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꽃 입은 한국팀, 런웨이 만든 콩고…월드컵 ‘패션 국가대항전’ [패션의 사회학]

이윤정 기자 2026. 6. 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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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국가대표팀 김민재가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의 협업 제품을 착용하고 워밍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월드컵은 원래 축구를 보는 무대다. 하지만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선수들의 플레이만큼이나 화려한 ‘의상’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경기 전 워밍업에서 지드래곤의 데이지 문양이 새겨진 상의를 입고 등장했고, 5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콩고민주공화국 선수단은 레오파드 무늬 정장을 맞춰 입고 공항에 나타났다. 프랑스는 세계적 디자이너 자크뮈스와 손을 잡았고, 캐나다는 드레이크의 브랜드 노크타(NOCTA)를 앞세웠다.

한때 유니폼은 국가를 구분하기 위한 경기복이었다. 그러나 이제 유니폼은 그 나라가 세계에 내놓는 문화적 명함에 가깝다. 역사와 정체성, 패션과 대중문화까지 담아낸 각국 의상은 월드컵 속 ‘패션 국가대항전’을 만들고 있다.

지드래곤이 디자인한 대표팀 ‘데이지’ 나이키 상의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가 협업한 티셔츠를 입고 워밍업 중인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 선수들. AFP연합뉴스

한국 대표팀이 지난 12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체코전 워밍업 과정에서 착용한 상의는 지드래곤과 나이키의 협업 제품이었다.

이번 컬렉션은 나이키가 월드컵을 앞두고 진행한 ‘X2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나이키는 지난 1일 한국을 포함한 7개 국가대표팀을 선정해 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한국은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 프랑스는 자크뮈스, 캐나다는 드레이크의 브랜드 노크타, 잉글랜드는 스트리트 브랜드 팰리스가 참여했다.

지드래곤이 디자인한 ‘타이거 오브 아시아(Tigers of Asia)’ 컬렉션은 단순한 응원복이 아니다. 대표팀 워밍업 상의뿐 아니라 저지, 트랙 재킷, 플리스 수트, 스니커즈까지 포함한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이다.

나이키는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축구를 스포츠가 아닌 문화로 해석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경기장 안보다 경기장 밖에 있다. 선수들이 입는 옷을 축구팬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도 구매하고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타이거 오브 아시아’ 컬렉션은 오는 16일 오전 10시 정식 출시된다.

공항을 런웨이로 만든 콩고
콩고민주공화국 대표팀 의상. 로이터연합뉴스

마치 런웨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 국가도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이다. 지난 12일 미국 휴스턴에 도착한 선수단은 가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레오파드 패턴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여행 가방 역시 같은 무늬로 통일됐다.

이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다. 콩고 대표팀의 별칭은 ‘레오파드’다. 여기에 콩고 특유의 패션 문화인 ‘라 사프(La Sape)’ 정신이 결합됐다. 라 사프는 콩고에서 발전한 독특한 패션 문화로, 화려한 정장과 세련된 스타일을 통해 자신의 품격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 운동이다. 프랑스어로 ‘우아한 사람들의 사회’의 약자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문화적 자존심과 자기표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번 정장을 디자인한 앨빈 주니어 맥은 “우아함은 자신의 역사를 몸에 입는 방식”이라며 “52년 만의 월드컵 복귀를 기념하는 동시에 콩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콩고는 1974년 ‘자이르’라는 국명으로 서독 월드컵에 출전한 뒤 무려 반세기 넘게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적 복귀 선언에 가까웠다.

유니폼에 독립전쟁을 새긴 아이티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 나선 아이티 대표팀의 도미니크 시몽(오른쪽)이 지난 5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페루와의 평가전에서 페루의 헤수스 프레텔과 볼을 다투고 있다. 아이티 대표팀 유니폼 오른쪽 하단에는 1803년 아이티 독립전쟁의 결정적 전투였던 ‘베르티에르 전투’ 장면이 실루엣 형태로 삽입돼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에서는 유니폼이 어디까지 국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그 중심에 아이티가 있었다. 아이티는 1974년 이후 5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념해 특별한 유니폼을 준비했다. 유니폼 오른쪽 하단에는 1803년 아이티 독립전쟁의 결정적 전투였던 ‘베르티에르 전투’ 장면이 실루엣 형태로 삽입돼 있었다.

당시 프랑스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운 혁명군이 국기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었다. 아이티 대표팀은 지난 5일 페루와 평가전, 뉴질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이 유니폼을 실제 착용했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둔 10일 국제축구연맹(FIFA)가 해당 디자인이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결국 아이티는 13일 스코틀랜드와의 월드컵 첫 경기를 앞두고 유니폼을 전면 교체해야 했다.

유니폼 제작사 사에타는 “정치적 표현이 아니라 아이티 국민의 자부심과 역사를 기리기 위한 디자인이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FIFA는 최종적으로 역사적 전투 장면이 포함된 요소를 삭제하도록 했다. 흥미로운 점은 FIFA가 금지한 원본 유니폼이 온라인에서 완판됐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논란이 커지면서 상징성은 더 강해졌다.

유니폼 위에서 벌어진 ‘별 전쟁’
른쪽 가슴에 별 7개 새긴 유니폼 입은 이집트 살라흐.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를 유니폼에 담으려는 시도는 아이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집트 역시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FIFA와 유니폼 규정을 둘러싼 조정을 거쳤다. 이집트 대표팀은 그동안 유니폼 엠블럼 위에 별 7개를 달아왔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AFCON) 최다 우승국이라는 자부심을 상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FIFA는 월드컵 본선에서는 월드컵 우승 횟수만 별로 표시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했다. 결국 이집트는 별 7개를 제거한 채 이번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이집트축구협회 관계자는 ESPN에 “약 4개월 전 FIFA로부터 관련 요청을 받았다”며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별 하나조차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축구계에서 별은 국가대표팀의 역사와 성취를 상징하는 강력한 기호다. FIFA가 이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유 역시 유니폼이 단순한 경기복을 넘어 국가의 역사와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어서다.

실제로 우루과이는 월드컵 우승 2회에도 유니폼에 별 4개를 달고 있다.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금메달을 FIFA가 당시 세계선수권으로 인정해 예외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패션 국가대항전’

축구 강국이자 디자인 종주국 프랑스도 유니폼에 사활을 걸었다. 프랑스축구협회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와 손잡고 월드컵 프리매치 컬렉션을 공개했다. 킬리안 음바페와 우스만 뎀벨레 등이 직접 모델로 참여한 이 컬렉션은 전통적인 축구 유니폼보다 패션 화보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캐나다는 드레이크의 노크타와 협업해 단풍잎과 거리 문화를 결합한 컬렉션을 선보였고, 잉글랜드는 팰리스 특유의 스트리트 감성을 입혔다.

패션업계는 이미 이번 월드컵을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닌 거대한 문화 플랫폼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패션지 보그는 최근 월드컵 관련 특집에서 “축구 문화의 영향력이 경기장을 넘어 일상복과 스트리트 패션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브랜드들이 패션위크보다 더 치열한 관심 경쟁을 벌이는 무대”라고까지 표현했다.

실제로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경기 결과만큼이나 유니폼과 훈련복, 공항 패션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은 K팝 스타 지드래곤을 앞세웠고, 콩고민주공화국은 자국의 라 사프 문화를 입었다. 아이티는 독립전쟁의 기억을 유니폼에 담으려 했고, 이집트는 별 7개에 담긴 축구 역사를 지키려 했다. 한때 유니폼이 국가를 구분하는 경기복이었다면, 이제는 각 나라가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 정체성을 세계에 소개하는 가장 강력한 시각 언어가 되고 있다. 월드컵의 경쟁은 더 이상 잔디 위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유니폼 한 벌에도 국가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됐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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