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간다움을 붙잡으려는 마지막 의지[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는 지하 공간에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하르키우는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도시라 전쟁 초기부터 가장 심각한 공격을 받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공습경보가 일상이 됐고, 많은 시민들이 한동안 지하철역과 지하공간을 피란처로 삼아야 했다. 정상적인 공연장은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예술가들은 공연을 멈추지 않았다. 콘크리트 벽과 전선이 드러난 공간에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이어갔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지상에서는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는데, 지하에서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전쟁은 사람에게서 일상을 빼앗아 가지만, 예술은 그 무너진 일상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끝까지 붙잡게 만든다. 음악은 총알을 막을 수 없고 건물을 복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아직 살아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이런 장면은 역사 속에서도 반복돼 왔다. 가장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는 독일군에게 포위됐고, 도시는 거의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몰려 갔다. 굶주림과 추위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거리는 침묵과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도시에서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는 포위전이 시작된 레닌그라드에서 교향곡 7번 작곡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대피했지만, 작품은 곧 소련 전체에서 ‘저항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1942년, 레닌그라드 한복판에서 이 작품을 실제로 연주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세워졌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였다. 단원 대부분이 굶주림과 전쟁으로 죽거나 전선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아 있던 연주자들은 영양실조 상태였고, 리허설 도중 쓰러지는 일도 반복됐다.
그래도 연주의 의지는 이어졌다. 당국은 전선에 흩어져 있던 군악대 연주자들까지 불러 모았고, 쇼스타코비치의 악보는 포위망을 뚫고 레닌그라드로 전달됐다. 폭격과 포위 속에서 가까스로 도착한 악보는 도시의 마지막 숨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1942년 8월 9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홀에서 교향곡 7번이 연주됐다.
그날 연주는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연주는 스피커를 통해 도시 전체와 독일군 진영 방향으로도 송출됐다. 굶주린 연주자들은 거의 움직일 힘조차 없는 상태에서 연주를 이어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음악은 단순한 교향곡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는 외침이었다.
생각해 보면 전쟁은 단지 사람의 생명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전쟁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은 단순한 취미나 위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음악을 아름다움과 연결해서 생각한다. 물론 음악은 아름답다. 그러나 음악의 진짜 힘은 단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음악은 인간이 가장 무너진 순간에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삶이 완전히 폐허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다시 하루를 버티게 하고 살아가려는 의지를 붙들어 준다. 그래서 음악은 평화로운 시대의 사치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극한의 상황 속에 놓였을 때 더욱 절실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은 먹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지만,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려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음악은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고 폭격을 멈추게 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힘은 될 수 있다. 그래서 전쟁 속의 음악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의지이기도 하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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