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주민들의 든든한 대변인’ 이주민 공공의료통역 교육 현장 가보니[현장]

“뇌혈관 질환이 의심되면 통상 컴퓨터단층촬영(CT)을 먼저 하니까 알고 계시면 좋아요.”
지난 13일 대구 중구 한 의료기관 강당에 모인 수강생들에게 강사로 나선 신경외과 전문의가 이렇게 말했다. 전문 분야인 만큼 강사는 인체 모형과 그림, CT 사진 등을 곁들여 신경계 구조와 발생 가능한 질병 및 대처법 등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 애썼다.
강의실에는 이주민 20여 명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집중하고 있었다. ‘의료전문통역사’를 준비하는 이들로, 어려운 용어를 낮게 읊조리기도 하면서 눈과 손 등을 이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의료통역사는 대구지역 산업단지 등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이 공공 의료기관에서 자신의 병명이나 증상을 제대로 표현해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혈압 측정이나 채혈, 진료, 약제 수령 등을 위한 주요 동선을 환자와 함께하며 검사 결과 및 치료 지침을 전달한다.
이들은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동행)이 2023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통역 전문교육을 통해 양성됐다.
15일 동행에 따르면, 교육 참여자 수가 꾸준히 늘면서 올해는 베트남·중국·우즈베키스탄·몽골·네팔·캄보디아 출신 등 40여명이 수강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매주 3시간(총 20강)씩 산업 현장 및 일상에서 발생 가능한 진료 과목들과 통역인으로서의 역할을 배우고 있다. 한국의 의료보험 및 산재보험 등에 대한 지식도 익힌다.

강의를 모두 들은 뒤에는 별도 시험에 통과해야 의료통역사 자격을 얻는다. 교육 종료 후에도 실습과 보충교육 등을 통해 통역의 정교함을 다듬게 된다. 대부분 한국어에 능통한 이주민이지만 정확하고 신속한 진료를 위해서는 반복 학습이 뒤따라야 해서다.
베트남 출신으로 2007년 결혼이민 비자로 한국에 정착한 장혜은씨(39)는 “의료통역사 활동을 하면서 3년째 수업을 듣는데, 확실히 교육을 여러 번 들을수록 통역을 더 잘하게 되는 것 같다”며 “공장 노동자인 남편도 아파하는 이주민들에게 공감하며 (통역으로) 도와줄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고향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의료 통역은 제도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화 통역시스템은 있지만 의료전문 통역은 제공되지 않는다.
동행 측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과 이주민공제회 예산을 활용해 통역 교육을 추진 중이지만 예산 등의 한계로 사업 확대는 어렵다. 민간단체의 의지만으로는 사업을 지속할 수 없는 만큼 안정적인 지자체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통계청이 2024년 발표한 ‘이민자 체류 실태·고용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이주민 중 약 6%가 지난 1년 동안 아팠음에도 병원을 가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중 38.7%는 의사소통 어려움을 이유로 꼽았다. 동행 조사에서도 미등록 이주민 가운데 절반가량(43%)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고 답했다.
양선희 동행 대표는 “고용 허가를 받아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도 통역비 부담이 크다보니 큰 증상 없이는 의료기관을 찾기 힘든 실정”이라며 “의료통역사 양성 사업과 의료기관 내 통역사 상시 배치 등을 위해 대구시 관심과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유승민 대한체육회장, ‘개표소 봉쇄’ 잠실 시위에 “모든 법적 대응 방안 검토”
-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 “회생신청 불가피···월드컵 중계 정상운영”
- [속보] 종합특검 ‘윤 체포 방해 의혹’ 나경원에 출석 통보…나경원 “서면 답변하겠다”
- ‘리박스쿨’ 손효숙 “드루킹·손가락혁명군이 여론 왜곡…반국가 세력 막아야겠다 생각”
- “우리 투톱, 세계 최고” 허언이 아니었다···첫 경기부터 ‘2골·3도움’ 스웨덴 이삭·요케레
- [김민아 칼럼] 민주당은 지금 자신들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 지인들 속여 빌린 3000만원 해외주식 등에 탕진한 초등교사···징역 6개월
- 월드컵서 ‘눈 찢기’ 신원 드러난 멕시코 남성, 사과 후 보직 사퇴
- 중년 레즈비언의 시골 이장 도전기···웃음으로 편견 깨는 ‘이반리 장만옥’
- [단독]‘내란 가담 의혹’ 김명수 향하는 부하들 진술, “‘5·18 상황’ 우려해 철수 건의 조언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