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 격투장 된 백악관… “검투사로 대중 현혹하던 로마 떠올라”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UFC 경기라니. 믿어지나요? 정말 초현실적인 장면입니다.”
14일(현지 시각) 사상 처음 워싱턴 DC의 백악관을 무대로 하는 이종격투기(UFC) 경기 ‘UFC 프리덤 250’이 이날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데이나 화이트 UFC 최고경영자(CEO)의 공동 입장으로 시작됐다. 두 사람이 백악관 사우스론의 우뚝 솟은 특설 무대 ‘더 클로(claw·집게발)’가 보이는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자, 경기를 생중계하던 CBS 해설자이자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성향의 인플루언서 조 로건이 흥분된 목소리로 “믿어지지 않는다”고 외쳤다.
미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공군 선더버드와 해군 블루 엔젤스 소속 전투기 12대가 상공에서 편대 비행을 했고, 사우스론을 가득 메운 관객 약 4500명은 연신 “USA(미국)”를 외쳤다. 세계 정치의 중심인 백악관이 이날만큼은 외교·안보의 무대가 아닌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거대한 세트장으로 변신했다. 트럼프 특유의 파격적 연출이었다.
◇ “미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밤”

이날 오후 8시 시작한 경기는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체급별로 총 7경기가 진행됐다.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경기인 만큼 모든 선수가 손목에 성조기가 수놓인 맞춤형 빨간·하얀·파란색 장갑을 착용했다. 트럼프는 팔각형 경기장인 ‘옥타곤’ 바로 앞자리에 앉아 배우자 멜라니아 여사와 아들 트럼프 주니어·에릭·베런, 손녀 카이 등과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현장에는 트럼프 정부 내각 주요 인사와 공화당 의원들도 총출동했고, 행사 중간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가 트럼프 쪽으로 다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특히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이란과의 종전(終戰) 양해각서(MOU) 합의 소식이 알려져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백악관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밤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독립 250주년을 맞아 ‘국민의 집’인 백악관에서 장관이 펼쳐지는 것은 적절한 헌사”라고 했다. 선수들이 평소 백악관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몸을 풀었고, 의장대 사열을 받아 본관을 통해 경기장에 입장하는 모습이 생중계를 탔다. 첫 경기부터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며 선수들이 피투성이가 되자 관객들이 열광했다. 경기 중간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빌리지 피플의 ‘Y.M.C.A’도 흘러나왔는데, 헤비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조시 호킷은 “이런 행사를 연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낸다” “미셸 오바마는 남자”라고 말해 트럼프 지지자들을 열광시켰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배우자 미셸이 ‘남자’라는 건 트럼프가 유포해 매가 진영에서 유행했고 지금도 종종 등장하는 음모론이다. 밴텀급 경기에선 미국의 션 오말리가 캐나다의 에이먼 자하비를 꺾었다. 이 경기를 보며 트럼프는 ‘USA’가 적힌 흰색 모자를 썼고, 오말리가 승리를 거두자 객석에선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 900억 넘게 쏟아부은 ‘백악관 UFC 쇼’
이날 행사를 주관한 UFC의 화이트 CEO는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정치적 후원자로, 트럼프의 주요 지지 그룹 중 하나인 2030 남성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UFC 측은 전 세계를 상대로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린 이번 행사에 평소보다 3배 많은 6000만달러(약 900억원) 이상 지출했다. 행사 후 잔디를 복구하는 데만 70만달러가 넘게 드는데, 최종 손실이 3000만달러가 넘어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가 무대 가설 상황까지 챙겨가며 행사 준비를 꼼꼼하게 챙긴 가운데, 연방 정부 기관 7곳 이상이 대회 준비에 투입되고 백악관이 보안 비용으로 1000만달러 이상 부담한다는 점은 논란이 되고 있다. UFC는 지난 11일엔 국무부와 격투기를 활용한 ‘스포츠 외교’에 관한 업무협약도 맺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백악관에서 UFC 경기를 하는 상황을 ‘달 착륙’에 비유했다. UFC는 백악관 바로 앞 ‘디 일립스’ 공원에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는데, 화이트는 추첨을 통해 1인당 티켓을 2장씩 무료로 배부했다. 최대 8만5000명이 운집한 것으로 보인다고 AP 등 미 언론은 전했는데, 장당 100~200달러에 티켓을 판매하는 암표상의 모습도 보였다.
◇ 현대판 ‘검투 경기’ 비판도

이날 오후부터 워싱턴 DC 주요 도로가 통제돼 장갑차, 전술 차량 등을 동원한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공원 앞은 행사장에 입장하려는 UFC 팬들로 긴 줄이 들어섰다. 이번 경기를 놓고는 2월 시작돼 장기화한 중동 상황, 고물가, 관세·반(反)이민 정책 등에 대한 사법부 제동 속 여러 실정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쇼’라는 지적도 상당한 편이다.
3~8일 진행된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선 응답자의 16%만이 행사 개최가 ‘적절하다’고 응답했고,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절반에 가까운 46%였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행사장 인근에서 트럼프와 J D 밴스 부통령 등을 조롱하는 인형 조형물을 설치한 채 “그들을 체포하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UFC가 아닌 USA’ ‘진짜 싸움은 민주주의를 위해 해야 한다’는 피켓도 등장했다.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은 “국민이 식료품,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동안 대통령은 국민의 잔디밭에서 ‘개츠비 놀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코넬대의 고전학 교수 마이크 폰테인은 이를 고대 로마 제국의 검투사 경기와 비교했다. 당시 통치자들은 검투사들이 서로 잔혹하게 싸우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며 오락거리를 제공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기를 높이고 사회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는 것이다. 폰테인 교수는 “이것은 매우 전형적인 통치 전략”이라며 “고대 로마에서는 이를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es)’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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