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아직 피지 않은 거목 김서아'를 보는 설렘

[골프한국] 골프 팬에게는 특별한 행복이 있다. 현재의 스타를 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미래의 스타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설렘은 더 짜릿하다. 마치 어린 나무를 바라보며 언젠가 거목이 될 모습을 상상하는 것과 같다.
요즘 한국 여자골프 팬들이 느끼는 설렘의 중심에 중학교 2학년 아마추어 골퍼 김서아가 있다. 2012년 1월생이니 이제 갓 14세다. 171cm의 큰 키, 29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에 프로 무대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대담함까지 갖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주니어무대에서 8승을 거둔 그는 중학교 진학 후 바로 주니어상비군으로 뽑혔다. 워낙 실력이 탁월해 아마추어선수지만 대회 특별초청 자격으로 프로 대회에도 출전해 프로 선수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 5월 KLPGA투어 더 시에나 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오르며 프로 선수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KLPGA사상 최연소(14년4개월23일) 홀인원 기록도 세웠다. 대회 평균 드라이브 거리 241m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지난주 일본에서 열린 미아자토 아이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에서는 구와키 시호(19언더파) 나가이 카나(18언더파)에 이어 16언더파로 단독 3위에 올라 일본 골프 팬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골프 팬들은 이런 선수에게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유망주는 언제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서아에게서는 단순한 조숙함 이상의 무언가가 보인다.
첫째는 압도적인 신체 조건이다. 여자골프에서 비거리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LPGA를 지배하는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장타를 갖추고 있다. 김서아는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도 않은 나이에 이미 프로 최상급 수준의 비거리를 보여준다. 300야드를 넘기는 드라이버 샷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이 완성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14세의 신체는 앞으로 얼마든지 성장한다. 근력과 체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고, 기술이 안정되면서 비거리는 더 늘어날 것이다. 현재의 장타가 재능이라면, 미래의 장타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둘째는 강심장이다. 장타는 연습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큰 무대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능력은 타고나야 한다. 그를 지도하는 코치들은 공통적으로 강심장을 이야기한다. 프로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며, 갤러리의 환호를 즐길 줄 안다.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보여준, 경쟁자의 좋은 플레이에 박수를 아끼지 않는 모습도 드문 장점이다.
셋째는 배움에 대한 진지한 태도다. 주변의 평가를 보면 김서아는 질문이 많고 호기심이 강하다. 단순히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려 한다. 재능이 정상까지 데려가는 것은 아니다. 재능에 학습 능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세계 정상급 선수가 탄생한다.
김서아는 앞으로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 답은 자신이 이미 말하고 있다. 그는 프로 대회를 치른 뒤 가장 부족함을 느낀 부분으로 퍼팅과 에이밍을 꼽았다. 숏게임과 퍼팅을 보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이 조급함일 것이다. 프로 무대에 서면 누구나 빨리 성공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지금 한 선수의 출발선을 보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 중반 사람들은 어린 박세리를 보며 미래를 상상했다. 2000년대에는 신지애를 보며 그랬고, 이후에는 고진영과 박성현을 보며 설렜다. 물론 김서아가 그 길을 그대로 걸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골프는 냉정한 스포츠다. 재능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부족하다. 운과 건강, 그리고 수많은 선택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이 LPGA투어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을 숱하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상할 자유가 있다. 언젠가 LPGA 최종일 챔피언조에서 300야드 가까운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김서아의 모습을. 세계 랭킹 1위를 향해 힘차게 걸어가는 김서아의 모습을.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음을 떠올리는 즐거움을.
골프 팬의 행복은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를 보는 눈과 미래를 꿈꾸는 상상력. 김서아는 지금 한국 골프 팬들에게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선물하고 있다. 아직 피지 않은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더욱 기대된다. 그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 자체가 골퍼들에겐 이미 하나의 즐거운 골프 여행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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