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로켓배송의 사각지대 '다단계 하청'... 30일 연속 밤새 일했다
쿠팡의 '다단계 하청'으로 일해온 배송기사들이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에는 계약서도 없이 일하거나, 실적을 맞추느라 30일 연속 밤을 새 사람도 있었다.
쿠팡이 다단계 하청 구조를 알면서도 방치해왔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쿠팡은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히려 처우가 악화된 배송기사도 있었다.
시골도 로켓배송되는 이유, '2차 하청' 때문이었다
유재석 씨는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있는 유일한 쿠팡 배송기사다. 인구 2,800여 명의 지방 소도시인 대산면에는 2024년부터 쿠팡 로켓배송이 시작됐다. 재석 씨도 이때부터 쿠팡 기사로 일했다.
논밭이 대부분인 대산면에서는 고객도 대부분 농업 종사자들이다. 재석 씨의 배송 트럭은 매일 좁은 논길을 달렸다. 급경사, 급커브 많은 비포장 언덕길과 산길도 자주 통과했다. 곳곳이 긁힌 재석 씨의 트럭은 '로켓 배송'의 고단함과 위험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대산면 면적은 약 44㎢로 인구 약 55만 명의 서울시 강남구(40㎢)보다 넓다. 사람은 적고 땅은 넓으니 당연히 배송지 간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배송지에서 다음 배송지까지 짧으면 10분, 길면 20분은 가야 했다. 재석 씨는 "하루 주행 거리가 100km는 넘는다. 원래 한 달 주유비로 약 60만 원이 나오는데, 지금은 유가가 올라 80만 원 가까이 든다"고 말했다.
여름이 힘들죠. 그런데 겨울이 더 힘들어요. 눈 있으면 (차가) 못 가니까. 차가 뒤집히는 경우도 많아요. 처음에는 사고 많이 나죠. 저희는 도시하고 다르게 물도 저희들이 배달하고, 20kg 넘는 상품도 배달해요. 배송료는 똑같아요. 머리핀 하나, 냉장고도 똑같죠. 건당 850원입니다.
- 유재석 / 쿠팡 배송기사


재석 씨는 ‘쿠팡맨'이지만 쿠팡의 직원이 아니다. 쿠팡 기사 중 약 70%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쿠팡의 배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이하 쿠팡CLS)가 하청 배송업체(일명 영업점)에 특정 구역의 배송을 맡기면, 해당 영업점이 다시 기사와 위수탁 계약을 맺는 구조다. 이렇게 계약된 노동자를 '쿠팡 퀵플렉스 기사'라고 부른다.
재석 씨도 처음에는 자신도 평범한 퀵플렉스 기사인 줄 알았다. 배송기사용 쿠팡 앱에서 그는 C&K라는 영업점 소속으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재석 씨는 자신이 C&K의 재하청을 받는 2차 영업점 A물류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겉으로만 1차 하청일 뿐, 실제로는 2차 하청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고창군에서 일하는 다른 쿠팡 기사들도 사정은 똑같았다고 한다. 재석 씨는 "고창에서 C&K에 소속돼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른 지역은 1차 영업점에서 직접 고용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도 그런가 한 번 알아봤는데, 그렇게 고용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두 번 떼이고 내려온 배송료... 똑같이 일하고 적게 번다
쿠팡 퀵플렉스 기사는 배송 건당 수수료로 먹고산다. 쿠팡은 구역별 건당 배송료를 정한 뒤, 영업점에 지급하고 있다. 이후 영업점은 여기서 회사 운영을 위한 비용·이윤 등을 수수료 명목으로 제하고, 기사에게 주는 형태다.
그런데 재석 씨와 같은 2차 하청 기사의 경우, 중간에 영업점이 하나 더 껴서 역시 돈을 떼 간다. 그만큼 2차 하청 기사가 받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재석 씨는 "C&K와 A물류에서 모두 일정 부분 돈을 공제한 뒤 주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물류 대표는 수수료 이중 차감 사실을 인정했다. 고창에서 만난 A물류 대표는 "여기서도 수수료를 떼고 C&K도 떼는 거냐"는 질문에 "나도 떼고, 거기도 뗄 것이다. 그냥 주겠느냐"고 답했다. C&K 측은 "소도시에서는 쿠팡이 상품 분류, 배송, 센터 임대 등을 영업점에 맡기는데, 그중 배송에 해당되는 금액을 책정해 (2차 영업점에)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재석 씨는 쿠팡이 최초 지급한 배송료가 1·2차 하청을 거치며 얼마나 줄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배송료 명세서 같은 게 매월 나오긴 한다. 거기에는 배송 개수하고, 월 배송료 총액만 나온다. C&K뿐 아니라 A물류에서도 얼마나 떼갔는지는 안 나온다"고 말했다.
관련해 민주노총 법률원의 조혜진 변호사는 "다단계 하청이 많아질수록 현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는 실질적으로 기사가 가져가는 돈이 계속 줄어든다는 거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같은 일을 한다고 하면, 수입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해서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계약서도 없이 일했다
또 재석 씨는 그동안 A물류와 위수탁 계약서도 안 쓰고 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지난달 A물류의 아침 조회 녹음 파일에 따르면, A물류 대표는 "여기서 나하고 계약서 쓴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A물류 대표는 취재진과 만나서도 "1년 계약이니까, 딱히 계약서를 안 썼다"며 "물류계 쪽이 취약하다. 쉽게 말해서 정부 법령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배송기사와 영업점이 맺는 위수탁 계약서에는 건당 배송료 액수와 배송구역, 계약 기간 등 핵심 노동조건이 명시된다. 계약 해지, 계약 조건 변경 과정에서 사측이 지켜야 할 여러 의무 사항도 적혀 있다. 사측이 해야할 안전보건 조치가 무엇인지도 나온다. 기사가 위수탁 계약서 없이 일한 것은 일반 노동자로 봤을 때, 근로계약서를 안 쓴 것과 마찬가지다.
강민욱 전국택배노조 부위원장은 "계약서를 안 쓰면 사측이 마음대로 배송료와 배송구역응 바꿀 수 있다. 원래 기사가 적응한 구역이 있는데, 갑자기 생판 모르는 곳으로 보낼 수도 있다. 또, 지금이 계약 기간 중인지 아닌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용자 측에서 '네 계약은 하루짜리다'고 주장하며 잘라도 무방한 거다"고 말했다.
수도권도 '2차 하청'... 실적 압박에 매일 야간배송 '땜빵'
2차 하청 기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도 있다. 서 모 씨는 2024년 9월 수도권 소재 1차 영업점인 일성통운에 '팀장'으로 들어갔다. 팀장은 담당 구역 내 배송이 잘 이뤄지도록 하는 관리직에 해당한다. 배송기사를 뽑고, 근무 일정을 조율하고, 배송 중에는 쿠팡 측의 요구 사항을 기사에게 전달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여기서 서 씨는 야간 팀장으로, 밤새 새벽배송 기사들을 관리했다.
그런데 서 씨 역시 실제로는 일성통운이 아니라 그 아래 2차 영업점인 B물류에서 돈을 받고 있었다. 서 씨가 2024년 9월부터 올해까지 발행한 세금계산서에는 B물류가 나와 있었다. 일성통운의 업무용 단체 대화방에서도 관리자는 배송기사 수십 명에게 B물류 명의 사업자등록증을 공유하며 "여기로 세금계산서를 끊으라"고 했다.
2차 업체인 B물류에서 서 씨는 무늬만 관리직이었다. 서 씨가 관리한 구역은 늘 구인난에 시달렸고, 업무 공백이 생겼다. 중간업체를 두 번 거치며 배송료는 낮아질 대로 낮아졌고, 그 돈만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배송 난이도가 높아) 어려운 라우트(배송구역)에서도 배송료를 깎아버리니까 기사 구인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거죠. 원청 단가를 줘도 (기사가) 안 구해지는 라우트인데, 거기서 또 삭감하고 '이 단가에 구해라', '이것밖에 못 드린다'고 하니까.
- 서 모 씨 / 쿠팡 배송기사
이런 상황에서 B물류 경영진은 쿠팡이 요구한 배송 실적을 맞춰야 한다며 서 씨를 질책했다. 올해 3월 서 씨와 통화에서 B물류 대표는 "지금 수행률(배송 실적)이 왜 이러냐. 내가 진짜 웬만하면 싫은 소리 안 하려고 했는데, 심야 배송 수행률은 보는 게 맞느냐"며 "1등급 맞는다고 했는데, 내가 어디까지 인내해야 하느냐"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서 씨는 거의 매일 밤, 기사가 안 구해진 구역으로 직접 나가 업무 공백을 메워야 했다. 밤 9시까지 쿠팡 캠프(상품 분류장)으로 출근해 트럭에 상품을 실었고, 이후 아침 7시가 넘어서까지 꼬박 밤을 새며 야간 배송을 했다.
물론 배송을 하며 팀장 업무도 병행해야 했다. 서 씨는 "내 배송하기도 바쁜데, 쿠팡에서 어떤 확인 요청이 오면 기사들이랑 소통해야 했다. 야간 배송이 아침 7시에 끝나는데, 그때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기사들 일이 잘 마무리됐는지, 피드백을 줘야 하는 상황이면 통화를 하고, 그러다 보면 8시까지 퇴근을 못 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30일 연속' 밤 새웠다... 과로 산업재해 기준 한참 초과
쿠팡은 지난 2024년, 야간 배송기사인 정슬기 씨의 과로사 등 산업재해가 빈발하자 '야간 배송 격주 5일제'를 시행하겠다고 홍보했다. 매주 6일씩 밤을 새던 야간 기사의 노동 강도를 줄여주기 위해 격주로 5일만 일을 시키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서 씨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격주 5일제는 권고 사항에 불과했고, 영업점은 일이 바쁘다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휴무 중인 기사를 불러내기도 했다. 지난 3월 통화에서 B물류 대표는 서 씨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 기사들 쉴 거 다 쉬게 해주고"라며 "배송구역을 신경 썼으면, 휴무자라도 돌리고, 팀장이 직접 움직였을 거다"며 압박했다.
쿠팡 내부 규정에 따르면, 기사의 연속 근무는 6일까지만 가능하다. 6일을 넘기면, 기사용 앱에 로그인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서 씨는 다른 계정을 이용해서라도 계속 일했다. "수행률을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 지난 2024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작성된 서 씨의 근무일지를 보면, 서 씨가 6일을 초과해 연속 근무한 횟수는 무려 20회에 달했다. 지난해 7월 29일부터 8월 18일까지는 21일 연속 야간 배송을 했고, 같은 해 6월 28일부터 7월 27일까지는 30일 연속일 때도 있었다. 무려 한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밤을 새다는 얘기다.
취재진은 근무일지를 토대로, 서 씨가 가장 많이 일했던 지난해 7월(휴무 1일) 그의 평균 노동시간을 추산했다. 밤 9시까지 쿠팡 캠프로 가서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배송하는 서 씨의 하루 노동시간은 대략 10시간이다. 한 주 평균 노동시간은 67.74시간으로 볼 수 있다. 과로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기준 중 하나가 발병 전 4주간 한 주 평균 노동시간이 64시간을 초과했을 때다. 이미 서 씨는 기준치를 넘었다.
그런데 과로 산재 여부를 평가할 때는 야간 노동에 30%를 가산한다. 야간 노동 대상은 법적으로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다. 서 씨는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일하니 야간 노동 30% 가산을 고려하면, 하루에 12.4시간을 일한 게 된다. 지난해 7월 서 씨의 한 주 평균 노동시간은 84시간까지 늘어난다. 과로 산재 기준보다 20시간이나 많은 수치다.

이에 대해 조혜진 변호사는 "과로사 문제에 크게 노출된 상황이다. 주 6일을 일했다고 쳐도, 하루 평균 13시간 넘게 일한 거다. 사람이 13시간 넘게 일했다고 하면, 집을 오가고, 씻고,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다 일만 했다고 봐야 한다. 인간적인 삶을 살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문점은 과연 쿠팡이 서 씨의 규정 위반과 과로를 몰랐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서 씨는 수시로 쿠팡 측과 소통하는 팀장이기도 했다. 서 씨는 "캠프도 관계자들도 알고 있지만 묵인하는 거다. 계정이 달라도 배송하는 거에 대해 캠프가 피드백이 있으면, 내가 배송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오늘 일하면 주 7일이 아니냐' 이런 제재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1년 3개월 동안 편히 잠을 잔 날이 없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서 씨가 근무일지상 'OFF'로 표시된 휴무일에도 배송만 쉬었고, 팀장 업무는 계속했다는 것이다. 팀장으로서 서 씨는 휴무일에도 야간 배송이 끝날 때까지 기사들을 관리하고, 쿠팡 측과 소통했다. 말만 휴무일 뿐, 그때도 역시 밤을 새다는 얘기다.
배송은 휴무지만 계속 쿠팡 캠프랑 소통하고, 기사님들한테 물량 공유를 했죠. 그리고 캠프에서 연락이 오면 받아야 되는 거고. 결국에는 쉬지는 않았습니다. 그날도 잠은 저녁에 못 자고 아침에 자야 했어요. 그리고 기사님들이 무슨 이슈가 발생서 못 나온다. 그런 날에는 제가 그냥 5분 대기조인 거죠.
- 서 모 씨 / 쿠팡 배송기사
B물류에 있었던 약 1년 3개월 동안, 서 씨는 단 하루도 맘 편히 밤에 자본 적이 없는 셈이다. 서 씨는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 4월, B물류를 나왔다. 서 씨는 "근무 기간 동안 일성통운, 또 B물류와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퇴사일인 4월 22일, 서 씨는 B물류 대표와 통화에서 "힘들어서 그만두는 거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1년 3개월 동안 저녁에 잠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취재진은 B물류 대표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B물류 대표는 "나도 일성통운 직원일 뿐이고, 재하청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일성통운 기사들은 지난 3월까지도 B물류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급받고 있었다.
확장 또 확장... 재하청 조장한 쿠팡의 시스템
지난 4월, MBC 등 언론을 통해 쿠팡의 다단계 하청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현재 택배 관련 법인 생활물류서비스법에는 영업점 간 재하청을 막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영업점과 영업점 간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택배가 섬으로 갈 때 중간에 해운사를 낄 수도 있고, 그럼 영업점에서 해운사로 갔다가 다시 섬에 있는 영업점으로 갈 수도 있는 거다.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열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쿠팡의 경우 수도권, 내륙 대도시에서도 재하청이 이뤄졌다. 법의 허점을 파고든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그러자 쿠팡은 "재하청이 사실로 확인되면, 해당 1차 영업점과 계약을 해지하겠다"(부산MBC 보도, 2026.4.14)는 입장을 내놨다. 그동안 재하청 문제를 몰랐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많은 배송기사와 노조, 노동 전문 변호사 등은 쿠팡이 재하청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쿠팡의 시스템 자체가 재하청을 조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쿠팡은 약 2년 전부터 '전 국민 로켓배송 시대'를 열겠다며 빠르게 서비스 권역을 확장했다. 지방 소도시, 도서 지역에서도 차츰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배송구역이 많아진 만큼, 당연히 곳곳에 배송 인프라를 더 많이 구축해야 했다.
하지만 쿠팡은 보다 저렴한 방식을 택했다. 늘어난 구역을 영업점에 하청을 줘 '알아서 배송하라'고만 한 뒤, 재계약을 무기로 채찍질하는 것이었다. 배송만 맡긴 게 아니라 물류센터 관리와 간선 차량 운송까지 아예 통으로 하청을 준 경우도 있었다.
또 쿠팡은 지역을 따지지 않고 영업점에 구역을 넘겼다. 해당 지역에 아무런 기반이 없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기존 배송 실적만 좋으면, 일단 구역을 맡기는 식이었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영업점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만 배송케 하는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등 다른 택배기업과 달랐다.
그 결과, 쿠팡 영업점 중에는 시도를 넘나들며 구역을 갖는 곳이 많아졋다. 실제로 배송기사 구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한 쿠팡 영업점은 서울, 용인, 구리, 춘천, 대구 등에서 구역을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강민욱 택배노조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의 업체가 여러 군데 구역을 가지고 있고 쿠팡이 원하는 서비스 수준도 계속 유지를 해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고, 사무실도 구하고, 이런 게 굉장히 힘든 거죠. 그러니까 그 지역을 다시 하청을 줘서 '네가 관리해라. 돈 좀 내가 떼고 너 줄게'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재하청 구조로 가게 된다고 봅니다. 쿠팡 관리자들은 자기 담당 지역의 배송률이나 이런 것들을 굉장히 꼼꼼하게 챙겨요. 그리고 그 지역 영업점하고도 밀접하고요. 그래서 쿠팡이 (재하청에 대해) 몰랐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강민욱 / 전국택배노조 부위원장

계약서에서 사라진 '재하청 금지' 조항
뉴스타파는 쿠팡이 재하청 문제를 사실상 묵인, 방조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확인했다. 취재진이 확보한 쿠팡CLS와 영업점 간 2022·2023·2024년 계약서에는 "영업점은 본 계약에 따라 발생되는 권리 또는 의무를 CLS의 서면에 의한 사전 승인 없이는 제3자에게 하도급, 양도, 대여 또는 담보의 목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쿠팡이 공식적으로는 영업점에 재하청을 금지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25년 계약서를 보면 '하도급' 단어가 빠진 채 "영업점은 택배사업자의 사전 서면동의 없이 이 계약상의 권리·의무를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만 나왔다. 쿠팡이 계약서 수정을 통해 재하청을 사실상 열어 둔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조혜진 변호사는 "양도와 하도급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양도는 쿠팡 영업점으로서 권리나 지위를 완전히 다 넘긴다는 뜻이다. 반면 하도급은 업무만 떼어 주고, 권리나 지위는 계속 갖고 있는 거다. 배송 취약 지역이나 지방에서는 재하청 필요성이 있다 보니 쿠팡에서도 좀 풀어준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한 영업점 대표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매년 쿠팡CLS에서 영업점을 모아 간담회를 주최한다. 그때 쿠팡 본사 직원이 나와 운영 방침을 얘기하는데, 작년에는 '재하청은 안 된다'고 오피셜하게 언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걸로 이슈가 되지 않았으니까. 올해는 기사 나오고 한 다음부터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다단계 하청 개선? 배송료는 감소... 물가 올라도 "해마다 깎는다"
쿠팡은 다단계 하청 문제가 불거지자, 이달 새 계약서를 쓰며 재하청 금지 조항을 다시 넣었다. 새 계약서의 부속합의서 가운데 '영업점의 준수사항' 조항에 "택배사업자의 사전 서면동의 없이 위탁 업무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른 영업점에 재위탁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현재는 2차 영업점들을 정리하고 있다. 1차 영업점이 2차 영업점을 흡수하도록 유도하거나 2차 업체와 직계약을 맺는 방식을 통해서다. 재석 씨가 속한 A물류도 이달 2차 영업점을 벗어나 쿠팡과 직계약을 했다.
문제는 분명 중간업체가 하나 사라졌는데, 재석 씨가 받는 배송료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재석 씨는 "2차 하청에서 올라가면 기사들에게 더 많은 배송료가 올 거라고 보는 건 상식이지 않느냐. 그런데 오히려 건당 20원을 차감한다고 한다. 요새 유가가 정말 많이 올랐는데, 결국 더 많이 배송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재석 씨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영업점인 모벤티스의 2차 업체인 YJ물류 소속이었다가 이달 모벤티스로 흡수된 한 기사도 "배송료가 내려갔다. 건당 100원씩 떨어진다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A물류 대표에게 배송료 인하의 사유를 물었다. A물류 대표는 '쿠팡이 영업점에 주는 돈을 줄였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해마다 물량이 늘어나니 해마다 배송료를 깎는다. 돈을 받는 사람이 정하냐, 주는 사람이 정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강민욱 택배노조 부위원장은 "쿠팡이 기사의 삶과 소득 보전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매년 배송료를 깎아서 이제는 건당 400원을 주는 구역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택배사 중 가장 낮은 배송료예요. 쿠팡은 영업점들한테 '물량이 늘어나니 배송료를 깎아도 매출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고 말해요. 영업점 입장에서는 맞는 얘기일 수 있죠. 하지만 기사한테는 '단가가 떨어지고 물량이 많아진다'는 말은 더 많이 배송하고, 더 과로해야 기존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요새 기름값이나 물가가 많이 올랐으니 이런 걸 고려해 인상해 주겠다는 생각은 쿠팡 머릿속에 아예 없습니다.
- 강민욱 / 전국택배노조 부위원장

뉴스타파는 쿠팡에 연락해 ▲다단계 하청 문제를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허용한 게 아닌지 ▲계약서에서 재하청 금지 조항을 지웠다가 다시 살린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그동안 재하청을 금지해온 게 맞는다면, 이를 위반한 영업점에 대해선 계약 해지 등 제재를 한 적은 있는지 ▲왜 배송료를 인하하는 것인지 등을 물었다.
쿠팡은 "생활물류서비스법에 따른 표준계약서의 취지를 반영해 당초부터 사전 동의 없는 영업점의 재위탁 행위를 금지해 왔다. 계약서 문구는 정부가 공고한 표준계약서의 문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는 짤막한 입장만 밝혔다. 다른 질문에 대해선 전혀 답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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