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쏟아진 폭우에 멸종위기 오랑우탄 7% 위협"

이지연 기자 2026. 6. 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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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극한 기상, 멸종위기종 직접 타격
지난해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에서 발생한 기록적 폭우와 산사태로 희귀종 오랑우탄 서식지가 훼손됐다. 4일 동안 짧고 굵게 이어진 단 한 번의 극한 기상 현상으로 해당 종 개체군의 약 7%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위기에 따른 극한 기상이 멸종위기종을 직접 위협한 대표적인 사례다. 
전 세계에 800마리도 남지 않은 타파눌리 오랑우탄 가운데 약 58마리(전체의 약 7%)가 극한 폭우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Wikimedia Commons)/뉴스펭귄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오랑우탄

타파눌리 오랑우탄(Tapanuli orangutan)은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대형 유인원이다. 2017년 보르네오 오랑우탄, 수마트라 오랑우탄과는 다른 별개의 종으로 공식 분류됐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 바탕토루(Batang Toru)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 개의 숲에 나뉘어 살아간다.

현재 남아 있는 개체 수는 800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암컷은 새끼를 낳은 뒤 다음 번식까지 6~9년이 걸릴 정도로 번식 속도가 매우 느리다. 이 때문에 개체 수가 조금만 줄어도 회복이 쉽지 않다. 또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내기 때문에 산림 훼손이나 대규모 산사태 같은 환경 변화에도 취약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들을 멸종 위험이 가장 높은 단계인 '위급(CR)'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흘간 폭우에 개체군 7% 타격"
2025년 사이클론 세냐르 전후 바탕토루 숲 위성사진. 오랑우탄 서식지 곳곳에 대규모 산사태 자국이 남아 있다. (사진 Sheil et al., Current Biology)/뉴스펭귄

지난 10일 학술지 현대생물학(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폭우와 산사태로 타파눌리 오랑우탄 개체군이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2025년 11월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를 덮친 기록적인 폭우와 산사태가 개체군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당시 사이클론 세냐르(Senyar)의 영향으로 북수마트라 일대에는 며칠 동안 기록적인 폭우가 이어졌고, 일부 지역에는 나흘 동안 1000㎜가 넘는 비가 내렸다. 타파눌리 오랑우탄의 최대 서식지인 바탕토루 서부 지역에도 같은 기간 564㎜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연구진은 위성영상을 활용해 피해 지역을 분석한 결과 5만 개가 넘는 산사태 흉터(landslide scars)를 확인했으며, 약 8300헥타르의 숲이 훼손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해당 지역 산림 면적의 약 11.7%에 해당한다.

이어 산사태 지도와 기존 타파눌리 오랑우탄 개체 밀도 모델을 함께 분석한 결과, 피해 지역에는 당시 약 58마리의 오랑우탄이 서식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지역 개체군의 약 11%, 전체 타파눌리 오랑우탄의 약 7%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이는 현장에서 58마리의 사체를 직접 확인한 결과가 아니라, 산사태 피해 면적과 오랑우탄 밀도 추정치를 바탕으로 계산한 추정치다. 연구진은 산사태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을 고려할 때 해당 지역의 개체들은 매몰되거나 외상을 입고 토사에 휩쓸리거나 익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산사태 대부분이 급경사에서 순식간에 발생하면서 토사와 쓰러진 나무가 계곡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나무 위를 이동하며 생활하는 오랑우탄은 이런 급격한 사면 붕괴가 일어나면 피할 방법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문제는 타파눌리 오랑우탄이 이미 극도로 취약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전 연구에서는 이 종의 연간 추가 사망률이 1%만 넘어도 장기적으로 개체군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연구진은 이번처럼 단 한 번의 극한 기상 현상으로 지역 개체군의 약 11%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은 종의 장기적인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후위기가 키운 폭우, 멸종위기종 생존 흔들어

연구진은 인간이 유발한 기후위기 때문에 이번 폭우가 더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후위기가 말라카 해협 주변 폭풍의 강우량을 산업화 이전보다 최소 9%에서 최대 50% 높였고, 이로 인해 산사태 피해도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파눌리 오랑우탄은 이미 광산 개발, 팜유 농장 확대, 수력발전 사업, 산림 파편화 등으로 서식지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연구진은 이처럼 개체군 규모가 작고 서식지가 단절된 종은 단 한 번의 극한 기상 현상만으로도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글러스 실(Douglas Sheil) 바헤닝언대학교 교수는 성명을 통해 "극한 기상 현상과 생물다양성 손실은 종종 별개의 위기로 취급되지만 실제로는 깊이 연결돼 있다"며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한 보르네오 퓨처스, 월드 웨더 어트리뷰션,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등 연구진은 바탕토루의 남아 있는 숲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강하고 서로 연결된 생태계가 유지돼야 야생동물들이 극한 기상 현상 이후에도 살아남고 개체군을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서식지를 훼손하는 토지 이용 활동을 즉각 중단하고 보호구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1월 폭우와 산사태 이후 바탕토루 일대에서 운영되던 광산, 수력발전, 벌목, 팜유 농장 등 28개 기업의 사업 허가를 취소하거나 주요 산업 활동을 중단시키는 조치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타파눌리 오랑우탄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과 재난 위험을 함께 재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 덮친 기후재난에 야생동물 피해 속출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기상 현상이 멸종위기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9~2020년 호주를 덮친 '블랙 서머' 산불로 수천 마리의 코알라가 목숨을 잃고 광범위한 서식지가 파괴됐다. 이후 호주 정부는 동부 지역 코알라를 멸종위기종으로 상향 지정했다.
2022년 호주 정부는 동부 연안 3개 지역에서 코알라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Envato)/뉴스펭귄

호주에서는 산불과 폭염 등 잇따른 기후 재난으로 야생동물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월 빅토리아주를 휩쓴 대형 산불로 코알라를 비롯한 야생동물이 큰 피해를 입었고, 같은 달 남동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으로는 과일박쥐(flying fox) 집단이 큰 타격을 받았다. 남호주 나래코트의 한 서식지에서는 약 1,000마리 가운데 80% 이상이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보고됐다. 2023년 10월 브라질 아마존 테페호수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폭염으로 수온이 39℃를 넘어서면서 멸종위기 아마존강돌고래 100여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