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승부처 바뀌었다 “모델 성능 아닌 전력·법·데이터 싸움”
한경협·우드맥킨지 “AI 다음 전장, 실물경제 융합”
산업형 AI ·초기시장·인재양성 3대 전략 제시

인공지능(AI) 경쟁의 중심이 모델 성능에서 산업 현장의 실행력으로 옮겨가면서 한국이 관련 법규와 전력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신뢰할 수 있는 법·제도,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결합하느냐가 국가와 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AX를 성장동력으로 연결하려면 산업형 AI 기준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정부가 초기 시장을 열어 현장의 문제를 AI로 풀어낼 융합형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6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기관 우드맥킨지와 공동으로 ‘글로벌 AI 전환과 산업 대응 전략’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글로벌 AI 경쟁의 전선이 모델 개발을 넘어 전력 인프라, 산업 데이터, 제도 기반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개회사에서 “AI 경쟁의 다음 전장은 AI 모델 자체가 아니라 AI와 실물경제의 융합”이라며 “AI를 얼마나 빠르고 깊게 제조·에너지·금융·서비스 현장에 확산시키느냐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도 “AX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며 기술과 산업, 제도가 함께 움직이는 한국형 대응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자인 김민기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주요국의 AX 전략을 분석하며 AI가 단순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산업 데이터, 제도와 규범을 포괄하는 산업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빅테크의 기술 혁신에 국방·안보 분야 공공조달을 결합해 초기 시장을 키우고 있고 유럽연합은 AI 법(Act)을 통해 안전성과 투명성, 데이터 관리 기준을 제도화하고 있다. 대만도 반도체 제조와 서버, 전력·냉각 생태계를 결합해 AI 인프라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고 일본은 정부 클라우드와 자국 클라우드 기업 육성을 통해 공공 디지털 인프라의 자립성을 높이는 상황이다.
김 원장은 한국형 AX 전략의 핵심 과제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산업형 AI 기준 마련이다. 한국은 제조업, 반도체, 통신 인프라와 산업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해외 규제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산업 현장에서 기업이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AI가 생산공정, 품질관리, 설비안전 등에 직접 적용되는 만큼 모델 성능뿐 아니라 데이터 관리, 보안, 사후 점검까지 포함한 산업형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초기 시장 창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핵융합과 양자, 미래에너지, 첨단 바이오처럼 민간이 단독으로 투자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큰 분야에서 정부가 초기 수요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부문이 먼저 시장을 열어주면 민간 기업의 기술 개발과 투자가 촉진되고 AI 기반 신산업 형성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융합형 AI 인재 양성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지역의 주력 산업에 맞춘 실무 중심 교육을 통해 현장의 문제를 AI 과제로 바꾸고 실제 업무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AX에 성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력 인프라 역시 AX 실행의 핵심 변수로 제기됐다. 두 번째 발제자인 크리스 사이플 우드맥킨지 부회장은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성장이 미국 전력망에 단순한 전력 수요 증가를 넘어 변동성이라는 새로운 부담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높은 변동성은 기존 전력망 운영 방식과 발전설비의 안정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전력 품질과 부하 대응 능력이 데이터센터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변압기와 케이블 등 전력기자재 수출 기회가 확대될 뿐 아니라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무정전전원장치, 배터리 백업장치 등 데이터센터 전력 안정화 솔루션 수요도 빠르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플 부회장은 “AI 데이터센터 시대의 전력 경쟁력은 전기를 얼마나 많이 공급하느냐를 넘어 얼마나 안정적으로 제어하고 품질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한국이 ‘AI 데이터센터 전력 안정화 패키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패널 토론에서도 전력망, 법제, 제조데이터가 한국형 AX의 실행 기반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김진수 한양대 교수는 “전력을 적기에, 청정하게, 적정 입지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망이 필요하다”며 전원 포트폴리오와 조달제도, 입지, 거버넌스를 통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AI 인프라 경쟁력 확보를 위해 규제를 합리화하고 데이터 활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준모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제조 경쟁력을 데이터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형 신성장동력의 출발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암묵지라는 우리만의 자원을 학습 가능한 데이터 자산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산업 데이터 권리와 공유 거버넌스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시형 롯데이노베이트 AI혁신센터장도 “정부는 AI의 첫 수요를 만들어 주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며 기업 역시 규제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표준 설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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