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생성형에서 에이전트로… AI 반도체 수요 어디까지 가나
TSMC 가격 인상·SK 신규 팹 검토… 삼성전기는 신사업 확대
노무라증권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제 시작"… AI 인프라 투자 경쟁 확산

AI 반도체 수요가 멈출 줄 모르고 한없이 치솟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시작된 지 3년 가까이 지났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수요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오히려 글로벌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능력을 늘리고 신규 투자를 검토하며 더 큰 수요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그 중심에는 엔비디아가 제시한 새로운 AI 산업 청사진이 있다.
AI 경쟁이 단순히 반도체 칩을 확보하는 단계를 넘어 AI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전력, 냉각 설비를 포함한 'AI 공장' 구축 경쟁으로 진화하면서 반도체 수요 역시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젠슨 황 "AI는 GDP 생성기"… 'AI 공장' 시대 그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GTC 2026 기조연설에서 "AI는 이제 수익 창출 도구가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생성기"라고 선언했다. AI가 단순한 생산성 향상 도구를 넘어 경제 성장 자체를 이끄는 인프라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황 CEO는 이날 발표 내내 에이전틱 AI를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2년 전 이 자리에서 에이전틱 AI를 이야기했는데 이제 에이전틱 AI가 도착했다"며 "유용한 AI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말하는 에이전틱 AI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생성형 AI를 넘어선 개념이다. 이해하고 추론하며 계획을 세우고 행동까지 수행하는 AI를 뜻한다. 기업들은 이런 AI를 활용하기 위해 더 많은 연산 능력과 메모리,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필요로 하게 된다.
엔비디아의 정체성도 달라지고 있다. 황 CEO는 차세대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을 공개하며 "과거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회사였지만 지금은 시스템 회사이고 앞으로는 AI 인프라 회사"라고 말했다. 또 "고객들은 컴퓨터를 사는 것이 아니라 AI 공장을 구축하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AI 산업의 경쟁 방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GPU 확보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네트워크, 스토리지, 전력, 냉각 시스템을 아우르는 AI 인프라 전체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한국 찾은 황 CEO… AI 생태계 확장 신호탄
GTC 이후 이어진 황 CEO의 한국 방문 역시 이러한 변화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황 CEO는 5일간 한국에 머물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삼성전자 경영진,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황 CEO는 메모리 공급 계약이나 개별 제품 협력 수준을 넘어 AI 인프라 전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는 HBM4와 HBM4E, HBM5, 파운드리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은 회동 뒤 "HBM4와 서버용 저전력 메모리 모듈(SOCAMM), 파운드리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며 "내년부터는 HBM4E와 HBM5, 장기적인 협력 방안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SK그룹과는 AI 팩토리 구축을 위한 협력 확대를 발표했다. 황 CEO는 SK하이닉스에 대해 "엔비디아의 가장 큰 메모리 파트너"라고 언급하며 HBM 공급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황 CEO는 이달 초 열린 컴퓨텍스 2026에서 최 회장을 만난데 이어 한국에서도 다시 회동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한국을 단순한 메모리 생산국이 아니라 AI 인프라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로 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TSMC 가격 인상·SK 신규 팹 검토… 공급 부족은 현재진행형
AI 반도체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점은 글로벌 공급망 기업들의 움직임에서도 확인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는 최근 반도체 가격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웬델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에 따른 비용 증가를 언급하며 가격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웨이저자 회장 역시 주주총회에서 가격 인상 의사를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TSMC가 이미 첨단 공정 가격을 인상했으며 2027년까지 주문 물량이 확보돼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TSMC는 AI 거품론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웬델 황 CFO는 "AI라는 메가트렌드에 대해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며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고객들과 직접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차세대 수요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일본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어딘가로 가지 않을 수는 없다"며 신규 공장 건설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어딘가에 가려고 하면 인프라가 엄청나게 필요하다"며 "전력도 땅도 사람도 물도 다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요 둔화가 예상된다면 가격 인상이나 신규 생산거점 검토 같은 결정이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여전히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이유도 AI 산업 확대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GPU 넘어 전력·냉각까지… 넓어지는 AI 공급망
부품 기업들 역시 AI 수요에 적극 대응하며 신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기의 실리콘 캐패시터 사업이다. 삼성전기는 최근 AI 반도체용 실리콘 캐패시터 양산 전략을 공개하며 AI 서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순간 공급하고 전력 노이즈를 제거해 반도체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 부품이다. AI 서버용 GPU와 HBM은 막대한 전력을 순간적으로 소비한다. 반도체 성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공급 안정성과 노이즈 억제가 중요해진다. 기존에는 GPU와 HBM 자체가 주목받았다면 이제는 이를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는 전력 관리 기술까지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기는 기존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와 반도체 패키지 기판에 더해 실리콘 캐패시터까지 확보하며 AI 서버용 핵심 부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냉각과 전력 분야도 주목받고 있다. 실제 LG그룹은 최근 엔비디아와 AI 데이터센터용 냉각 솔루션과 전력 인프라 협력을 논의했다.
AI 산업이 확대될수록 반도체를 둘러싼 생태계 역시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슈퍼사이클 이제 시작"… AI 고점론 지우는 시장
시장에서도 AI 반도체 수요가 지금의 호황을 넘어 향후에도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이는 최근 AI 산업이 생성형 AI를 넘어 에이전틱 AI와 로봇, 자율주행, 제조업, 클라우드 인프라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활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필요한 연산 능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황 CEO가 언급한 AI 공장 시대가 현실화될 경우 AI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전력 인프라, 냉각 시스템,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을 포함한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새롭게 구축될 것으로 관측된다.업계에서는 반도체 수요 역시 예상보다 더 길고 강한 상승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사이클이 이어졌던 산업이 이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등도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향후 10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 리처시는 글로벌 AI 칩 시장 규모가 올해 약 1217억달러에서 2035년 1조1046억달러로 거의 10배 가까이 치솟을 것으로 예상했다. 향후 10년간은 매년 20% 이상 고공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다수 기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정창원 노무라증권 아시아 리서치 공동대표는 "올해 메모리 월별 매출액이 수직 상승 중"이라며 "AI가 이끄는 메모리 수요는 향후 5년간 수만 배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AI 기업의 투자 부족 우려는 이미 시장에서 사라졌다"며 "이제는 메모리 수요가 계속될 것이라는 펀더멘털에 대한 믿음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현 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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