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산은 까봐야 안다”… 비싼데도 중국산 양파 찾는 경매장
국산 수요처 다변화 과제

지난 11일 밤 서울 송파구의 한 농수산물도매시장. 자정이 가까워질 수록 경매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후 11시부터 시작되는 양파 경매에 참여하려는 중도매인들이었다. 국산 햇양파를 실은 트럭 40여대도 경매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도매인들은 서둘러 양파 상태를 살폈다. 경매대에 놓인 양파의 크기를 확인하고, 직접 만져보며 단단한 정도를 비교했다. 시세를 놓고도 말들이 오갔다. 한 업자가 “오늘도 하락세일 것”이라고 하자, 다른 업자는 “그래도 까봐야 안다”고 답했다.
경매가 시작되고 양파 판매업자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현황판을 주시했다. 보통 등급 햇양파 15kg의 평균 거래가는 8828원으로 정해졌다. 15kg 한 망 기준 9000원 선을 하루 만에 다시 내줬다. 곳곳에선 “더 떨어졌어” “작업비도 안 나오겠네” 등 탄식이 나왔다.

국산 양파 가격이 수입산보다도 낮아지면서 국내 양파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비축 물량을 늘리는 등 가격 안정 대책에 나섰지만, 국산 양파의 품질 균일화와 수요처 다변화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산보다 싼 국산 양파… 가격 역전 6개월째
국산 양파 가격이 수입산을 밑도는 ‘가격 역전’ 현상은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보통 이런 현상은 오래 저장한 국산 양파와 갓 수확한 중국산 양파가 함께 거래되는 1~3월에 일시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최근에는 계절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올해 kg당 평균 도매가 기준 국산 양파가 중국산 양파보다 비싸게 거래된 날은 전체 거래일 126일 중 하루에 그쳤다. 지난 12일에도 보통 등급 수입산 양파는 kg당 평균 1426원에 거래됐지만, 국산 양파는 kg당 412~516원 수준에 머물렀다.
송파구에서 양파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정모(68)씨는 “최근 국산 양파가 수입산보다 700~800원가량 낮은 시세에 거래되고 있다”며 “국산 양파 수요가 적다 보니 낮은 가격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재배로 균일한 중국산… 외식업체 수요 커져
중국산 양파 수입 물량은 지난해 기준 약 13만톤(t)이다. 2020년보다 4배 넘게 늘었다. 특히 민간 수입량이 전체의 85%를 차지했다. 고율 관세 135%를 부담하면서도 중국산 양파 수입이 줄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산 양파가 대규모 재배와 기계화 농법을 통해 크기와 모양이 비교적 균일하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꼽는다. 중국산 양파 대부분은 산둥반도 일대 대규모 평야 지대에서 생산된다. 반면 국산 양파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되는 경우가 많아 산지와 농가별 품질 차이가 크다고 한다.

양파 도매업자 A씨는 “중국산은 제품 중량이 비교적 정확하고 알 크기와 모양 등 품위가 안정적”이라며 “반면 국산은 선별이 고르지 않거나 ‘속박이’가 섞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속박이는 겉으로 보이는 바깥쪽에는 상태가 좋은 양파를 놓고, 안쪽에는 상대적으로 작거나 부실한 양파를 넣는 방식을 말한다.
식생활 변화도 국산 양파 수요 감소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가정 내 양파 소비가 줄고 외식업체와 급식 등 대량 수요처의 비중이 커졌다. 크기와 오래 저장할 수 있는지, 작업하기 수월한지 등이 양파를 선택하는 더 중요한 기준이 됐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가구당 양파 구매 빈도는 2010년 연간 9.8회에서 2024년 7.0회로 감소했다.
◇양파 농가 ‘밭갈이 투쟁’… “생산비도 못 건진다”
국내 양파 농가들은 판매가가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친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경북 김천과 경남 함양, 전북 완주, 전남 무안 등 주요 양파 산지 4곳에서는 농민들이 동시에 트랙터로 양파밭을 갈아엎었다.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가격 하락과 생산 비용 증가, 농가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어려움을 겪는 생산자가 늘고 있다”며 “정부의 공공 비축 확대와 양파 산업 다양화, 저장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격 안정을 위해 양파 비축 물량을 확대하기로 했다. 평년보다 82% 많은 2만t 규모의 양파를 비축한 뒤 수급 상황이 안정되면 시장에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양파 소비 촉진 대책과 공급 과잉 물량에 대한 출하 정지 조치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정부 대책에만 의존해서는 국내 양파 농가의 경쟁력을 되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기적인 수급 조절과 별개로 산지 선별 체계 개선, 저장 기술 고도화, 가공·급식 등 수요처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양파는 김치에 들어가는 핵심 식재료인 만큼 주산지 중심의 품질 고급화가 필요하다”며 “공공 급식에서 친환경·지역 농산물 사용 비율을 높이도록 한 프랑스 에갈림법처럼 국산 양파 수요처를 다변화할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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