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낮아진 줄 알았는데…부모님 몸 약해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작년 생일만 해도 어머니 혈압이 130대로 내려왔다고 다들 반가워했다. 올해 생일에도 혈압은 130대가 유지됐다.
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 겨울 독감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이후 회복이 더디다. 화장실까지 가는 데도 숨이 찰 지경이고 물병 뚜껑도 잘 열지 못한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동네를 한 바퀴씩 걷던 분이었다.
같은 130대, 1년 사이 의미가 달라졌다
"고혈압은 치매 위험을 높인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미국 노인 6000여 명을 9년간 추적한 최신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정정한가'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수축기 130대는 건강검진에서 흔히 '더 지켜봐야 하는 수치'로 안내받는 구간이다. 한국 기준으로는 고혈압 전단계에 가깝지만, 심혈관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관리 목표를 더 엄격하게 잡기도 한다. 부모님 혈압이 이 정도라면 가족들은 "조금 더 낮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쉽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채플힐) 연구팀은 지역사회 노인 장기추적 코호트 자료를 분석했다. 평균 75세 노인 6135명을 중앙값 9년 동안 추적하며 혈압과 치매 발생의 관계를 살펴봤다. 이 논문은 미국 신경과학 학술지 《뉴롤로지(Neurology)》6월 10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자주 피곤함, 운동 부족, 느린 걸음, 약해진 손힘, 의도치 않은 체중 감소를 노쇠 징후로 봤다. 이 중 한두 가지가 있으면 '노쇠 전단계', 세 가지 이상이면 '노쇠'로 분류했다. 노쇠 전단계와 노쇠를 묶어 '노쇠 징후가 있는 그룹'으로 보고, 이런 징후가 전혀 없는 정정한 노인과 비교했다.
걸음과 활동성이 유지된 노인은 기존 설명대로였다. 고혈압이 있으면 치매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
거동이 둔해진 노인은 달랐다. 노쇠 징후가 있는 그룹에서는 정상 혈압군의 치매 발생률이 가장 높았고, 혈압이 약간 높은 그룹에서 가장 낮았다. 같은 130대 숫자도 몸 상태가 달라지면 다르게 읽힌 셈이다.
활동성이 유지된 노인은 고혈압이 있을 때 치매 발생률이 가장 높았다. 1년에 1000명 중 20명꼴이었다.
노쇠 징후가 있는 노인에서는 반대 흐름이 나타났다. 정상 혈압군에서 1000명당 42명으로 가장 높았고, 논문 기준상 혈압이 약간 높은 그룹에서 29명으로 가장 낮았다. 나이·흡연·당뇨 등을 보정해도 차이는 유지됐다.
활동성이 유지된 가운데 고혈압이 있는 노인은 치매 위험이 39% 높았다. 노쇠 징후가 있는 노인 중 혈압이 약간 높은 그룹은 정상 혈압군보다 치매 위험이 32% 낮았다. 같은 그룹에서 고혈압군도 치매 발생률 자체는 정상 혈압군보다 높지 않았다.
연구팀은 다만 이 결과만으로 "혈압이 높을수록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왜 같은 혈압이 다르게 작동할까
몸이 아직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높은 혈압이 뇌혈관에 누적되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거동이 둔해진 사람에게는 혈압 자체보다 '왜 낮아졌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심장 기능이나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혈압은 별다른 약물 조정 없이도 떨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낮은 혈압은 잘 관리된 결과라기보다, 몸이 약해지면서 뇌에 피를 충분히 보내기 어려워진 상태와 맞물려 있을 수 있다.
"혈압 정상입니다", 같은 말인데 왜 달리 들릴까
이번 논문은 관찰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혈압을 일부러 조정한 실험이 아닌 만큼, 혈압과 치매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 증명하지 못한다. 다만 거동이 둔해진 노인에게서 나타난 이런 흐름은 혈압 수치만으로 건강 상태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신호로 읽힌다.
연구를 이끈 제이슨 스미스 박사는 "노쇠한 사람에게서는 낮은 혈압이 좋지 않은 결과와 관련될 수 있다"며 "혈압 관리 목표를 정할 때 그 사람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노쇠 징후도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장이 약해지거나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혈압이 저절로 떨어진다. 혈압이 낮다는 사실보다 혈압이 낮아질 만큼 몸이 약해진 상태 자체가 진짜 문제다.
노인 진료 현장에서도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나이 또는 진단명만큼 '지금 이 사람이 얼마나 활동적인가'를 함께 봐야 한다.
같은 70대라도 매일 걷고 장을 보는 사람과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 사람에 있어 혈압 130이 의미하는 바는 다를 수 있다.
부모님 혈압계 숫자보다 먼저 봐야 할 것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쉽게 피곤해한다. 손에 힘이 약해졌다. 살도 빠졌다.
부모에게서 이런 변화가 겹쳐 나타난다면 혈압이 낮아졌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약해진 몸 상태를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향후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에 갈 경우 질문을 바꿔보자. 그간 "혈압을 더 낮춰야 하나요"라고 물었다면, 이제는 이렇게 묻는 게 적절하다.
"지금 혈압약 양이 그대로 맞을까요."
"혈압을 더 낮추는 게 목표인가요, 아니면 지금 수치를 유지하는 게 목표인가요."
혈압약을 당장 바꿔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목표가 여전히 맞는지 의사와 함께 점검할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혈압이 낮아졌다고 안심하기 전에 왜 낮아졌는지부터 알아보자. 그 작은 질문 하나가 부모님의 혈압을 숫자가 아니라 몸 상태와 함께 읽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최승욱 기자 (swchoi6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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