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의 인문기행 ] ③ 일본인들의 만행을 용서하고 싶은 아름다운 바다
<김약국의 딸들> 중 가장 예쁘고 활달하던 용란이
아편쟁이 남편에게 매맞고 친정으로 도망가던...

[<사람과 산> 박기성 전문기자] 동피랑을 내려가 중앙시장에서 도미·쥐치회와 해물매운탕 점심을 먹고 '(전쟁이 끝나) 병장기를 씻는 관청' 세병관(洗兵館)으로 향한다.
1605년 통제사 이경준이 세운 국보 305호로 정면 9간, 측면 5간 기와집이 장엄하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에 전사했으니 생전에 이 건물을 못 보셨다. 뒤편 가운데 세 칸에 45cm 높이의 '궐패 (闕牌)를 모시는 단'을 설치하고 중방(中枋) 위를 판벽으로 꾸며 그려 놓았다는 무인도(武人圖)를 보려고 서둘러 대청으로 올라선다.
당나라풍 그림이라는데 고리타분한 삼강행실도 같아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중방에 분합문을 달고 양옆에 홍살을 설치한 공간은 경복궁 근정전 못지 않은 엄정함을 뿜어내고 있다.
매표소에서 얻은 관람안내도에는 세병관 이후 좌우 어느쪽부터 보라고 했나 싶어 펴보니 삼도수군통제영 권역 전체가 거대한 독수리 형국을 하고 있다. 가운데 세병관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통제사 집무공간인 운주당(運籌堂)과 살림집 내아(內衙), 오른쪽에는 열두공방(工房), 서남쪽에는 참모장이라 할 우후(虞候)의 집무공간 우후영을 두었다.
건물 배치 자체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구도인 동시에 문외한으로 하여금 통제사 휘하 조직과 역할을 짐작하게 만든다. 8전선(戰船)을 보유한 우후 병력을 중군(中軍), 직할대로 썼다는 걸 보면 군단장 아래 직할사단이 없는 지금 우리 군대 편제 와는 많이 다르다 싶다.
세병관 서쪽의 쪽문으로 나가면 우선, 각 방의 수직(守直)이 머물던 잉번청(仍番廳)이 맞는다. 오늘날로 치자면 숙직실이다. 이후 통영갓으로 유명한 입자방(笠子房), 통영부채의 선자방(扇子房), 통영소 반의 소목방(小木房), 나전칠기의 패부방(貝付房), 통영꽃신의 화자방 (靴子房), 야금 전문 야장방(冶匠房), 총통을 만드는 총방(銃房), 귀금속을 다루는 은방(銀房), 옷장이나 궤의 장석 제작 주석방(朱錫房), 활과 화살, 전통의 동개방(筒箇房), 말 안장은 안자방(鞍子房), 그리고 상자방(箱子房)의 열두공방을 지난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한 농업국가 조선에서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앞부분에 열거된 명품들로 조정에 진상을 하고 나아가 일반 판매까지 해 시설 유지 비용을 충당한 듯하다.
공방들 사이에 비교적 큰 건물이 하나 있어 보니 백화당(百和堂), 중국 사신 등 손님 접견실이면서 비장청(裨將廳)으로 썼던 곳이라고 한다. '화할 화'자를 쓴 까닭이 어렴풋이 짐작되는바 이 귀빈들 잘 때는 객사인 세병관으로 가 궐패단 양쪽에 붙어있는 객실로 들었을 것이다.
솔바람 시원한 후원을 돌아 운주당 뒷동산에 이르니 아담한 삼간정자 의두헌(依斗軒)이 맞는다. 1805년 통제사 유효원이 세운 휴게시설로서 180도로 펼쳐진 선자(扇子)서까래가 일품이다.
순전히 자귀만으로, 가늠으로 치목(治木)하는 것이라 일본인들이 절대 따라하지 못한다는 기술. 대개는 모퉁이에 90도 정도만 보여주는데 여기는 접부채처럼 180도를 폈다. 그럼에도 삿갓지붕이나 우진각지붕이 아닌 팔작지붕으로 꾸며 조선 목조건축의 기량을 한껏 뽐내고 있다.
운주당 권역 담장 너머 동쪽에서 주전소(鑄錢所)라는 뜻밖의 유적과 마주친다. 상평통보를 만들던 곳으로 지금까지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에서 돈을 만들었다"는 기록만 있었는데 2007년 경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유물과 유구가 처음으로 발견되었다는 현장이다. "아니!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돈도 만들었어? 그냥 군사시설이 아니네~." 임시 전시관 안에서는 밀랍 인형들이 열심히 동전 주조 작업을 하고 있다.
통영 시내에 있던 역대 통제사 비석들을 옮겨 모아놓은 비림(碑林)을 지나 정문 망일루(望日樓)를 나오면서 옆에 있는 '항복을 받아내는 집' 수항루(受降樓)를 살펴본다. 그리고 들어갈 때부터 궁금했던 의문을 마침내 푼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의 승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1677년 통제사 윤천뢰가 건립한 것이다.
매년 봄가을에 군기(軍器)를 점고(點考)하고 왜병으로부터 항복을 받는 의식을 거행 하던 누각으로 원래는 옛 한일은행 부근(항남동 93-1) 병선마당 앞에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훼철된 것을 1987년 삼도수군통제영 경내에 복원, 극일혼을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는 유래의 집이다. 누구한테 항복을 받아냈을까가 내내 궁금했는데 결국 일본이었고 실제로 그런 사실은 없었으니 그냥 정신승리의 산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현육각에다 통영오광대까지 동원되었을 그 오페라,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싶다.
한산도로 가기 위해 여객선터미널로 갔더니 배는 네 시 반, 6시, 두 척이나 있는데 돌아올 방법이 없단다. 가는 데 이삼십분밖에 안 걸린다면서 어떻게 나올 수가 없지?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하나 남은 버킷리스트 북포루로 향한다. 서문터 고갯마루에서 시작하는 산길, 문화빌라 옆은 떨어진 홍도 꽃잎으로 땅바닥이 새빨갛다. 대밭을 지나 잘루목부터는 편백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통영이 남쪽 바닷가 고을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황산(艅艎山 173.8m) 정상, 통영성 치(雉) 위에 세워진 북포루에서는 통영의 모든 것이 다 보인다. 동남쪽으로 내려가던 능선이 다시 솟구쳐 이룬 동포루, 서호만으로 뻗어나간 용머리 위에 함초롬히 얹혀있는 서포루, 지금은 시가지가 된 중앙시장까지 바닷물이 찰싹였을 '바다광장' 강구안, 미륵섬 동북쪽 끝의 윤이상국제음악당은 물론,
<김약국의 딸들> 중 가장 예쁘고 활달하던 용란이 아편쟁이 남편에게 매 맞고 서문고개를 넘어 친정으로 도망갈 때 지나치던 명정샘 마을 명정동까지 속속들이 더듬어볼 수 있다.
"통영 미항 진짜 맞네~. 여기 안 올라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
편백나무숲을 되짚어 내려갈 즈음 명정고개로 뻗어가는 북쪽 능선과의 사이 골짜기에서 수백 마리의 나비떼가 올라온다. 여기저기 산철쭉은 붉어도 아직 나비가 날아다닐 시기는 아닌데~ 싶어 그 떼의 선두가 눈앞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보니 전부 벚꽃잎이다. 세상에! 어떻게 벚꽃잎이 나비로 보일 수 있지?



글.사진 박기성 전문기자 l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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