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출신 '재즈 거장' 압둘라 이브라힘 별세

나확진 2026. 6. 1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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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만델라 취임식서도 연주
2013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서 공연도
지난 3월 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는 압둘라 이브라힘[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나확진 특파원 = '재즈 거장'의 반열에 오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압둘라 이브라힘이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6일(현지시간) AP,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브라힘의 유족은 그가 전날 짧은 투병 끝에 독일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브라힘은 재즈에 남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과 선율을 결합해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은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흑인 분리·차별 정책) 정권의 잔혹함에 맞서는 목소리 역할을 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추모 성명에서 "엄청난 창작 활동으로 남아공의 명예를 높인 세계 시민이자 국제적 아이콘의 타계를 국가적으로 애도한다"며 "음반과 세계 곳곳에서의 공연을 통해 수십년간 인류애를 나눈 그의 열정과 헌신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1934년 남아공 케이프타운 교외에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아돌프 요하네스 브란트였다

네 살 때 부친을 여의고 교회 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영향으로 음악을 접하고 학교에서 작곡을 배웠다.

미국에서 수입된 재즈 음반에 심취한 그에게 친구들은 '달러'라는 별명을 붙였고, 그는 이후 '달러 브랜드'(Dollar Brand)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백인 정부가 아파르트헤이트를 법적으로 강제하면서 그의 연주 활동은 점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201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종 집단을 위해서만 공연해야 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음악가도 같은 인종이어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58년 '달러 브랜드 트리오'를 결성한 데 이어 이듬해 또 다른 남아공 재즈 거장인 휴 마세켈라를 영입, '재즈 이피슬스'로 확대했다.

이들이 1960년 발표한 동명 앨범은 남아공에서 흑인 연주자만으로 구성된 밴드가 녹음한 최초의 재즈 음반으로 알려졌다.

정권의 흑인 음악가에 대한 압박이 점점 강화되는 가운데 결국 그는 이후 부인이 된 여가수 사티마 베아 벤저민과 1962년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이들의 공연을 본 미국 재즈 거장 듀크 엘링턴과 함께 1964년 음반을 낸 뒤 이듬해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1968년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온 그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을 압둘라 이브라힘으로 바꿨으며 많은 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 기자회견에 참석한 압둘라 이브라힘[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74년 앨범 '만넨버그 이즈 웨어 잇츠 해프닝'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산물인 케이프타운의 흑인 거주지 만넨버그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상징 음악이 됐다.

1976년 학교 교육을 백인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로 시행하라는 정권의 지침에 맞선 흑인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이를 경찰이 강경 진압해 600여명이 사망한 '소웨토 봉기'가 터졌다. 그는 이때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위한 자선콘서트를 불법으로 열기도 했다.

이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프랑스 영화 '초콜릿'과 '죽음은 두렵지 않다' 등 영화 음악과 발레, 오페라 음악도 작곡했다.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역사적 취임식에 참가해 연주하기도 했다. 당시 만델라 대통령은 그의 연주를 듣고 "바흐? 베토벤? 우리는 더 훌륭한 사람이 있잖아"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년에 독일로 이주한 이브라힘은 2024년 89세에 마지막 앨범을 발매하고 올해 3월 케이프타운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도 참여했을 정도로 일생을 음악과 함께 했다.

이브라힘은 2009년 남아공 정부로부터 예술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을 받았으며, 2019년에는 미국 국립예술기금위원회(NEA)에서 '재즈 마스터'로 선정됐다.

2013년 10월 3일 가평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무대에서 압둘라 이브라힘이 피아노 연주를 선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브라힘은 한국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다.

그는 2013년 경기 가평군에서 열린 '2013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에 초청돼 개막식에 참가하고 직후 공연해 국내 팬들을 만났다.

당시 그의 연주 영상은 유튜브 자라섬 국제 페스티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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