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년에 1초도 안 틀린다…원자시계 넘는 원자핵시계 [오철우의 과학풍경]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시간이란 무엇일까? 막상 생각해보면 답하기 쉽잖은 물음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시간은 오래도록 철학의 주제였다. 우리가 시간을 익숙한 실체처럼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시간을 붙들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시계 장치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시계의 발전사는 곧 자연의 흐름을 인간 문명 안으로 길들이고 조직화해온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얘기되곤 한다.
오늘날 원자시계는 인류가 만든 가장 정확한 시간 측정 장치이다. 원자 껍질을 이루는 전자들에서 나오는 빛 에너지의 고유한 주파수(진동)가 괘종시계의 기준 추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론적으로 최고 수준의 원자시계는 300억년에 1초의 오차를 나타낼 정도로 정밀하다. 우주의 나이보다 더 긴 시간에도 이런 주파수가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우주 질서의 놀라운 안정성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원자시계는 오늘날 지피에스(GPS) 위성, 인터넷 통신망, 금융거래 시스템 등에서 초정밀 동기화에 활용된다.
그런데 원자시계를 넘어서는 초정밀 시계가 또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달 초 중국 칭화대 연구진과 오스트리아 양자과학기술센터 연구진은 전자가 아니라 원자의 중심인 원자핵을 이용한 시계를 제작해 시연하는 데 각각 성공했다고 거의 동시에 발표했다. 아직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공개 논문으로 발표됐지만, 그 개념이 처음 제안된 1970년대 말 이래 원자핵시계가 실제 장치로 처음 구현된 것이다.
이미 충분히 정밀한 원자시계가 있는데 원자핵시계가 또 주목받는 이유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단단하게 뭉친 원자핵이 전자에 견줘 외부 자기장이나 전기장의 영향을 덜 받아 훨씬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토륨-229라는 방사성 원소의 원자핵이 특별한 주인공이다. 다른 원자핵들은 제어하고 측정하기에 너무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토륨-229 원자핵만은 오늘날 기술로 도전해볼 만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오랫동안 난관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러다 최근 몇년 새 토륨-229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를 제어하고 측정할 수 있는 자외선 레이저 기술이 개발되면서 연구개발이 급진전했다.
중국과 오스트리아 연구진은 따로 연구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토륨-229 원자핵들이 포집된 불화칼슘 결정체에다 원자핵을 들뜬 에너지 상태로 만들기에 딱 맞는 주파수의 자외선을 쏘고, 또한 원자핵이 흡수하고 방출하는 빛 에너지의 고유한 주파수를 측정했다. 고유한 주파수는 마치 시계추의 똑딱거림 신호처럼 활용된다. 초기 개발 단계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원자시계보다 10배 더 정밀해질 수 있다고 한다.
원자핵시계는 단지 시간 측정만이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캐는 물리학 연구에도 쓰일 수 있다. 우주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직접 관측되지 않은 암흑물질이 당장 떠오르는 연구 대상이다. 원자핵시계는 암흑물질이 일으키는 원자핵의 미세한 변동까지 포착하는 양자 센서로 쓰일 수 있다. 시계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우리 세계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더욱 정교해지고,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는 우리의 시선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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