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재명]“반도체, 무조건 韓은 아니다”… 흔들리는 K반도체 공식

그동안 한국 사회는 메모리 반도체의 한국 생산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대만인들이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를 공급망 독점으로 국가 안보를 지키는 ‘호국신산(護國神山)’으로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삼성전자 기흥, 화성, 평택 공장과 SK하이닉스 이천, 청주 공장을 잇는 다음 D램 공장도 당연히 한국 내에 만들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최 회장 발언에서 엿보이듯 올해 들어 벌어진 여러 상황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한국 올인’을 다시금 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노조 리스크다. 삼성전자는 이번 성과급 협상에서 영업이익을 일괄 배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깨고 이익의 10.5%를 반도체(DS) 직원들에게 주기로 했다. 협상 전 경영의 기본이라고 강조하던 ‘이익이 없으면 성과급도 없다’는 원칙도 일부 적자 반도체 사업부에 억대 성과급 지급을 약속하면서 깨졌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파업으로 생길 천문학적 손실 추정액과 함께, D램을 100% 국내에서 만드는 점이 사 측의 협상력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도체 산업이 그동안 강점으로 꼽혔던 한국 집적으로 인해 자동차, 조선 등의 산업보다 오히려 파업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반도체 산업으로 부는 정치 외풍도 올해 유독 거세다. 기업마다 연간 영업이익 200조∼300조 원의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예상되자 지자체들은 반도체 공장 ‘핌피(PIMFY·제발 우리 앞마당에 지어 달라)’에 나섰다. 6·3 지방선거 때 광역단체 16곳 중 6곳이 기업 의사와 관계없이 ‘반도체 공장 유치’를 공약으로 냈다. 일부 지역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업들이 정해진 것이 없다는데도 “조만간 OO사가 우리 지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운다”고 공언하고 있다. 만약 그런 계획이 실제로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지역민 원성은 기업 쪽으로 향할 공산이 크다.
기업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떠밀리는 투자’다. 기업은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보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자금을 투입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업성보다 정치적 요구가 앞서는 투자는 다르다. 경영 판단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으로 투자에 나서는 순간 실패 후 벌어지는 정치적 책임을 고스란히 기업이 떠안아야 한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산업의 ‘쌀’인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천문학적 보조금과 세제 혜택으로, 일본은 신속한 인허가와 행정 지원으로 반도체 기업들을 끌어들인다. 반면 우리는 별다른 혜택 없이 ‘지역 균형개발’만을 명분으로 우리 반도체 기업 공장의 지방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말 반도체를 지방에 보내고 싶다면 그에 맞는 투자 환경부터 만든 뒤 100% 기업 선택에 맡겨야 한다.
박재명 산업1부 차장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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