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사태의 헌법적 의미와 해법[시평]

2026. 6. 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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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선거 끝났지만 국민 불신 증폭
재선거 요구 나오며 일파만파
대의민주주의 근간 흔들 우려
선거권 침해는 선거법 범주 밖
헌법 관점에서 따져야 할 문제
선거제도 근본적 개혁도 필요

투표용지 부족으로 촉발된 지난 6·3 지방선거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불신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선거사상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처음이다. 선거권을 침해당한 국민이 재선거를 요구하면서, 선거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해결 대책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가 심각한 것은, 투표를 하지 못한 국민의 선거권이 침해됐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본권인 선거권이 침해되면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다. 헌법상 기본권인 선거권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을 선임하기 위한 권리이고, 국민은 선거권 행사를 통해 주권적 의사를 표출한다. 그래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발생한 문제는 국민의 선거권 침해뿐만 아니라, 국민주권 원리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방해한 것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국민이 주권자이고,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하고 있다. 이 헌법 규정을 실현하기 위해 선거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헌법은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원칙을 규정해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에서 선거로 선출되는 국가기관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이며, 여기에는 입법·행정에 속하는 기관은 물론 지자체도 포함된다.

헌법은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하여, 국민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국가권력의 주체임을 밝히고 있다.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이고 주권자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국정에 직접 참여할 수 없어 국정을 운영할 대표를 선거로 선출한다. 이렇게 헌법은 국민이 대표를 선출해 국정을 위임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택한 만큼, 선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흔히 사람들은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선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생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선거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훼손되면 민주주의가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 선거 불신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게 된다. 또한, 선거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민주공화국은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투표용지의 부족만으로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는 선거제도가 국민의 선거권 보장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선거권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국정선거든 지방선거든 구분하지 않는다. 지방선거권도 주권자인 국민이 주민의 자격으로 행사하는 참정권이며, 지방자치단체도 대한민국에 속한 국가기관이다.

나아가 투표용지 부족으로 선거권을 침해당한 국민이 있다고 해도 재선거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공직선거법의 재선거 사유에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선거권 침해는 없으며, 재선거를 하려면 선거무효에 관한 선관위의 결정이나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헌법은 국가의 최고규범이고 선거권을 법률에 따라 가진다고 하여 공직선거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선거권 자체가 침해되지 않았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헌법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권의 본질은 선거권 행사라고 본다. 선거권 자체를 행사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다수의 국민이 행사하지 못했다면 본질을 침해한 선거가 되므로 무효이다. 이번 사태는 헌법의 관점에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것은 아닌지 검토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의 선거권 침해에는 더 큰 문제가 내포돼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선거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국민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선거로 인한 혼란이 지속되면 선출된 대표도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민주공화국에서 국가권력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해 책임을 물어야 하며,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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