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전쟁 끝났다… 호르무즈는 일단 숨통
트럼프 “통행료 없이 해협 개방”
60일간 비핵화 협상, 험로 예고

100일 넘게 이어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사실상 끝났다. 이란에 의해 닫혔던 호르무즈해협도 다시 열린다. 공급 위기를 맞았던 세계 에너지 시장에 일단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다만 최종 합의를 위한 60일간의 이란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경우 해협이 도로 막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개전 전 상황 회복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미국 입장에서 어리석은 전쟁이었다는 혹평이 나온다.
감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14일 오후 5시 29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이란과의 합의가 지금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중재국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가 엑스(X)를 통해 “양측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군사 작전 종료를 선언했다”고 알린 지 10여 분 만이었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도 국영 TV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합의 사실을 확인했다.
양측이 종전에 합의한 것은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며 전쟁이 발발한 지 106일 만이며, 4월 8일 휴전에 합의하고 협상에 착수한 지 두 달여 만이다. 서명식은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다.
최근 양국 정부 당국자들 소개에 따르면 양해각서(MOU) 형식인 이번 합의로 이란은 30일간 기뢰 제거를 진행하며 해협을 점진적으로 재개방하되 최종 합의를 위한 휴전 협상 기간인 60일간은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미국의 반대급부는 4월 휴전 합의 뒤 지속해 온 이란 항구 왕래 선박 차단, 즉 해상 봉쇄의 해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을 거듭 부각했다. 합의 사실 공개 때 “세계의 선박들은 엔진을 가동해 석유가 흐르도록 하라”고 생색내더니 한 시간쯤 뒤 다시 SNS를 통해 “금요일(19일) 합의 서명 직후 해협이 개방되면 기뢰 제거가 진행되며 석유는 그 지역(중동)과 전 세계를 위해 양방향으로 다시 흐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지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해상 운송량을 복원하기 위해 이번 합의가 설계됐다. 해협은 전쟁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0%를 소화했다”고 전했다.
협상 타결로 해협 재개방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당장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초반대로 급락했다. 지금껏 해협 안쪽에 갇혀 있던 원유와 정제유 약 6,000만 배럴이 즉시 빠져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산유량을 줄였던 걸프(페르시아만) 국가들도 하루 최대 1,100만 배럴의 생산량을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공급망이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앞서 호르무즈해협이 두 달 넘게 봉쇄되자 국제 유가는 전쟁 전 대비 40~60%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전쟁 전의 약 1.5배다. 고유가가 부추긴 물가 상승에 11월 중간선거 전망이 어두워지자 조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4월 휴전 합의 후 전면전 재개를 사실상 포기하고 필사적으로 협상에 매달렸다. 합의를 선언한 날은 마침 그의 80세 생일이었다.

본전
100여 일간의 전쟁으로 미국이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이란 정권 교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고, 초토화했다고 자랑했던 이란의 미사일 및 무인기(드론) 발사 능력도 휴전 기간 크게 회복됐다는 게 미국 정보 당국의 평가다. 자유로운 통항이 보장되던 호르무즈해협에는 오히려 통행료가 부과될 가능성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합의가 궁극적으로 호르무즈해협의 영구적 통행료 면제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란 반관영 타스님뉴스는 자국이 해당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목표인 이란 핵 개발 저지도 불확실하다. MOU에는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비준 당시 이란이 일찌감치 확인했던 ‘핵무기 개발·획득 포기’ 약속만 포함됐다. 이란 내 고농축(60%) 우라늄 처리 방안을 포함해 비핵화와 관련한 구체적 방법론은 전부 추후 협상 의제다.
반면 100일 이상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공세를 버텨 낸 이란은 추후 협상을 통해 제재 해제 등을 얻어낼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호르무즈해협이 강력한 억지력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깨닫게 됐다. 그렇다고 이란의 승리라고 하기도 어렵다. 이란에서만 3,300명 이상의 사망자와 2만 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전쟁으로 인한 대부분의 인명 피해가 이란에서 발생했다.
양국 모두 큰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미국은 기껏해야 전쟁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종전 합의를 이뤄낸 셈이다. NYT도 “이란은 전쟁 전 해협 통행료를 징수한 적이 없다”며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귀를 트럼프 대통령이 축하하고 있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진보 성향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는 2015년 대선 출마 시 중동에서의 전쟁들을 멍청하다(stupid)고 비난하며 선거운동을 시작했는데, 정작 본인이 그 전쟁을 일으켰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젠슨 황이 매력 느낄 기업 없다"… 日, 한국 삼겹살 회동에 'AI 위기론'-국제ㅣ한국일보
- 전쟁 중에도 이란에 공들인 李정부,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조기 탈출 이어질까-정치ㅣ한국일보
- "이 대통령은 월드클래스 지도자"… 李 경고 후 자세 낮춘 정청래-정치ㅣ한국일보
- 양향자 "좀비 지도부 사퇴해야"… 장동혁 "국민 모욕" 격분-정치ㅣ한국일보
- 22일 전국 스타벅스 일찍 문 닫는다… 정용진 회장도 '역사 인식' 교육-경제ㅣ한국일보
- 가세연 주주 된 '장사의 신', 김세의 체제 제동… 법원에 임시이사 선임 신청-사회ㅣ한국일보
- 주식으로 돈 번 30대의 종착지… 1조2592억, 집 사는 데 썼다-경제ㅣ한국일보
- '사면초가' 장동혁, 운명의 한 주… 스스로 퇴진 시기 밝힐까-정치ㅣ한국일보
- '재선거'만 외치는 장동혁… 호응 없는 국민의힘 "국조부터"-정치ㅣ한국일보
- '참교육' 완주한 안민석… "'교권보호국' 신설 여부 공개 토론하자"-사회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