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칼이 있다” 고조되는 李대통령-정청래의 ‘사생결단’ 전운
‘민심’ 앞세운 대통령, ‘당심’ 강조한 與대표…2028년 공천권 주도권 싸움 관측
친명계 책임론 속 친청계 “당 흔들기” 반발…“각자의 칼, 서로 향하면 상처”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이길 곳을 졌다, 이겨야 하는 곳을 졌다고 하면 문제가 다르다. 선거에서 (대통령은) 중립해야 하는데, 표정은 중립이 잘 안 되더라. 이것도 결국은 국민의 경고라고 생각한다."(6월8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 항상 국민의 마음, 민심을 살피는 자세가 여당일 때나 야당일 때나 항상 필요한 우리의 기본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6월10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은 여당과 정부에 대한 감시·견제·공격이 중요하지만 여당은 주어진 권력으로 책임을 지는 능력과 실적, 포용과 통합이 중요하다. 야당이 군대나 창과 가깝다면 여당은 농사와 그릇에 가깝다는 게 제 생각이다."(6월13일, 이 대통령, SNS에)
"이재명 대통령의 수많은 어록 중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한다'라고 했던 말씀을 참 좋아하고 늘 가슴에 새기며 임해왔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 당의 주인은 당원이다."(6월16일, 정 대표, 중앙위원회에서)
당청 균열의 징후일까, 확대 해석이 부른 착시일까. 지방선거 이후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관계를 둘러싼 긴장론이 여권 내부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대통령이 '민심'을 앞세워 여당의 선거 결과에 사실상 경고음을 낸 반면, 정 대표는 연일 '당심'을 강조하며 당의 독자적 공간을 넓히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2028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시작부터 어긋난 '명청동행'…전대 앞 해체 기류?
이재명과 정청래, 두 사람의 동행은 출발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친명(親이재명)계 주류는 정청래 후보가 아닌 박찬대 후보를 지원했다. 이 대통령도 당대표 당시 원내대표로 손발을 맞췄던 박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당심은 달랐다. 권리당원의 압도적인 선택을 받은 정청래 후보가 61.74%의 득표율로 당권을 거머쥐었다. '명심'의 낙점을 받지 않고도 당심을 통해 집권여당의 대표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지난 10개월간 공개적인 충돌을 자제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공존을 이어왔다. 정 대표는 당선 직후 이 대통령과 자신을 "운명공동체"로 규정했다. 실제 강한 대야 투쟁과 입법 드라이브를 통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당·정 모두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원팀'을 자처했다.
그러나 투표함이 닫히자 여권 공기가 달라졌다. 정치권 예상대로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을 탈환·수성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평가는 박했다.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 등 "이겨야 하는 곳"에서 패했다며 "성공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실제 선거 결과와 당의 전략에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청 이상 기류는 의전 장면에서도 포착됐다. 이 대통령이 9일 유럽 순방길에 오를 당시 정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는 공항 환송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 대표가 대통령의 해외 순방 환송에 빠진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가 참석 인원을 최소화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전 아홉 차례 환송에 모두 참석했던 정 대표가 열 번째 행사에서 빠졌다는 점은 여러 해석을 낳았다.

"정청래 연임 성공 시 李 '연성 레임덕' 우려할 것"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진 않고 있다. 다만 '완벽한 원팀'이라기엔, 두 사람의 미묘한 시각차가 감지된다. 이 대통령이 선거 이후 '여당의 열정은 우리 진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며 당의 외연 확장을 강조하고 나선 반면, 정 대표는 1인 1표제 등을 띄우며 당원 민주주의 정착에 방점을 찍은 모습이다.
정 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강원도가 크게 승리했다"며 "강릉에서 최초로 민주당 시장이 나와 의미가 크고, 강원 지역 18개 기초단체장 중 11대 7로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16일 중앙위원회에서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당 운영도 당대표가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당원이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이른바 '이재명식 성공 모델'을 이 대통령 없이 재현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개딸'로 상징되는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친문(親문재인)계를 넘어섰다면, 정 대표는 강성 권리당원과 친청 지지층을 앞세워 '명심'의 벽을 넘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미 명심 없이 당권을 쥔 데다, 권리당원의 전당대회 영향력을 강화하는 1인 1표제까지 통과시킨 만큼 정 대표가 당심을 무기로 포스트 이재명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에 이어 다음 전당대회마저 '명심'없이 당권을 쥘 경우 이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차기 여당 대표는 2028년 총선 공천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청와대가 친명 복심인 김민석 총리를 대항마로 내세워 정 대표 연임 저지에 나설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 총리는 전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승리라고 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며 "성찰 속에서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15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정청래 대표가 다시 당선되면 전면적 레임덕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성 레임덕'이 올 수 있다"며 "의원들이 공천권을 가진 정 대표에게 줄을 서게 되면 당 장악이 안 된다. 입법권도 정청래 대표가 좌우하게 되니, 이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가 큰 것"이라고 말했다.

격화하는 친명-친청 갈등에 "모두의 상처" 우려도
여권 내부에서는 당권 경쟁이 자칫 진보 진영의 대분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정 대표를 향한 친명계의 반발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이언주 의원이 "당이 대통령 지지율에만 의존한다"며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한데 이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정 대표를 향해 "선거 결과에 사과하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압박했다.
정 대표가 직접 참전하지 않고 있지만, 친청(親정청래)계의 반발 수위도 점차 고조되는 양상이다. 문정복 민주당 최고위원은 정 대표 책임론을 "당 흔들기"로 규정한 뒤 "선거가 끝나면 평가가 필요하지만 평가가 분열의 언어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한 최고위원이 비공개회의에서 정 대표 사퇴론을 반박하며 "당 대표 사퇴만이 아니라 내각 총사퇴까지 해야 할 일"이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파 간 공방은 더 격화되고 있다. 해당 발언이 대통령 책임론, 나아가 정권 책임론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당내 갈등의 불씨가 커지는 분위기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과 당대표의 메시지는 모두 정치적 무게를 갖고 있고, 그 안에는 각자의 칼이 있다"며 "그 칼이 당을 성찰하게 하는 긴장으로 작동할 수는 있지만, 서로를 향하는 순간 당청 관계 전체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당청 갈등 기류가 정부 여당 지지율의 동반 침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해 "(여당 지지율 하락 원인은)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민심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대처 등에서 나타난 부족함, 당내 갈등으로 인한 전당대회 조기 과열화 등이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작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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