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방송 전문 채널서 ‘드라마 명가’로

김민정 기자 2026. 6. 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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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시장의 작은 돌풍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 변호사 ‘우영우’(배우 박은빈). /KT스튜디오지니

시청률 순위 100위권 밖에서 ‘재방송 채널’로 통했던 방송이 ‘웰메이드 드라마’ 채널로 성장했다. 최근 드라마·예능 분야에서 ‘작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채널 ENA(사명 KT ENA) 이야기.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최고 시청률 17.5%, 이하 ‘우영우’)로 흥행 신드롬을 일으키더니, 올해 드라마 ‘허수아비’(최고 시청률 8.1%)로 인기몰이를 했다. ENA는 최근 광고 시장 타깃 시청자로 통하는 ’2049 주간 시청률’에서 전 채널 중 5위(5월 넷째주)에 올랐다. 창사 이래 최고 기록이다.

올해도 ENA는 서스펜스 넘치는 법정물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나영·정은채·이청아 주연)부터, 배우 주지훈·하지원의 만남으로 주목받은 ‘클라이맥스’, 그리고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에 색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입힌 ‘허수아비’(박해수·이희준 주연)까지 작품성과 화제성으로 주목받았다. 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업계와 배우·제작진 사이에서도 ‘웰메이드 드라마 채널’로 눈도장을 찍었다.

ENA의 2049(광고 시장 타깃 시청자) 시청률 순위(닐슨코리아)는 2021년 24위에서 올해 7위로, 전체 가구 시청률 순위는 2021년 38위에서 올해 12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여기엔 이름 없는 방송사로서 ‘파격적’ 선택을 해온 다년간의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 인생의 많은 것을 잃고도 옳은 길을 가는 ‘허수아비’(2026)의 형사 ‘강태주’(박해수). /KT스튜디오지니

◇‘재방송’ 경력이 작품 고르는 눈 됐다

ENA는 2003년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가 ‘SkyHD’라는 이름으로 만든 채널이었다. ENA로 이름을 바꾼 건 2022년. 타사 프로그램을 재방하다가 2018년부터 자체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재방 전문 채널로 지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 될만한 작품을 골라내던 업력(業力)이 ‘선구안’으로 이어진 것. 다른 방송사에서 주목 받지 못하던 대본을 선택해 성공한 게 바로 ‘우영우’와 ‘허수아비’였다. ‘우영우’는 한 지상파 방송에서 편성에 어려움을 겪던 작품이었고, ‘허수아비’도 어두운 소재 때문에 수년간 편성 채널을 찾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김호상 ENA 대표는 “ENA는 초기에 지상파 등의 콘텐츠 재방송 채널로 시작한 만큼 작품을 기획하고 선별하는 역량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도 자부심이 있었다”며 “다양한 타사 작품을 골라 수급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른바 ‘잘될 것 같은 작품’을 찾아내는 시야를 꾸준히 넓혀왔다”고 했다. 이 밖에 ‘신병’ ‘착한 여자 부세미’ ‘유어 아너’ 등 대중성과 신선함을 함께 갖춘 드라마로 시청자층을 넓혀 왔다.

기업 회장과 계약 결혼 후 유산을 노리는 이들을 피해 신분을 바꾸는 경호원 ‘김영란’(전여빈·가운데)의 이야기 ‘착한 여자 부세미’(2025). /KT스튜디오지니

◇전통 방송사 틀에 갇히지 않고 성장

ENA 드라마가 힘을 받은 데는 예능 콘텐츠의 기여도 컸다. 업계 최초로 다른 채널과의 공동 제작을 통해 나온 예능이 ‘나는 SOLO(솔로)’(ENA·SBS Plus 공동 제작)와 ‘강철부대’(채널A·ENA 공동 제작)다. 공동 제작을 선택함으로써 제작비 부담을 덜고 IP를 확보하는 동시에 채널 인지도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당장 본방송 시청률로는 상대 채널보다 불리하더라도, 재방송 채널로 출발한 만큼 재방송과 반복 노출을 통해 승부를 볼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고 했다.

이런 전략의 바탕에 있는 ENA만의 강점은 ‘전통적인’ 방송사 틀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유튜브 콘텐츠를 TV에 방영하는 시도는 젊은 시청자를 끌어 모았다. TEO, 안테나 플러스 같은 콘텐츠 회사와 손잡고 TV에 유튜브 콘텐츠를 편성한 것이다. 이런 협업으로 나온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대표 시즌제 예능으로 자리 잡았고, ‘풍향고2’ ‘살롱드립’ ‘전과자’ 등 인기 콘텐츠들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박철민 ENA 편성센터장은 “기존 채널들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장르와 소재의 작품들을 편성하고 그 성공 사례가 쌓이며 현재의 ENA가 된 것 같다”며 “ENA와 제작사인 KT스튜디오지니, 그리고 KT까지 3사가 각자의 관점에서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검토한 뒤 통합 회의체를 통해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도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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