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체계·생활 양식따라 알레르기 유발… 美 ‘땅콩’ 日 ‘메밀’ 호주 ‘갑각류’ 조심[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식당 선정부터 막막해졌다. 수년간 해외 생활을 하며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종류를 물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갑각류와 가금류, 견과류, 유제품, 생선, 그리고 달걀까지. 알레르기가 후천적으로 이렇게나 많이 발현될 수 있는 것이었나.
알레르기는 더 이상 예민한 이들의 유난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새롭게 드러나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늘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내 알레르기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음식점 메뉴판의 알레르기 표기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나 그에 반응하는 인구 비율은 나라마다 다르다. 유전적 특성, 기후, 생활 환경, 그리고 오랜 식습관이 얽혀 만들어진 결과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이나 ‘먹으면 큰일 나는’ 문제 역시 문화와 지리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땅콩이 대표적인 알레르기 유발식품이다. 단순한 가려움증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 쇼크로 이어질 수 있어, 많은 학교가 학생들이 도시락에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가져오는 것도 제한한다. 반면 일본은 메밀 알레르기에 대한 경계가 높다. 소바가 일상식인 만큼 식품 표시도 엄격하다. 유럽에서는 글루텐 소화 장애 인구가 늘면서 병아리콩이나 렌틸콩, 쌀가루를 활용한 대체 파스타 시장이 성장 중이며, 풍부한 해양자원을 자랑하는 호주에서는 해산물과 갑각류 알레르기가 주요 사회적 과제로 꼽힌다. 국가마다 조심해야 할 음식 목록이 다른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알레르기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면역체계와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적인 설명이 이른바 ‘위생가설’이다. 어린 시절 다양한 세균과 미생물에 충분히 노출되지 못한 면역체계가 무해한 음식까지 적으로 오인해 과민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변화와 생활양식의 변화까지 함께 고려하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리 방식 역시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땅콩 알레르기가 유독 치명적인 이유 중 하나로 고온에서 볶은 땅콩을 선호하는 식문화가 거론된다. 열처리 과정에서 단백질 구조가 변하면서 면역계를 더 강력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반면 삶거나 죽, 소스 형태로 섭취하는 아시아 지역은 조리 과정에서 단백질이 일부 변형되어 상대적으로 유병률이 낮은 편이다.
전 세계적으로 식품 알레르기 유병률이 증가하는 추세로, 일부 연구에서는 인구의 약 10%가 식품 알레르기를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알레르기는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전 세계 식문화를 바꾸는 거대한 변수가 되었다. 식품 산업도 이에 맞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레스토랑은 알레르기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식품 기업들은 대체 원료 개발에 나선다. 최근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로 알레르기 유발 단백질을 제거한 땅콩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으며, 인공지능(AI)은 개인의 면역데이터를 분석해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배제한 맞춤형 식단을 제안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오늘 하루 식단을 되짚어 본다. 아침에 새우젓으로 간을 한 달걀찜을, 점심에는 고등어구이를 먹었다. 오후 간식으로 라테를 마셨고, 저녁에는 새우 파스타에 와인을 곁들였다. 별다를 것 없는 식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전부 피해야 하는 음식일 수도 있다. 갑각류, 유제품, 달걀도 아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면역체계가 허락한 한 끼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밀려온다.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알레르기는 음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꽃가루, 약물, 집먼지진드기, 반려동물 털까지 원인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식품 알레르기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극소량의 알레르겐만으로도 호흡곤란이나 급성 쇼크가 발생할 수 있어 식품 표시와 외식 정보 제공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항공사와 학교, 어린이집에서 알레르기 관리 지침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법적 윤리적 의무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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