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창] ‘석굴암’의 김대성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

인간의 신앙과 예술적 열망이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날 때 어떤 작품이 탄생할까.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 질문에 대한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답변 가운데 하나다. 천 년의 시간과 동서양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두 건축물은 종교적 이상과 예술적 집념이 빚어낸 걸작이라는 점에서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최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세기 말 착공 이후 14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건축 대장정이 마침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설계자인 안토니오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맞아 그의 건축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굴암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중심에는 각각 김대성과 가우디가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을 주도한 김대성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한 가우디는 시대도 종교도 살아간 환경도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건축을 단순한 기술이나 생업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그들에게 건축은 더 높은 세계를 향한 인간의 열망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삼국유사는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설화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는 신라인들이 불교적 이상과 효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석굴암이라는 실재하는 결과물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화강암 구조와 완벽에 가까운 비례, 불국정토를 구현하려는 공간 구성은 당시 신라인들이 추구했던 종교적 이상과 예술적 수준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를 보여준다.
가우디 역시 자연 속에서 창조주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건축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는 말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사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공사가 너무 오래 걸린다는 말에 "나의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일화는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에게 성당 건축은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신앙을 돌과 빛으로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석굴암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형태도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다르다. 석굴암은 침묵 속의 명상에 가깝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하늘을 향해 울려 퍼지는 찬가에 가깝다. 하나는 산속의 고요함으로 다가오고 다른 하나는 빛과 첨탑의 장엄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두 건축물이 향하는 곳은 같다.
인간을 넘어서는 세계에 대한 경외심이다.
오늘날의 기술로 비슷한 건축물을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석굴암을 다시 창조할 수는 없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다시 탄생시킬 수도 없다. 건축은 모방할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시대의 정신과 종교적 이상 그리고 한 인간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열망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석굴암 앞에서 숙연해지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올려다보며 경탄한다. 그것은 건축기술에 대한 감탄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넘어서는 어떤 가치를 향해 얼마나 치열하게 헌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경외심이다.
김대성과 가우디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천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생을 바칠 수 있는가.
토함산의 화강암과 바르셀로나의 첨탑은 오늘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인간의 신앙과 예술적 열정이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날 때 비로소 영원이라 불릴 만한 작품이 탄생한다고.
그래서 석굴암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인간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세월이 흘러도 마모되지 않는 영혼의 기념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