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땐 양반 위주, 일제 땐 일반인 등산 늘어 [척척박산]

서현우 2026. 6. 1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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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등산
일제시대인 1938년 노산 이은상 선생 일행이 지리산을 올랐다. 일행 모두 천왕봉을 등정하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

선배 산꾼들에게 듣는 옛 등산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지금이야 고가의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 100만 원이 넘는 재킷을 걸치고 다니지만 1960년대, 1970년대에는 미군 장교복으로 니커보커스를 만들어 입고, 중절모를 쓰고, 군용 텐트를 짊어지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못 하는 야영과 화식, 국립공원 등반루트 개척사도 파란만장하다.

선배 산꾼을 넘어서 조상 산꾼들은 어떨까.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이 유산기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리산을 유람하며 남긴 기록만 70여 편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보면 당시 선비들의 산에 대한 인식을 잘 알 수 있다. 절경을 보며 도를 체득하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하는 식이다. 이를 정리한 연구들은 단행본으로도 많이 출판돼 있다.

이 두 시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시대가 있다. 일제강점기다. 이 시기에는 산을 어떻게 다녔을까? 먼저 2012년 발표된 순천대 박찬모 교수의 <'조선과 만주'에 나타난 조선 산악 인식>이란 연구가 있다. 연구에선 일본인과 조선인의 한반도 산에 대한 인식을 비교해 정리했다. 일본인의 경우, 먼저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민둥산이 많다며 이것이 문화예술이 낙후된 이유라고 봤으며, 금강산과 같은 명산도 단순히 눈에 보이는 심미적 공간으로서만 소비하고,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유래, 전설, 역사는 일절 찾아보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줬다.

반면 조선인들은 등산이 모종의 민족적 제의이자 배례였다. 산은 신이었고, 같은 민족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그래서 등산을 통해서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다잡는 장면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지난 3월에 발표된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 최사라 박사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산에 대한 인식 연구­1920~1940년 신문기사 생활·문화면 분석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를 통해서도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연구는 "기존 박 교수의 연구는 기행문을 작성할 정도로 지식인 계층인 사람들의 것만 다뤘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반 조선인들의 인식을 규명해 보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간지 기사 및 사설 중 산과 관련된 1만4,833건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큰 틀에선 조선시대 선비들의 인식을 그대로 물려받은 형세다. 신성성이 깃든 공간, 생명력을 지닌 대자연, 민족의 발상지, 풍수지리적 의미에서 에너지의 원천 등이다.

'행산수장!' 등산하면 장수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여가·문화 공간으로서의 산이다. 이때부터 산은 소풍, 등산, 산책, 놀이 등을 하는 공간이란 기술이 자주 보이며 자동차나 전차 등 근대적 이동수단을 활용하는 행태도 발견됐다고 한다. 그래서 산을 '공기산(공기가 좋은 산이란 의미로 추정)', 청산 등으로 표현했고, '행산수장行山壽長'이란 말도 썼다. 등산을 하면 장수한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군사안보로서의 산, 생태계로서의 산, 조망명소로서의 산 등 다양한 모습을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중 학생들의 기행문이 많이 소개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일제가 건강증진운동 일환으로 학생을 포함해 전 국민에게 등산을 홍보하고 유도한 결과로 보이며, 이로써 조선시대까진 등산을 즐기는 계층이 주로 양반, 지식인층에 국한됐지만 일제강점기부터는 일반 계층까지 확대됐다는 게 연구자의 분석이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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