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장기 간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 4가지... '이 상황'에선 1분 1초가 골든타임
간은 흔히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손상이 시작돼도 좀처럼 티를 내지 않다가, 기능의 90% 이상이 망가진 뒤에야 비로소 증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황달과 복수, 갑작스러운 의식 변화, 출혈처럼 눈에 띄는 신호가 나타났을 땐 이미 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간 기능이 완전히 멈추는 간부전으로 치닫는 순간이다. 특히 의식이 흐려지는 간성 혼수가 뇌부종까지 동반하면 1분 1초가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이 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생체 간 이식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고 그 성적 또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이식외과 이재근 교수(신촌 세브란스병원)는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것"이라며 작은 신호도 가볍게 넘기지 말 것을 당부한다. 간이 보내는 위험 신호부터 간 이식 수술까지, 이 교수에게 자세히 들어봤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는데, 그래도 알아챌 수 있는 신호가 있을까요?
간은 증상이 늦게 나타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증상이 보이면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장 비특이적인 증상은 피로감인데, 예전 같지 않은 피곤함이 지속되면 간을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특이적인 심각한 신호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황달(눈·피부가 노래지거나 소변 색이 진해짐), 둘째 복수(살이 찐 것과는 다른 형태로 배가 부어오름), 셋째 간성 혼수(갑자기 멍해지거나 기억력 감퇴, 공격성, 의식 저하), 넷째 출혈(혈변, 토혈 등 위장관·식도정맥류 출혈)입니다.
그런데 간은 다른 장기와 달리 악화 정도와 증상이 꼭 비례하지 않습니다. 많이 망가졌는데도 증상이 경미하게 나타날 수 있어요. 대략적으로 말하면 간이 약 90% 이상 망가져야 이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작은 증상이라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병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간부전이란 정확히 어떤 상태인가요? 급성 간부전의 흔한 원인도 궁금합니다.
간부전(liver failure)은 간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를 말합니다. 자동차 엔진에 비유하면 덜덜거리는 단계가 아니라 엔진이 탁 멈춘 상태입니다. 크게 급성 간부전과, 기존 만성 간 질환이 갑자기 악화되는 '만성 간부전 급성 악화'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간부전이 되면 사망 위험이 매우 높고, 약물로 회복되지 않으면 응급 간 이식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급성 간부전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약물입니다.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진통제·소염제를 잘못 복용하거나 과다 복용하는 경우, 다이어트 약, 한약재 등 본인과 맞지 않는 약을 갑자기 많이 복용한 경우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핵 약에서도 드물게 심한 간 독성이 올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챙기는 한약이나 건강기능식품도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나요?
네, 그럴 수 있습니다. 음식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우리 몸에서 대사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간이나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한약재나 건강식품이 누군가에게는 잘 맞아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좋은 성분도 대사 중간 단계에서 정체되면 독성 물질로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다고 무조건 많이 먹는 것이 답은 아니며, 복용 중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생각보다 심각한 간 손상이 올 수 있으니 즉시 큰 병원에서 진료받아야 합니다.
평소 간 건강은 어떻게 체크할 수 있을까요?
정상인이라면 기본적인 간 수치 검사(AST, ALT, 감마GT, 총 빌리루빈 등)와 국가에서 권장하는 초음파 검사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B형 간염 보균자, 음주력이 있는 분, 지방간이 있는 분들은 최소 6개월에 한 번 피검사, 1년에 한 번 초음파 등 영상 검사가 꼭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도 갑자기 간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주기적인 검사가 필수입니다.
간이 나빠지는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요?
간 이식을 받는 환자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첫째 술(알코올성 간경변), 둘째 B형 간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고 빠르게 늘고 있는 원인은 대사성 간 질환(MASLD)입니다. 흔히 말하는 성인병(고혈압, 당뇨, 비만)과 함께 나타나는 지방간이 진행되어 간경변이나 간부전까지 가는 경우입니다. 그 외에 다른 바이러스성 간염, 윌슨병, 자가면역 간염 등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과거에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이라고 불렀는데, 의학이 발달하면서 '대사성 간 질환'으로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술과 관계없이 관리를 하지 않으면 당뇨나 비만이 생기듯, 간도 관리하지 않으면 대사 문제가 생기면서 지방간이 발생하고, 이것이 2차적으로 간경변이나 간부전까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했는데도 항체가 생기지 않는 경우,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B형 간염은 혈액으로 전파되는 질환입니다. 주사기 재사용, 출생 시 수직 감염, 문신 등이 주요 감염 경로이고, 일상생활에서는 옮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체가 생기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간 이식은 어떤 경우에 고려해야 하나요?
예전에는 큰 수술이라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간부전 환자가 보존적 치료만 받은 경우와 이식을 받은 경우의 생존율이 3배에서 10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이식을 고려합니다. 응급 이식이 필요한 대표적인 상황은 첫째 간성 혼수(특히 뇌부종 동반 시 1분 1초가 골든타임), 둘째 식도정맥류 출혈(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름), 셋째 응고 장애로 인한 자발적 출혈, 넷째 간신 증후군(간이 나빠지면서 콩팥까지 망가지는 경우)입니다.
우리나라가 생체 간 이식 비율이 유독 높은 이유가 있나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뇌사 기증자 문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활발하지 않아 가족 간 기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우리나라 생체 간 이식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2017년 보고된 우리나라 전체 데이터를 보면 기증자 합병증 확률이 약 1.9% 정도로 매우 낮고, 사망 사례도 없을 정도로 안전합니다.
간 이식을 받으면 얼마나 살 수 있나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체 간 이식의 1년 생존율은 약 90%, 9~11년 생존율은 73~75%입니다. 이 수치는 보통 60~70대에 이식받는 분들이 많은 점, 그리고 교통사고나 다른 암 등 모든 사망 원인을 포함한 통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즉, 초반만 잘 넘기면 간 자체 문제로 사망할 확률은 매우 낮다는 의미입니다.
간 이식 공여자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요?
기본적으로 지병이 없는 건강한 분이어야 하고, 병원마다 나이나 약물 복용 제한 기준이 조금씩 다릅니다. 간의 크기도 중요한데, 공여자 안전을 위해 남는 간이 최소 30~35% 이상이어야 합니다. 받는 사람 체중 1kg당 약 8g의 간이 필요해서, 50kg이면 약 400g, 100kg이면 약 800g 정도가 필요합니다. 간은 '포도송이' 같은 구조라서 단순히 무게만 맞춰 잘라낼 수 없고, 혈관과 담도 구조를 모두 고려해 절제해야 합니다.
간 이식 후 공여자와 수혜자의 간은 얼마나 자라나요?
공여자는 대부분 간의 우엽(전체 간의 60~65%)을 기증하고, 남은 좌엽이 3개월 정도면 원래 간의 90~95% 이상까지 자라기 때문에 평생 문제없이 살 수 있습니다. 수혜자는 공여자만큼 많이 자라지는 않고, 보통 받은 간이 70~85% 정도까지 자랍니다. 간문맥압 등 환자 상태에 따라 자라는 비율이 달라집니다.
간이 나빠진 상태에서도 생활 습관 개선으로 되돌릴 수 있는 단계가 있나요?
있습니다. 간경변에 이르기 전 단계인 지방간이나 지방 간염은 충분히 되돌릴 수 있습니다. 간경변 중에서도 보상이 잘 되고 있는 '대상성 간경변' 단계라면 관리에 따라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수, 황달, 식도정맥류 출혈, 간신 증후군, 간성 혼수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비대상성 간경변' 단계가 되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라도 무시하지 말고 지금이 어떤 단계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권태원 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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