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생활 데이터 활용한 신용평가…공정 대출·새 불평등 ‘두 얼굴’

김상범 기자 2026. 6. 1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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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하는 ‘대안 신용평가 모델’

통신료·배달앱·쇼핑·납세 내역…
머신러닝 통해 상환능력 점수화
저신용자에 대출 기회 확대 효과
시중은행들 잇단 도입, 상품 내놔
스마트폰 사용 적은 고령·소외층
알고리즘 편향 나타나 불이익 우려

소액결제, 택시 이용내역, 쇼핑 목록…. 이런 생활 기반 데이터가 ‘빚 잘 갚을 사람’을 판별하는 데 쓰인다면 어떨까.

카카오뱅크는 비금융 데이터로만 구성된 ‘대안 신용평가 모델’을 활용해 2023년 이후 총 1조2000억원 규모의 중·저신용 대출을 추가 공급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이 중 약 12%는 기존 신용평가모형으론 ‘거절 대상’이었던 차주들이다. 카카오뱅크는 소비·생활 관련 데이터를 통해 이들의 실제 상환능력을 새롭게 평가·발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안 신용평가’가 최근 금융권의 화두다. 통신요금·월세·납세 이력, 결제·소비 패턴 등 비금융 데이터에 머신러닝 같은 새로운 분석기술을 적용해 차주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대출·연체 등 ‘과거 금융 기록’에 의존해온 전통적 방식과 소비·생활 기반의 현금흐름과 상환 행태를 신용도 측정에 반영한다. 2010년대 핀테크 발전과 함께 등장했고, 최근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 기조와 맞물리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지난달 소셜미디어에 “언제까지 연체 기록이나 카드 이력만 쳐다보고 있을 것인가. 낡은 신용평가의 틀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고 올리면서 기폭제가 됐다.

사회초년생, 주부, 은퇴자 등 금융 거래실적이 적은 ‘신파일러(Thin-filer)’부터 소득이 불규칙한 자영업자·프리랜서, 신용점수는 낮지만 꾸준히 빚을 갚아온 ‘상환의지가 분명한’ 중·저신용자까지 아우르자는 게 대안신용평가의 취지다. 다만 알고리즘 편향과 데이터 한계로 새로운 금융 배제와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터넷은행 이어 시중은행 속속 도입

금융권 입장에서도 기존 평가 방식에서 보이지 않던 우량 차주를 새로 발굴하고, 잠재 위험을 더 정밀하게 가려낼 수 있다. 신용점수 900점 이상 차주가 절반에 육박하는 ‘신용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점점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는 현실적 고민도 깔려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카카오뱅크는 2022년 업계 최초로 롯데멤버스, 교보문고, 금융결제원 등의 가명 데이터를 활용한 독자 모형 ‘카카오뱅크 스코어’를 개발해 신용대출 심사에 적용해왔다. 토스뱅크도 자체 개발 모형으로 중·저신용자 재평가에 나서고 있고, 케이뱅크는 통신요금 납부 내역, 데이터 사용량 등을 심사에 반영한다.

시중은행들도 가세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배달앱 ‘땡겨요’를 통해 확보한 매출·결제 데이터로 소상공인 신용을 평가하는 모형을 운영 중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그룹 계열사의 고금리 신용대출을 연 7% 이내 은행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한 ‘우리 원 드림(WON Dream) 갈아타기 대출’을 내놨다. 통신·소액결제 등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금융정보만으로는 평가가 어려웠던 비임금 근로자, 주부 등에게도 대출 신청 기회를 열어준 게 특징이다. KB국민은행은 알뜰폰 사업 ‘KB리브엠’으로 확보한 통신 데이터를 연체 가능성 판단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대안신용평가의 효과는 연구로도 확인된다. 강유지 카카오뱅크 매니저와 김재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020년 5~10월 카카오뱅크 대출 신청자 331만여명의 금융·대안 데이터를 머신러닝 기법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대안 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모형의 예측력(AUC)은 87%로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 표준신용점수(82~84%)를 웃돌았다. 연구진은 “특히 금융 소외계층, 비급여 근로자, 젊은층 등 신용 기록이 부족한 집단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모형 정교해질수록 ‘거절 도구’ 될 수도

그러나 대안신용평가가 곧바로 저신용자의 폭넓은 대출 기회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평가 모형이 정교해질수록 차주의 부실 리스크를 더 세밀하게 가려내는 ‘필터링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대출 연체가 없던 사람도 통신료·월세 납부가 갑자기 불규칙해지거나 하면 대안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알고리즘의 ‘편향’ 위험도 만만치 않다. 앞서 미국에서는 대안신용평가를 활용한 핀테크 대출에서 동일 신용등급의 흑인·라틴계가 백인보다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스마트폰·모바일뱅킹 이용이 어려운 고령층·저소득층은 대안 데이터 자체가 생성되지 않아 오히려 평가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정윤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안신용평가 도입이 금융소외계층의 신용 접근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배제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의 품질·표준화 문제, 대안신용평가의 법적 정의나 활용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지 않아 은행마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 등도 한계로 꼽힌다.

기존 은행권의 대안신용평가 활용도 아직은 일부 소액 신용대출 등에만 국한돼 있다. 처음부터 중·저신용자 대출을 목표로 출범한 인터넷은행과는 주요 고객층에서부터 대출 실행·운영 방식, 위험 감수 정도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실 차주를 걸러내려면 정확하고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부담거리”라며 “그렇게 도입한 평가 모델이 꼭 중·저신용자들에게 폭넓은 대출기회를 제공할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이에 신용평가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인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을 꾸려 신용평가 등 금융시스템 작동 방식을 전면 재점검하고 있다. 매출·상권·업종 등 비금융 정보를 활용하는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모형(SCB)’도 금융위 주도로 마련돼 하반기부터 일부 금융사에 시범 도입된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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