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24년 5027만원에서 2025년 5257만원으로 4.6% 증가했지만, 달러로 환산하면 3만6963달러로 2024년보다 0.3% 상승에 그쳤다. 2014년 이후 12년간 3만달러 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 경제는 제자리걸음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늘고 고용이 증가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일 없이 그냥 쉬었다’고 답하는 20대 후반(25~29세) 청년이 78만4000명에 이른다. 20대 후반 인구가 1년 사이에 7만2000명 줄어드는 사이 경제활동인구는 10만9000명 감소했다. 일자리로 보면 한국 경제는 뒷걸음질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몸에 상반된 두 경제가 공존한다. 반도체와 주식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경제가 앞에 있고, 퍽퍽한 월급과 사라지는 전세·일자리로 고통받는 일상의 경제가 뒤에 있다. 주요 경제 지표는 앞쪽에서 나온다. 누군가는 햇살과 파도를 즐기지만 다수의 삶은 갯벌에서 질척거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대출을 조일수록 내수는 질식한다. 환율을 지키려 금리를 올리면 가계와 중소기업엔 부담으로 작용한다. 어느 쪽도 시원하게 손대지 못한 채, 좋은 경제 수치와 나쁜 경제 수치가 나란히 쌓여만 간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숫자들을 들이대는 동안 대한민국은 점점 더 분열되고 있다.

초과 세수는 개혁·투자에 써야

미래에 대한 비관과 우울이 팽배해지던 상황에서 찾아온 예상 밖의 반도체 호황이 행운이라면, 그 행운을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갈 기회로 바꾸는 게 우리의 실력일 것이다. 언젠가 막을 내릴 호황을 한계에 이른 기존 경제 시스템을 전환하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막대한 초과 세수는 나눠 먹기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곳에 투입해야 한다. 수백조 원에 이르는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한전이나 LH 등 공기업 개혁에 요긴하게 써야 한다. 없는 살림에도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고 밀어붙였기에 대한민국이 번영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3저 호황과 IMF 외환 위기가 10년 사이에 찾아왔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통화가치 추락한 대만은 외환보유액 늘린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 /EPA 연합뉴스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화가 지속적으로 약세를 기록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국가는 우리의 반도체 라이벌 대만이다. 대만의 경제지표는 화려하다. 2025년 경상수지 흑자는 1811억달러였고 2026년 1분기 기준 외환 보유고도 6050억달러로 세계 4위에 이른다. TSMC로 대표되는 반도체 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미국의 AI 투자 열풍에 힘입어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로 벌어들인 엄청난 달러가 쌓이고 있지만 대만달러는 국제적으로 보면 약세 통화로 분류된다. 국가 간 통화가치를 평가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빅맥지수에 따르면 대만달러는 2026년 1월 기준으로 59.6% 저평가돼 있다. 조사 대상 53국 통화 가운데 최하위다. 우리 원화가 38.9% 저평가된 것과 비교하면 정도가 심하다.

대만 달러의 약세 원인은 국가 차원에서 수출 증대를 위해 환율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2012년까지 중앙은행이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직접 집행해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환율을 통제했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이 심화되자 생명보험회사를 통한 해외 자산 투자 확대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저평가된 환율이 유지되면서 대만 수출업체들의 경쟁력이 강화되었고, 대만 중앙은행은 상당한 외환보유고를 쌓고 있다.

대만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국제통화기금(IMF) 회원국이 아니라 외환 위기 발생 시 국가 존립이 어렵다는 공포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저부가가치 제조업 일자리 보호 목적도 작용한다. 첨단제조업 국가라는 인식과 달리 대만 제조업 고용의 70%는 저부가가치 일자리로, 환율을 통한 경쟁력 유지가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이자를 낮게 유지하고 통화를 대규모로 발행하면서 집값 급등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초과 세수 아일랜드·호주, 미래 대비한 펀드 설립

정부는 올해 최대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별도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정 산업의 호황으로 얻어진 세수를 기반으로 별도의 기금을 조성한 사례는 아일랜드와 호주가 대표적이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글로벌 빅테크들이 몰려 있어 '실리콘 닥스(Silicon Docks)'라고 불리는 리피강 하구 일대./Visit Dublin

아일랜드는 세금 혜택을 겨냥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거 유입에 따라 법인세 수입이 10년 사이에 7배 증가했다. 이런 수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고, 한번 재정 지출을 높이면 세수 감소시에도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아일랜드 정부는 2024년 고령화 비용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미래 아일랜드 펀드(FIF)를 조성했다. 2026년 2월 기준 운용 규모는 136억유로(약 24조원)에 이른다.

호주는 2000년대 초반 광업 호황에 따른 재정흑자와 동시에 고령화 및 연금부채 증가로 인한 재정압박이 예상되면서 대비를 목적으로 미래펀드를 2006년에 설립했다. 설립 이후 2006~2008년 총 605억 호주달러를 납입했고, 이후 운용수익 재투자만으로 2026년 3월 기준 2690억 호주달러(약 287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두 나라의 운영사례를 살펴보면 기금설립에 앞서 세수가 향후 줄어도 지속적으로 납입하는 방식을 선택할지, 아니면 특정 시기에만 납입하고 이후에는 운용수익에 의존할지를 사전에 결정해야 한다. 또한 납입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지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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