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지역에 주방 기기 보급해 ‘탄소 감축’? “군부 정권 허위 데이터 가능성···배출권 발급 중단해야”

SK그룹, 한국전력 등 국내 대기업이 참여한 미얀마 ‘쿡스토브’ 보급 사업이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인권 침해와 불투명한 정보 공개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본래 사업 목적과는 다르게 군사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범죄를 세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후단체 플랜 1.5는 미얀마정책연구소·글로벌산림연합(GFC)·깁슨기후정의연구소 등과 함께 ‘논란에 휩싸인 탄소 크레딧’ 보고서를 15일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 기후변화센터가 주도한 쿡스토브 사업이 미얀마 군사정권 통제 아래 있는 천연자원환경보전부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며 “산림 파괴와 탄소배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한국 기업의 재정을 바탕으로 젠더 폭력 구조를 강화하고 군사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쿡스토브는 기존 재래식 취사도구보다 효율이 좋은 조리기기다. 연료 사용량이 적어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간 기업들은 미얀마, 케냐, 가나 등 개발도상국에 쿡스토브를 보급하고, 이를 통해 인정받은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탄소배출권을 발급받아 거래해 왔다.
보고서는 미얀마에서 진행된 쿡스토브 사업이 사가잉, 마그웨이, 만달레이 등 군사 정권 탄압이 가장 심각한 지역에서 이뤄진 점에 주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배출권 발급 대상 기간인 2021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해당 지역에서는 1153건의 정치적 분쟁과 물리적 공격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298건은 군사정권이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폭력이었다.
마 니니 윈 미얀마정책연구소 대표는 “기후정의는 중요하지만, 그러한 사업들이 지역 사회에 책임을 지고 분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지역주민의 현실과 필요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설계되고 이행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 정권의 공격에 노출된 민간인 가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권이 한국 기업의 감축량으로 활용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사업의 검증 절차가 부실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보안 우려 등을 이유로 사업 시행 지역에 대한 현장 실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우 투셍 미얀마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사가잉 지역에서 미얀마 군사 정권이 배출권을 발행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데이터는 검증이 불가능하며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중립적인 감사를 시행할 수 있을 때까지 배출권 인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쿡스토브가 현지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사업처럼 홍보되고 있으나, 정작 사업을 두고 협력하는 군부 통치하에서 여성들이 심각한 젠더 기반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점 역시 모순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쿠데타 이후 군인, 군사정보요원, 민병대가 저지른 성폭력이 급증했으며 사가잉과 마그웨이 지역의 피해는 특히 심했다”며 “기업들은 여성의 무보수 노동에 기대 배출권을 발급받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면서, 가부장적 통제를 심화하는 군사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파리협정 크레딧 메커니즘(PACM) 감독기구에 해당 사업에 대한 배출권 발급을 즉각 증단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4211627001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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