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끝났다지만, 미국땅에서 뉴질랜드전 앞둔 이란…축구보다 훨씬 큰 긴장감 ‘일촉즉발’

월드컵은 국경과 정치, 이념을 잠시 잊고 축구로 하나 되는 축제다. 그런데 이란 축구대표팀이 미국 땅에서 맞이한 북중미 월드컵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긴장과 불안, 정치적 갈등에 가까워 보인다.
이란은 1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뉴질랜드와 월드컵 조별리그 G조 1차전을 치른다.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이란이 우세하다. 그런데 경기 전 분위기는 축구보다 정치와 외교, 전쟁과 시위가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수개월 동안 군사적 충돌을 이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국이 평화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하면서 일단 휴전 국면이 조성됐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축구가 국제정치의 한복판에 놓인 셈이다.
이란 대표팀은 대회 준비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원래 이란은 미국에 베이스캠프를 차릴 계획이었지만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경 너머 멕시코로 캠프를 옮겼다. 선수단은 멕시코에서 훈련한 뒤 경기 하루 전에 미국으로 이동하고,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멕시코로 돌아간다.

미국 입국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대표팀 일부 지원 인력은 비자를 받지 못했다. 대표팀 주장 메흐디 타레미는 “월드컵에 도착한 순간부터 긴장을 느꼈다”며 “긴장이 있는 곳에서는 우리가 늘 말해온 평화와 기쁨의 월드컵을 경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미르 갈레노에이 이란 대표팀 감독은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다. 우리는 축구를 하러 왔다”며 “이란 본토에 있는 국민, 해외에 사는 이란인 등 모두를 위해 뛰겠다”고 강조했다.
경기가 열리는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최대 이란계 커뮤니티가 있는 도시다. 현지에서는 이를 ‘테헤란젤레스(Tehrangeles)’라고 부른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이란계 주민들이 밀집해 살고 있다. 현지 이란 공동체들은 하나로 뭉쳐 있지 않다. 많은 이란계 미국인들은 현재 이란 정부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고됐다. 시위 참가자들은 1979년 혁명 이전 사용한 사자와 태양 문양 옛 이란 국기를 흔들 계획이다. 한 이란계 미국인은 AP통신에 “이 팀은 이슬람 공화국의 팀일 뿐, 우리가 알던 ‘팀 멜리(국가대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는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세계에 이란 국민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모인다”고 말했다.
FIFA는 정치적 상징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혁명 이전의 이란 국기도 공식적으로는 경기장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AFP통신은 “일부 시위대가 옛 이란 국기가 인쇄된 티셔츠를 겉옷 안에 숨긴 채 입장한 뒤 경기 중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은 이미 환영과 야유를 동시에 경험했다. 지난 13일 미국에서 열린 개막 행사에서는 일부 관중이 이란 국기가 등장하자 야유를 보냈다. 반면 멕시코에서는 “이란,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멕시코는 당신과 함께한다”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상대 뉴질랜드는 정치적 의미를 최대한 부정하고 있다. 대런 베이즐리 감독은 “우리는 이 경기를 다른 경기와 똑같이 준비했다”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축구뿐”이라고 말했다. 주장 크리스 우드도 “화이트라인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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