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왼쪽으로 돈다…‘좌측 본능’ 비밀에 한발 더 가까이
문화권·나이·왼손잡이와 무관
타고난 생물학적 편향 추정

넓은 운동장이나 낯선 공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걸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왼쪽, 즉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좌측-우측 통행 같은 사회적 규범이나 문화권, 나이,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와 상관이 없었다.
스페인 나바라대와 일본 도쿄대 공동연구진은 보행자 국제 비교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에 관한 연구가 발단이 됐다. 이냐키 에체베리아-우아르테 박사가 이끄는 스페인 연구진은 보행자들이 일정한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살펴보던 중, 33번의 실험 중 32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방향을 바꿀 때 무의식적으로 왼쪽으로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방의 구조나 환경적 요인 때문일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추적 연구를 시작했다. 총 573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조건과 환경을 바꾼 5차례의 추가 실험을 진행했으나 결과는 매번 같았다.
예컨대 탁 트인 학교 운동장에서 참가자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한 뒤 드론으로 촬영한 결과, 불과 몇초 만에 전체 참가자의 80%가 일제히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체베리아-우아르테 박사는 “사람들이 공간에 놓이자마자 거의 즉각적으로 편향성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과 전혀 접촉할 수 없는 ‘나 홀로 보행’ 실험에서도 참가자의 75%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린이들이 더 강한 왼쪽 편향 보여
우측통행이 일반적인 스페인 보행자들은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할 때 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지만, 좌측통행 문화권인 일본인들은 왼쪽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스페인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는 사람들이 ‘시계 방향’으로 돌 것이라고 예상하거나 그것이 규범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형 공간에서 자유롭게 걸으라고 했을 때, 두 나라 보행자는 예외 없이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행동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는 이 현상이 벽을 피하거나 남과 부딪히지 않으려는 사회적 전략이 아니라, 개인의 몸속에 각인된 성향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가장 흥미로운 건 일본의 한 어린이집에서 진행한 실험이었다.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에 덜 노출된 5살 미만의 어린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반시계 방향성을 보였다.

공공시설 동선 설계에 반영 기대
연구진은 주로 사용하는 손과 발의 오른잡이·왼잡이 성향, 우세안(eye dominance)의 방향, 남녀 성별, 집단 크기 등을 정밀 조사했다. 하지만 이들과 회전 방향 사이의 연관성은 발견하지 못했다.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오른쪽 눈을 가리든 왼쪽 눈을 가리든 왼쪽 편향은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지구 자전력에 의해 생기는 코리올리 힘이나 지구 자기장 같은 거시적 현상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밝혀낸 사실을 보면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대신 연구진은 귀 안쪽에서 몸의 평형을 잡는 전정 기관의 미세한 흔들림이나 감각 신경계의 미세한 좌우 비대칭성처럼 더 깊은 생물학적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눈을 감고 걸을 때 한쪽으로 치우쳐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쿄대 클라우디오 펠리치아니 교수는 “아이들한테서 반시계 방향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런 편향이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라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육상 경기나 스케이팅 등 트랙 운동 경기의 경우 왼쪽으로 달리도록 돼 있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트랙을 시계 방향으로 달렸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달리기에 부자연스럽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1913년부터 트랙을 반시계 방향으로 바꾸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인간의 생체역학과 가상현실(VR), 신경과학, 동물 행동학을 융합해 이 편향 행동의 비밀을 풀 계획이다. 특정한 방향성은 인간뿐 아니라 물고기 떼, 개미, 잉꼬 등 다양한 생물 종에서도 관찰된다. 개미는 새 서식지를 탐색할 때 왼쪽으로 돌고, 잉꼬는 틈새를 통과할 때 좌우 중 어느 한쪽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공동 저자인 이케르 주리겔 박사는 “물고기 역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대표적인 동물이지만 어떤 방향을 선호하는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며 자연계 전반으로 연구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에체베리아-우아르테 박사는 “공항, 기차역, 박물관 같은 대규모 공공시설을 설계할 때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보행자의 자연스러운 회전 본능을 고려한다면 훨씬 더 효율적인 동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Individual locomotor bias drives counterclockwise motion in pedestrian crowds
https://doi.org/10.1038/s41467-026-73713-w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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