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범이 소방관 행세?”…원상복구를 승리라 부르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합의를 두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었다”며 외교적 성과를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전쟁이 없었다면 호르무즈 해협은 애초에 닫힐 일도 없었다”고 반박한다. 더욱이 트럼프는 전쟁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해협 통행료 존치 여부를 두고 이란과 샅바싸움을 해야 하는 형국이다.
뉴욕타임스는 15일 이번 이란 종전 합의를 평가하며 트럼프가 “자신이 만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미권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자신이 키운 위기를 일부 해소한 뒤 이를 치적으로 내세우는 트럼프의 행태를 겨냥해 “방화범이 소방관 행세를 한다”는 비유를 자주 사용해 왔다. 없던 위기를 키운 뒤 긴장 완화나 원상 복구 수준의 결과를 자신의 성과로 포장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올린 기름값…“이젠 내려갈 것”
트럼프는 이란과의 종전 협상 국면에서 유가 하락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는 종전 합의 발표 직후 “전 세계 선박들이여, 엔진을 가동하라. 석유가 흐르게 하라(Let the oil flow)”고 적었고, 백악관에서도 “유가가 떨어질 것” “세계 경제가 다시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전쟁 기간 국제 원유 시장은 미국과 이란의 충돌,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에 크게 흔들렸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시장에는 이른바 ‘전쟁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트럼프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성과로 포장하려 하는 유가 안정 자체가 전쟁이 만들어낸 충격의 반대급부라고 지적한다. 전쟁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험 때문에 가격이 뛰었고, 종전 이후 가격이 안정되는 것을 행정부의 치적처럼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없던 관세 올리고 내리며…“역사적 합의”
비슷한 장면은 미·중 무역 협상에서도 반복됐다. 트럼프는 집권 2기 출범 이후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려 한때 145%까지 부과했고, 중국 역시 미국산 제품에 최고 125%의 보복 관세로 맞섰다. 양국은 수개월 동안 서로 관세율을 끌어올리며 사실상 무역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관세 인하와 희토류 수출 재개, 미국산 대두 수입 재개 등에 합의했다. 미국은 대중 관세를 145%에서 30% 수준으로 낮추고, 중국도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25%에서 10% 수준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회담 직후 “미국 농민들이 매우 행복할 것”이라며 자신의 협상 결과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상당수 조치는 애초에 양국이 스스로 만든 장벽을 다시 낮춘 데 불과했다. 중국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다가 다시 풀었고, 미국 역시 자신이 부과한 고율 관세를 대폭 인하했다.
당시 워싱턴의 무역 전문가들은 이를 구조적 해결이 아닌 ‘휴전’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없던 무역 장벽을 만든 뒤 이를 일부 철회한 것을 “역사적 합의”라고 불렀다는 비판이다.
◇“화염과 분노” 외치고 “북핵 위협 끝”
트럼프의 첫 임기 때 북핵 문제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2017년 북한을 향해 “북한은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미국 언론과 국제사회에서는 트럼프의 이같은 발언으로 한반도 군사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2018년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트럼프는 회담 직후 “이제 누구나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은 더 이상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핵 프로그램 역시 계속 유지됐다. 이에 따라 당시 선언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비판론자들은 트럼프가 이미 존재하던 북핵 위기를 군사 충돌 직전 수준까지 끌어올린 뒤, 정상회담 이후 긴장이 완화되자 이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포장했다고 지적한다. 북한 핵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 위협은 끝났다”는 선언부터 내놓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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