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전쟁 끝난다”…정유·석유화학 업계, 역래깅 우려에도 불확실성 해소에 안도[비즈360]

고은결 2026. 6. 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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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종전 합의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 초읽기
‘역래깅 효과’ 재고손실 후폭풍은 불가피
중장기적으로는 원가 하락 안정화 예상
중동산 원유 의존↓…수입선 다변화 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타결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이르면 이번 주말께 이란과 종전 협상문에 서명을 할 수도 있다고 취재진에 설명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개전 106일 만에 사실상 종료됐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핵심 요충지이자 석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가며, 지난 3개월여간 원료 조달 위기와 실적 변동성을 겪었던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경영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미 동부시간 기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이제 완료됐다”며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없는’ 개방을 전면 승인하고, 동시에 미군 해군의 해상 봉쇄를 즉각 해제할 것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을 중재한 파키스탄도 협상 타결 소식을 알렸고,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양국의 공식 서명식이 열린다고 발표했다. 이란 역시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과 스위스 서명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석달여간의 전쟁에 정유·석화 ‘직격탄’…1분기 실적은 ‘착시효과’

양국이 합의 타결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국내 에너지 업계는 최대 뇌관이었던 원유 수급난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앞서 지난 2월 말 중동 전쟁 발발 직후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되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의 70%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희망봉 등으로의 물류 경로 우회와 초대형유조선(VLCC) 운임 폭등은 원자재 수입 비용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정유업계는 극심한 실적 착시를 겪었다. 올해 1분기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유가 급등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이 대거 반영되며 합산 영업이익 5조9635억원이라는 장부상 호실적을 기록했다. 과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들여온 원유의 가치가 재평가된 결과다. 그러나 이는 회계상 이익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종전 시 유가 하락에 따라 1분기 이익을 고스란히 반납하는 상황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

또한 국제유가 폭등에도 불구하고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며, 비싸게 사 온 원유를 정제해 만든 석유 제품을 국내 시장에서는 제값에 팔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원가는 치솟는데 판매 가격은 묶여버려, 정유업계가 떠안은 실질적인 누적 영업손실 규모는 4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도 3월 한 달간의 래깅(원재료 투입 시차) 효과로 깜짝 실적을 냈지만, 전쟁 중 비싸게 사들인 원료 가격 부담에 따른 역풍이 예상되고 있다. 전쟁 이후 기초유분 등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납사) 가격은 국제유가 상승세와 연동해 치솟았다. 석화기업들은 전쟁 발발 전에 사들였던 저렴한 나프타는 이미 소진했고, 현재는 현물 시장에서 웃돈을 얹어 들여온 비싼 나프타를 공정에 투입 중이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중동발 대규모 증설에 따른 범용 제품 공급 과잉으로 다운사이클인 상황에서 원재료 부담까지 커진 것이다. 여기에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격차)는 전쟁 한때 손익분기점(톤당 250달러선)을 웃돌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며 에틸렌 가격이 점차 안정돼 다시 톤당 100달러를 밑도는 상황이다.

여수 석유화학 국가산단 전경
단기적 재고손실 후폭풍 불가피…중장기적으론 원가 하락

이에 업계는 전쟁이 종결 국면에 접어들며 최악의 불확실성은 걷혔지만, 단기적 재무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급락으로 인해 1분기에 거뒀던 조단위 장부상 이익이 대규모 재고 평가 손실과 부정적 래깅 효과로 본격 전환될 것이란 분석이다. 비쌀 때 사둔 원유로 만든 제품을 낮아진 시세에 팔아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분기부터 장부상 호실적을 고스란히 반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물류망 정상화와 원가 하향 안정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유가 및 내수 물가 안정화와 함께 그간 정유사에 부담을 줬던 석유 최고가격제가 해제될 경우, 하반기부터는 정상적인 정제마진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화업계 역시 나프타 가격의 하향 안정화로 인한 원가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연히 역래깅 효과에 따른 실적 타격이 있겠지만, 하루빨리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번 중동 전쟁을 거치며 국내 에너지 업계의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70%대에 달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단기간 내 수입선 다변화가 나타났다. 산업통상부 통계에 따르면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과거 70%대에서 올해 5~7월 도입 물량 기준 48.5%까지 급감했다.

이는 북미산 등 대체 원유 도입을 공격적으로 늘린 결과로, 지정학적 변동성이 다시 불거져도 과거 대비 생산 차질 우려가 낮아졌단 분석이다. 하나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사태를 계기로 아시아 업체들은 중동산을 축소하고 비중동산 원유 도입을 확대한 상태”라며 “아시아 업체 입장에서는 중동과의 원유 거래 시 과거와는 달리 매우 높은 협상력을 갖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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