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파된 밤섬, 여의도에 밀려나…실향민들 58년 전 ‘국가폭력’ 규명한다

장종우 기자 2026. 6. 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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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62가구 강제이주 당해
“썰매 실은 살림, 얼음 깨져 잃어버려”
와우산 터 잡고도 재개발로 또 밀려나
폭파 전 서울 마포구 서강동 쪽에서 바라본 밤섬의 모습. 밤섬의 조선공들은 왼쪽 백사장에서 배를 만들었고, 오른쪽 백사장엔 나룻터가 있었다. 밤섬보존회 제공

서울 한강 한복판, 서강대교 아래 놓인 ‘밤섬’은 현재 1만 마리 철새만 머물고 떠나길 반복하는 무인도지만, 한때는 62가구 443명이 살던 섬이었다. 주민들은 땅콩 농사를 짓거나 한강 나룻터를 오가는 배를 수리하며 살았다. 날이 가물면 노량진까지 이어지는 하얀 백사장에서 아이들이 뛰놀았고, 마을 사당 ‘부군당’에 ‘부군님’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강 위에 뜬 섬마을의 평온은 1968년, 한강·여의도 개발을 명분 삼은 폭파음과 함께 사라졌다.

15일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과거 밤섬에 살았던 주민들인 밤섬 실향민 100여명이 오는 23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피해인정)을 신청한다. 1960년대 서울 개발 과정에서 이뤄진 강제이주의 폭력성과 인권 침해를 조사해달라는 취지다.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배배상 소송도 낼 계획이다.

밤섬은 1968년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주도한 한강·여의도 개발 여파로 물에 잠겼다. 당시 서울시는 여의도를 ‘서울의 맨해튼’으로 만들겠다는 계획 속에 밤섬의 바위와 모래를 개발에 이용했다. 섬을 폭파해 한강물이 잘 흐르도록 만들어 범람을 막겠다는 명분도 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밤섬 주민들에게 폭력적인 이주가 강요됐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최후 퇴거 통첩 보름만인 1968년 1월 속전속결로 섬에서 쫓겨났다. 밤섬 주민이었던 성정부(86)씨는 “하필 얼음이 녹을 때였다. 한 가족은 이삿짐을 썰매에 싣고 나오다가 얼음이 깨져서 살림살이를 다 잃어버렸다”며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보상금은 전체 주민 앞에 2020만원이었다. 현재 가치로 6억6천만원 정도로, 당시 이주가구가 62가구였던 것을 고려하면 한 가구당 고작 1천여만원 정도의 보상만 주어진 셈이다.

밤섬 폭파 이후 실향민들이 모여 산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 실향민들은 밤섬이 보이는 와우산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밤섬보존회 제공

주민들 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애초 밤섬이 보이는 와우산으로 이주시켜주겠다던 서울시 약속은 미뤄졌다. 주민들은 현재 상수역 일대에 천막을 짓고 수개월을 노숙했다. 유정림(95)씨는 “가족 5명이 3~4평 남짓 좁은 맨바닥에, 주워 온 나무판자나 스티로폼 등을 깔고 난로에 의지한 채 겨울을 보내야 했다”고 기억했다. 주민들 반발에 서울시는 와우산 이주를 허락했지만 불도저로 땅을 한 번 밀어줬을 뿐,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나 자금은 지원받지 못했다. 결국 주민들은 맨손으로 직접 집을 올려 새로 마을을 세웠다. 그마저 1995년 와우산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또 밀려났다.

가난은 대물림됐다. 밤섬이 없어진 해에 태어난 마성인(58)씨는 “같은 학교를 다녀도, 우리는 와우산에 사는 ‘산사람’이라고 괄시 받곤 했다. 밤섬에 계속 살았더라면 좋은 학교도 다닐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서울시와 정부가) 강제 이주 이후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어렵게 살았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은 진실규명을 통해 서울 개발 과정에서 입은 피해를 뒤늦게라도 보상받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지승민(64) 밤섬보존회 사무국장은 “밤섬에 살았던 주민들 80%가 돌아가셨다.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밤섬 실향민의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원곡의 공익법률센터인 파이팅챈스의 변상철 국장은 “밤섬 강제 이주는 여의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명백한 국가 폭력”이라며 “화려한 ‘한강의 기적’ 뒤에 철저히 가려졌던 58년의 일방적 희생인 만큼, 국가 차원의 명확한 진실 규명과 배상이 책임 있게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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