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교복 입고도 담배 살 수 있겠네…가짜 신분증에 학교 앞 ‘전담샵’ 뚫렸다 [세상&]
8곳서 가짜 신분증으로도 성인인증 통과
학교 앞 불과 수백m서 전담 파는 매장들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이준영 수습기자] 신분증 복사본 한 장에 무인 전자담배 매장이 뚫렸다. 신분증 스캐너가 설치된 성인인증 절차는 무용지물이었다. 자판기를 설치한 무인 매장은 특히 학교 근처에서 늘어나는 추세인데, 청소년들도 어려움 없이 전자담배를 손에 쥘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1~12일 서울 곳곳의 무인 전자담배 매장 9곳을 방문해 실물 신분증 복사본을 활용해 성인인증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8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성인인증에 성공했고 결제를 요구하는 창이 떴다.
대개는 판매기기 스크린 화면에서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기를 터치한 뒤, 성인인증 →결제로 이어지는 단계다. 성인인증은 신분증을 스캔하거나 투입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가장 신뢰성이 높은 모바일 신분증, 본인인증 어플리케이션(앱)을 요구하는 매장은 한 곳에 그쳤다.

지난 4월 개정된 담배사업법이 시행되면서 합성 니코틴이 들어간 액상형 전자담배의 온라인 판매가 금지됐다.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에는 성인인증 장치 설치가 의무화됐다. 미성년자의 구매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또 액상형 전자담배를 제조하거나 수입해 판매하는 업자는 담배 포장지와 광고에 경고 그림과 문구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과일 향 등 가향 물질을 연상시키는 문구·그림·사진을 제품 포장이나 광고에 사용할 수 없다.
일반 연초 담배와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를 끌어올린 것인데 현장의 무인 판매점은 마치 과일주스를 파는 것 같은 분위기를 보였다.
취재팀이 찾은 대부분의 매장에는 ‘신분증 위조 및 도용 시 처벌’,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하지 않음’, ‘판매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관리자나 출입 통제 장치가 없어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다.

취재팀이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한 무인 매장은 중학교 정문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매장 안에는 ‘액상 1+1’, ‘꽝 없는 100% 당첨’ 행사 안내문이 붙어 있고 판매기 화면에는 액상 제품과 함께 포도·사과 등 과일 이미지가 크게 노출돼 있었다. 포도 향 제품에는 포도 그림을, 사과 향이 나는 제품에는 사과 그림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전자담배의 유해성 등을 경고하는 문구를 표시한 가게는 없었다.
취재한 매장 가운데 단 1곳만 제대로 된 보안 절차를 갖췄다. 여기선 모바일 신분증 QR코드 인증을 거쳐야만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실물 신분증만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타인의 신분증이나 복사본을 이용한 우회 구매 가능성을 차단한 셈이다. 해당 매장에는 ‘담배사업법 개정으로 매장 내 시연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문도 게시돼 있었다.
이날 학교 인근 무인 전자담배 판매장을 찾은 권모(33) 씨는 “온라인 구매가 막힌 뒤 매장을 찾았는데 전에 신분증을 두고 와 남자친구 신분증으로 인증하고 구매한 적이 있다”며 “청소년들도 매장에 들어오기만 하면 물건을 사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YMCA와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서울·경기도 3800여개 학교 가운데 270곳이 학생 보호구역 안에 액상형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유무인 매장이 있었다. 조사 방식상 실제 거리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지 않은 전자담배 매장이 학생 생활권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한 업자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하지만 무인 담배 판매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선 경찰서 청소년 담당 수사관은 “법에서 규정한 성인인증 장치를 설치한 상태라면 업주의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청소년이 타인 신분증이나 위조 신분증을 이용해 구매했을 경우 현행 제도상 사후 적발과 처벌에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선 학교 교사들도 학생들이 너무 쉽게 전자담배에 노출되는 점을 우려한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학생부장 교사 A씨는 “전자담배는 니코틴과 타르 함량 조절이 가능해 학교나 보건당국이 흡연 여부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며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는 연초 담배보다 전자담배가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호욱 서울 방학중학교 교사는 “온라인 판매 금지 등 규제 강화는 환영할 만한 조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신분증을 빌리거나 위조해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신분증 소유자와 실제 사용자를 대조하지 않는 현재 무인점포 인증 방식으로는 청소년 구매를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담배 정의를 확대하고 학교 주변 입지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지만 업계는 새로운 형태의 유사 니코틴 제품을 내놓으며 규제를 피해 가고 있다”며 “법 개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추가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법상 성인인증 장치 오작동에 대한 과태료 처분이 불가능해 지난 3월 보건복지부에 법령 개정을 건의했다”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관련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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