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마음을 연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운 유폴로지스트

1961년 11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린뱅크(Green Bank) 천문대에 10명의 과학자가 은밀히 모였다. 미 국립과학원 우주과학위원회가 전파천문학자와 화학자, 신경생리학자, 컴퓨터 공학자 등 분야별 내로라하는 석학들을 초대한 자리. 외계문명 탐사 가능성을 두고 사흘 밤낮을 토론했다는 그 자리에서 ‘외계 지적 생명 탐사(SETI)’ 프로젝트가 사실상 시작됐다.
돌고래 연구 권위자인 신경생리학자 존 릴리(John C. Lilly)의 연구에서 착안, 스스로를 ‘돌고래 교단(Order of the Dolphin)’이라 불렀던 그들의 실질적 리더는 한 해 전 독자적으로 외계 전파신호 탐지 프로젝트(Ozma Project)에 착수한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였다. 우리 은하 내 외계 지적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확률적 공식인 ‘드레이크 방정식’이 처음 발표된 곳도 그 자리였다.
그 회의가 비밀리에 열린 까닭은 우선 참가자들의 평판과 경력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외계인은 유사과학의 ‘이야깃거리’였다. 또 온갖 상상력과 음모론으로 외계인이 이미 지구를 들락거리고 있다고 믿던 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1609년 8월 26일)에 기록된 호리병 같은 불덩어리나 2차 세계대전 파일럿들이 여러 차례 목격했다는 구형의 빛 덩어리 ‘푸 파이터(Foo Fighter)’를 UFO( Unidentified Flying Object)라 믿던 사람들, 연초 작고한 자칭 우주인 고고학자 에리히 폰 데니켄이 ‘신들의 전차(1968)’를 출간하기 전부터 피라미드와 나스카 지상화가 외계 문명의 유산이라 여기던 사람들, 미국 정부가 UFO 파편과 외계인 시체를 감춰두고 있다는(던) 사람들…. 당시는 UFO 음모론의 전성기였다.
또 당시는 첨예한 냉전기였다. 1948년 미국이 안보 차원의 UFO 공식 조사에 나섰다. ‘블루북 프로젝트’ 등 여러 이름으로 명명된 UFO 정체 규명 프로젝트. ‘UFO’란 명칭을 만든 것도 51년 블루북 프로젝트였다. 영국도 윈스턴 처칠의 과학 자문 헨리 티저드 경(Sir Henry Tizard)의 주도로 1950년 각군 엘리트 기술 정보 장교들을 주축으로 한 국방부 산하 ‘비행접시 작업반(Flying Saucer Working Party)'을 꾸렸다.
훗날 공개된 비밀문건들에 따르면, 두 기관은 부정과 비밀이란 두 원칙하에 운영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UFO 목격담 등을 과학적 근거(빛의 산란-굴절에 의한 착시나 기상 현상 등)로 논파해 대중적 동요를 잠재우는 임무,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특이 현상은 잠재적 안보 위협 - 극비 사항으로 분류해 분석- 봉인하는 임무. 하지만 정부 기대와 달리 UFO 서사는 사이비 과학과 음모론을 넘어 이단 종교로까지 번지며 소모적 진실게임의 양상으로 확산돼갔다.
1991년 영국 국방부의 만 26세 공무원 닉 포프(Nick Pope)가 발령받은 부서가 속칭 ‘UFO 데스크(공식명 공군참모본부 Sec 2A)’였다. UFO 등 초자연현상 목격담과 사진 등 자료를 수집, 관련 부서와 함께 진위와 실체를 분석하는 극비 부서. 동료들이 그를 ‘섬뜩이(Spooky)’란 별명으로 부르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1977년 SF 영화 ‘미지와의 조우’ 주제곡을 흥얼거려도 그가 늘 웃어넘겼던 건, 그의 생각도 그들과 다르지 않아서였다. “(당시) 나는 UFO를 밤늦게 개랑 산책하거나 거나하게 취해 귀가하던 이들이 보곤 하는 밤하늘의 희뿌연 불빛 정도로 여겼다.”

만 3년 ‘데스크’에서 일하며 그는 1,000여 건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약 80%는 항공기 조명이나 기상관측기구, 신형 정찰기나 유성-위성 현상으로 확인됐고, 약 15%는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떠한 기존 과학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특이 사례도 약 5%에 달했다.” 베테랑 공군(RAF) 조종사가 경력상의 오점 위험을 무릅쓰고 인터뷰에서 밝힌 “육체를 짓뭉개기에 충분한 중력 가속도로 급상승-강하하며 사라진 비행체” 목격담 등이 거기 해당됐다.
재무-회계부서로 옮겨 일하던 1996년 그는 어렵사리 국방부 승인을 받아 논픽션 ‘열린 하늘, 닫힌 마음(Open Skies, Closed Minds)’ 을 출간했다. “나는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너무 비밀스러워서 우리는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전쟁. 그 사안들 중 일부가 정말 외계인의 소행이라면, 그들은 반인류적 범죄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세상을 외계인- 초자연 현상 신드롬에 빠져들게 한 미국 FOX사의 인기 SF드라마 ‘엑스파일(X-Files, 1993년 첫 방영)'이 한창 방영되던 때였다.
첫 책의 사뭇 자극적인 어조는 점차 누그러졌지만, 그는 평생 현대 첨단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UFO/UAP(미확인 이상현상, Unidentified Anomalous Phenomena)’가 실재하며,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해박한 지식과 경험, 또 "특유의 겸손함과 과학적 균형 감각"으로 저급한 음모론과 싸우고 극단적인 UFO 부정론자들을 비판했던, 그럼으로써 대중뿐 아니라 주류 과학진영에서도 비교적 폭넓게 존중받아온 유폴로지스트 닉 포프가 식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0세.
포프는 영국 국방부 과학자문이던 항공 공학자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햄프셔주 명문 사립 중등 기숙학교(Lord Wandsworth College)를 졸업한 뒤 만 19세에 국방부에 취업, 반테러리즘과 감찰 등 여러 부서를 거쳐 UFO 담당관이 됐다. 완고한 UFO 회의론자에서 불과 3년 만에 신념의 유폴로지스트가 된 자신의 ‘회심’을 그는 2008년 한 칼럼에 이렇게 썼다. “내가 갑자기 작은 초록색 인간을 믿게 된 게 아니라(…) 레이더가 저 밖에 있는 모든 걸 알려주지 못할 가능성을 깨닫게 됐다는 의미다.”
영국 국방부 공무원은 종신의 비밀 유지 의무를 진다. 알려진 바 당시 국방부는 그의 책 출간을 막을 경우 음모론의 또 다른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판단, 철저한 사전 검열과 함께 국방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문구를 책에 명기하는 조건으로 출간을 승인했다. 진짜 ‘섬뜩이’가 된 그는 그 무렵 조직 내에서 상당한 고립감과 압박감을 느꼈고, 또 그래서 ‘비밀 전쟁’ 같은 자극적인 표현까지 쓰게 됐다고 훗날 회고했다.
BBC 등 주류 언론은 그의 책을 경력-상술의 결과물일 뿐 물증이나 실제 기밀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난센스”라고 폄하했지만, 대중지 ‘데일리 메일’ 등에 대대적으로 소개되며 단숨에 영국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는 현실판 ‘X파일의 폭스 멀더’라 불리며 뜨겁게 주목받았다.
그는 국방부 안보국 부국장 대리 직책을 끝으로 2006년 은퇴할 때까지, 또 은퇴 후 숨질 때까지 UFO/UAP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단행본과 강연,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피력했고, 히스토리채널 다큐멘터리에 고정 출연하고 여러 SF영화에도 자문으로 참여했다. 한 강연에서 그는 “소 6마리를 구한 적도 있었지만, … 긴 얘기니까 그만두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가축 집단 의문사-외계인 소행 의혹 조사와 관련 있을 것이다. 미국의 민간 외계 현상 연구 조사기구인 ‘뮤추얼 네트워크’ 사무총장 데이비드 맥도널드는 "그가 강연하면 거기가 어디든 객석이 가득 차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UFO 목격담 중 가장 신뢰도가 높고 자료도 풍부한 ‘렌들셤 포레스트 사건(Rendlesham Forest Incident)’을, 역시 정부 검열-승인하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1980년 12월, 미 공군이 주둔하던 랜들셤 나토 핵심 군사기지 인근 숲으로 하강하던 수상한 불빛을 미군 수색대가 추적, 삼각형 모양의 금속성 비행체를 발견한다. 한 병사는 금속 표면을 만지고 기묘한 상형문자 같은 표식까지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그 비행체는 강한 빛을 내며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틀 뒤 다시 불빛이 나타나자 기지 부사령관(Charles Halt, 당시 중령)이 직접 수색팀을 이끌고 출동한다. 그들은 그 빛 덩어리가 여러 개의 작은 빛으로 쪼개지며 하늘로 솟구친 뒤 기지 상공을 선회하다 사라진 과정을 함께 목격했다. 미 공군 베테랑 장교와 군인 수십 명의 일치된 목격담, 또 그들이 경악하는 현장 육성 오디오 파일까지 확보된 사건이었다. 인근 등대 불빛 굴절 오인설, 유성우 설 등 회의론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군인들은 “지구상의 기술이 아니었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영국 국방부는 진상 해명 없이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조사를 종결했다.
1990년 8월 4일,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작은 마을 캘빈(Calvin) 인근에서 두 명의 하이커가 촬영한 “UFO 연구 역사상 가장 정밀하고 선명한 UFO 사진”도 있다. 밤 9시 무렵 소리 없이 정지 비행 중이던 직경 30m가량의 마름모꼴 비행체에 해리어(Harrier) 전투기가 접근해 선회 정찰하는 모습을 담은 6장의 컬러 사진. 촬영 직후 비행체는 수직으로 급상승하며 순식간에 사라졌고, 문제의 사진은 ‘2076년까지 기밀’로 묶여 국방부 극비 파일 속에 묻혔다. 하지만 당시 한 공군 공보관이 원본 사진 한 장을 몰래 간직했다가 2022년 8월 언론에 공개하면서 그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 속 비행체에 대한 진실 역시, UFO설과 미국의 극비 신형 스텔스 정찰기 설 등으로 엇갈린다.
책에서도 강연에서도 그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곧장 외계인의 소행이라는 의미는 아니”며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늘 강조하곤 했다. 그는 툭하면 자신의 말을 왜곡하거나 부풀리는 UFO 신봉자-음모론자들 못지않게 “비행접시가 집 뒷마당에 착륙해도 그걸 설명할 수 없으면 그런 사실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들의 편견”에 대해서도 무척 비판적이었다. 그는 “UFO가 외계인의 방문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 가능성은 “확률은 아주 낮지만 영향력은 엄청난 시나리오”이며 “그건 잠재적 국방, 안보, 민항기 비행 안전의 문제인 동시에 흥미로운 과학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2010년 10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UFO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산호세대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와이스(Elizabeth Weiss, 2024년 명예교수 은퇴)와 이듬해 1월 결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 정착했다. 고인류 화석학자인 와이스는, 과학 연구를 위해 원주민 유골 반환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이력이 있는 완고한 과학주의자로, ‘X파일’의 회의주의자 ‘데이나 스컬리’처럼 포프 곁을 지켰다. 둘은 자녀 없이 해로했다.

'그린뱅크 회의' 50주년을 앞둔 2010년 1월과 10월, 영국 왕립학회가 대규모 학제 간 토론회를 개최했다. 외계 문명 탐사의 과학적 기술적 의제를 넘어 '발견-조우 이후'의 정치 사회 종교적 영향과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행사였다. 외계 전파 신호에 답장을 할 것인가, 누가 지구인의 대표가 돼야 할까 등이 주요 의제였다. 포프 역시 실무-미디어 전문가 겸 내부 관찰자로서 정식 초대를 받았고, NBC뉴스 특별 기고 등을 통해 행사의 주요 쟁점과 의미 등을 세상에 알렸다. 유폴로지는 지금도 커리어 리스크가 없지 않은 유사-프린지 과학으로 분류되지만, ‘갈릴레오 프로젝트’의 하버드대 천문학자 아비 로앱(Avi Loeb), 프랑스 천문학 컴퓨터 과학자 자크 발레(Jacques Vallee) 등 과학적 엄밀성을 유지하면서 UFO 현상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도 있다. 2017년 12월 미 해군 전투기가 촬영한 UAP 적외선 영상과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해온 UAP연구 프로젝트(Advanced Aerospace Threat Identification Program, AATIP)가 공개된 뒤 미 의회 공개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유사과학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과학 매거진 ‘스켑틱(Skeptick)’의 창간 발행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과학적 회의주의 전도사 같은 학자이지만, 그도 ‘설명 불가능한 5%’가 UFO에 대한 과학적 추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2022년 자신의 팟캐스트에 포프를 초대한 그는 다만 유폴로지스트들이 빠지기 쉬운 ‘확증 편향’의 함정, 특히 ‘신봉자의 역설(The Believer’s Paradox)’을 경계했다. 그건 외계인의 지구 방문을 신봉하는 이들은 설명 불가 사례 한두 건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회의론자는 모든 사례를 확증적으로 반박해야 하는, 다시 말해 증거의 문턱이 다른 데서 비롯되는 구조적 역설의 함정이다.
포프는 2026년 2월 ‘스켑틱’ 기고문에서 (미국 정부처럼) ‘첨단항공우주’라는 완곡한 표현을 UFO/UAP연구의 위장막으로 활용해온 이들이야말로 ‘앎'과 '추정'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라며 유폴로지는 늘 그랬듯 대중적으로 뜨거운 주목을 받다가 주변부로 밀려나곤 하겠지만 연구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저 기고문을 쓰던 무렵 그는 식도암(4기)과 전이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그가 트위터로 암 진단 사실을 알리자 수많은 팬들의 편지가 쇄도했다. '기적의 치유법' 등과 함께 전해진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여러분의 선의와 친절은 잘 알지만) 내 진단과 상황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여기까지다(I can't beat it)."
히스토리 채널은 “포프는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넘어 더 넓은 시야에서 무엇이 가능할지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촉구했다”며 그를 기렸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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