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 죽순, 솟아오를 때를 아는 채소

김희선 2026. 6. 1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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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죽순 맛있어요 (용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인 22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쌍둥이 판다 루이바오와 후이바오가 죽순을 먹고 있다. 2024.5.22 xanadu@yna.co.kr

비가 한 차례 지나가면 땅은 스스로 갈라지며 길을 낸다. 그 틈에서 밤사이에도 눈에 띄게 자라나는 것이 죽순이다. 옛사람이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로 변화와 생성의 상징을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죽순은 빨리 자라기만 하는 식물이 아니라, 땅속에서 오랫동안 힘을 기르다 때가 되면 한 번에 솟아오르는, 준비와 폭발이 함께 담긴 식재료다.

몸의 열을 내리는 채소

한의학적으로 죽순은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은 달면서도 약간 쓴맛을 함께 지닌 것으로 본다. 동의보감에는 죽순이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 소갈을 멎게 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번열을 풀어주고 기의 순환을 돕는다고 기록돼 있다. 본초강목에도 어린 죽순이 불면증을 다스리고 답답함을 없애며 눈을 맑게 하고 해독과 장 기능 촉진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이런 성질 때문에 옛 의서들은 죽순을 폐열로 인한 기침, 위열로 인한 속쓰림, 장열로 인한 변비처럼 몸속에서 위로 치솟는 기운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식재로 다뤘다. 다만 죽순은 속을 차게 하고 기를 동하게 할 수 있어 많이 먹는 것은 피해야 하며, 소화가 잘 안되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은 적게 먹는 것이 좋다고 전해진다.

옛 의서들이 죽순을 위·폐·대장경으로 들어가는 식재로 본 것은 흥미롭게도 현대 영양학의 설명과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있다. 위는 음식이 들어오는 첫 관문이고, 폐는 기운을 퍼뜨리는 곳이며, 대장은 찌꺼기를 내보내는 통로라는 점에서, 죽순이 이 세 길을 동시에 다스린다는 표현은 곧 '잘 먹고, 잘 순환시키고, 잘 내보내는' 양생의 기본 원리를 압축한 것이다.

실제로 죽순은 저칼로리·저지방 식품이면서 식이섬유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순은 100g당 약 20~30kcal로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장내 유익균을 늘리고 소화 기능을 개선해 변비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죽순 100g에는 식이섬유가 약 10~15% 정도 들어 있는데, 이 가운데 변비 개선에 효과가 큰 불용성 식이섬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불용성 식이섬유는 수분을 끌어당겨 변의 부피를 늘리고 장 세포를 자극해 장운동을 촉진하며, 중금속 등 노폐물을 함께 배출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칼륨 함량이 높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죽순에는 다량의 칼륨이 들어 있어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도와 고혈압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타이로신·글루탐산·콜린 등의 성분과 비타민 B·C가 풍부해 피로 해소에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또 플라보노이드 같은 항산화 물질과 철분·엽산이 함유돼 있어 노화 방지와 적혈구 생성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죽순의 흰 분말, 즉 타이로신 결정은 신경전달물질의 전구체로 작용해 집중력과 의욕을 높이는 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옛사람들이 죽순을 먹고 "마음이 맑아진다"고 했던 표현이 단순한 비유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몸이 가벼워지면 생각도 가벼워지고, 장이 비워지면 마음도 비워진다는 것―음식이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약선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죽녹원의 죽순과 대나무 숲 [담양군 제공]

수산(草酸) 때문에 데쳐 먹어야 하는 이유

죽순은 그 성질이 분명한 만큼 다루는 데도 지혜가 필요하다. 죽순에는 수산(옥살산) 성분이 들어 있어 반드시 데쳐서 사용해야 떫은맛과 자극을 줄일 수 있다. 옛 조리법에서 쌀뜨물에 삶고 오랜 시간 물에 담가뒀던 것도 자연의 성질을 사람의 몸에 맞게 조율하는 지혜였다.

우리 식문화에서 죽순은 죽순밥, 죽순탕, 죽순나물 등 다양한 형태로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특히 죽순과 육류를 함께 조리하는 전통은 차가운 성질의 죽순을 따뜻한 육류가 보완해 음양의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 단순한 맛의 조합을 넘어선 '몸을 위한 설계'였다고 볼 수 있다.

죽순은 또한 정신적 상징으로도 쓰였다. 땅속에서 묵묵히 힘을 기르다 때가 되면 한 번에 솟아오르는 모습은 군자의 덕을 닮았다는 평을 받았고, 맹종(孟宗)이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해 어머니를 봉양했다는 일화는 효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손자병법으로 본 죽순 요리

손자병법의 '작전'(作戰)의 장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오래 끌지 말 것, 낭비하지 말 것, 빠르게 끝낼 것.

전쟁이 길어지면 군량이 바닥나고 백성이 지치며 나라가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승패는 전장이 아니라 이미 준비와 운용 단계에서 갈린다는 뜻이다.

이 원리를 죽순에 비유해본다. 죽순은 땅속에서 오랜 시간 준비하다가 때가 오면 단숨에 솟아오른다. 망설임 없는 그 속도가 바로 손자가 말한 '속전속결'의 기운이다. 오래 머뭇거리면 죽순은 질겨지고, 제때 거두면 가장 부드럽다. 자연은 이미 작전의 법칙을 알고 있는 셈이다.

양생의 관점에서도 죽순은 '지체하지 않는 음식'이다. 성질은 미한하고 맛은 담백해 몸속의 열을 빠르게 식히고 막힌 기운을 아래로 내려준다. 위로 치솟은 화(火)를 오래 붙잡아 두지 않고 곧바로 흘려보내는 것―이것이 작전의 핵심인 '머무르게 하지 않는 힘'이다.

다듬어 놓은 죽순 [연합뉴스 자료사진]

죽순 생채 무침은 이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데쳐서 바로 무쳐 먹는 이 요리는 불필요한 과정을 줄이고 신선한 기운을 그대로 살린다. 아삭하게 부서지는 식감은 몸속에 쌓인 답답함을 단숨에 풀어준다. 오래 끓이거나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 작전은 간결할수록 강하다는 원리와 같다.

죽순밥은 쌀과 함께 익혀내 죽순의 맑은 기운을 밥 전체에 스며들게 하는 음식이다. 병력을 한 곳에 집중시켜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모여 힘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샐러드로 먹는 죽순은 기름과 열을 최소화해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는다는 손자의 원칙과 다르지 않다.

볶음 요리는 죽순을 고기나 버섯과 함께 볶아 차가운 성질을 중화하고 맛을 깊게 만든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동맹과 협력의 작전인 셈이다.

찜 요리는 은근한 열로 시간을 들이되 낭비하지 않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느려 보여도 내부에서는 치밀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완성되는 준비와 닮았다.

통조림 죽순은 신선함은 덜하지만 저장과 유통이라는 장점을 얻는, 전쟁의 보급로 확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편리함이 본질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잘 보관해도 갓 올라온 죽순의 생명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손자가 경계한 '형식이 본질을 이기게 두지 말라'는 가르침과 통한다.

담양대나무축제-죽순요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쌓임을 풀어주는 음식

우리 몸도 전쟁과 다르지 않다. 병은 쌓이면서 시작된다. 열이 쌓이고, 노폐물이 쌓이고, 감정이 쌓인다. 죽순은 이 쌓임을 풀어주는 음식이다. 장을 움직여 배출을 돕고 열을 내려 마음을 편하게 한다. 먹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생각이 맑아지는 이유다.

옛사람들에게 죽순은 맛있는 봄나물이었고, 시기와 속도를 가르치는 자연의 스승이었다. 너무 이르면 덜 익고, 늦으면 이미 굳는다. 인생도 건강도, 타이밍을 놓치면 본래의 힘을 잃는다.

손자는 전쟁을 말했지만 그 본질은 삶에 있다. 오래 끌지 말고, 버려야 할 것을 쥐고 있지 말며, 흐르게 하라. 죽순 한 접시는 그 모든 말을 대신한다. 죽순을 먹는다는 것은 계절의 맛을 즐기는 일을 넘어, 삶의 속도를 되찾는 일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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