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 개입…항거 마산시민 '빨갱이'로 몰아

김성수 시민기자 2026. 6. 1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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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신언한 편
일제 치하·미군정·이승만 정부에서 계속 법관
법무부 국장 때 형무관학교 관사 헐값에 불하
부인은 열흘 멀다하고 이기붕 집에 새우젓 날라
보안법 악용 않겠다며 경향신문 폐간 조치 앞장
신앙촌 박태선 조종해 3·15 부정선거 획책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받아 들었다. 신언한(申彦瀚, 1910~1998) 항목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법무부 차관 신언한이 1958년 국회 법사위에서 한 말이다.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과거에 정치적으로 악용한 일이 없거니와 앞으로도 절대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신국가보안법의 언론규제 조항이 처음 적용된 것은 경향신문 폐간이었다. "절대 폐단이 없도록 하겠다"고 장담한 사람이 앞장서서 언론을 탄압했다. 이것이 신언한이라는 인물의 자화상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10년 평안북도 의주 출생, 조선총독부 검사가 미군정 검사로

신언한은 1910년 2월 14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신의주 동공립중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佐賀)고등학교와 교토(京都)제국대학을 졸업했다. 1942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1944년 경성지방재판소 검사로 임명됐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히라야마 야스히사(平山靖久).

1945년 10월 11일, 미군정청이 일본인 판검사 전원을 퇴임시키면서 조선인 판검사들을 새로 임명했다. 신언한은 그날 퇴임과 동시에 다시 임명됐다. 일제 검사가 미군정 검사로 무탈하게 변신한 것이다. 민복기(1913~2007)·장경근(1911~1978)과 함께 그날 임명된 그룹이었다. 이 세 사람이 나중에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린다.
신언한(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극우 검사의 아이러니'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독일의 오토 푀르슈너(Otto Förschner, 1902 ~1946)가 연상된다. 푀르슈너는 독일의 SS 장교이자 나치 강제 수용소 사령관이었다. 동부전선에서 무장SS로 복무한 후, 푀르슈너는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1942~1943)에서 고위 간부로 근무했고, 이후 미텔바우-도라(1943~1945)와 카우페링(1945) 수용소의 소장을 역임했다. 독일 패전 후, 그는 다하우 재판에서 미국 점령 당국에 의해 전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1946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에서 활동했다가 전후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살아남아 신언한처럼 요직을 차지한 법률가들도 있다. 체제가 바뀌어도 법률전문가의 기술은 권력에 유용하다. 신언한은 조선총독부에서도, 미군정에서도, 이승만 정권에서도 같은 기술을 썼다. '반공'이라는 코드가 언제나 그의 변신을 가능하게 했다.
1945년의 오토 푀르슈너(위키피디아)

김두한의 살인을 '훈장 받아야 할 일'이라며 눈물 흘린 검사

1947년 5월, 신언한은 대한민청 사건을 담당했다. 대한민청 행동대장 김두한(1918~1972) 등 14명이 조선공산당 청년대원을 납치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담당검사 신언한은 논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같은 사건이 만약 북한에서 발생했더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피고인들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훈장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 남한은 법치사회이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을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살인범에게 "훈장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며 눈물 흘리는 검사. 이것이 해방 직후 대한민국 검찰의 수준이었다. 1심에서 김두한은 징역 2년 구형을 받았으나 벌금 2만 원이라는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반면 신언한은 좌익언론인들에게 징역 8개월씩 구형했다.
신언한(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형무소 관사를 시가의 10분의 1에, 6년간 형정국장의 실상

1952년부터 1958년까지 6년간 법무부 형정국장을 지낸 신언한의 행태는 4·19혁명 이후 드러났다. 시가 4000만 환짜리 국립형무관학교 관사를 단 470만 환에 부정 불하받았다. 교우회비 67만 환을 자기 차고 만드는 데 썼다. 법무부차관 때는 정보비 6000만 환과 치형비 2000만 환을 횡령했다.

그리고 아내 이선희도 남편 못지않았다. 신앙촌 박태선 장로의 가석방을 돕는 대가로 전국 형무소 이권을 중개하고 거액을 챙겼다. 이기붕(1896~1960)의 아내 박마리아와 이화여전 동기였던 이선희는 열흘이 멀다 하고 이기붕의 집에 이불, 새우젓, 소금을 날랐다. 『전 국회의장 이기붕가 출입인 명부』에 신언한 부부의 방문 기록이 분 단위로 상세히 남아 있다.

신언한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앙천부지에 무괴(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봐도 양심에 부끄럼이 없다)."

형무소 관사를 헐값에 사고, 교우회비를 차고에 쓰고, 아내가 이기붕 집에 새우젓을 나르는 사람이 양심에 부끄럼이 없었다. 이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신언한(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신앙촌 박태선에게 지령하여 3·15부정선거에 개입

신언한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노골적인 것은 3·15부정선거 개입이다. 법무부차관으로서 마포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신앙촌 교주 박태선에게 특별면회를 허용하고, 가석방을 조건으로 부정선거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 박태선은 신도 간부들에게 "이승만과 이기붕이 무슨 방법으로든지 100퍼센트 득표토록 하라"는 옥중지령을 내렸고, 수십만 신도들이 자유당에 표를 던졌다. 서울시내에서 사용할 위조 투표용지를 마포형무소 안에서 인쇄하도록 지시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 시민들이 경찰 총탄에 쓰러지자, 법무부 차관 신언한은 국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위의 양상이나 규모를 볼 때 공산당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런 짓을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공산당으로 몬 것이다. 그리고 "일본 조련계에서 마산 학생들을 격려하는 무전을 입수했다"는 근거도 댔다. 경찰의 총탄으로 쓰러진 마산 시민들의 피가 '빨갱이 소동'으로 둔갑했다.
신언한(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4·19혁명 후, 구속, 징역, 그리고 변호사로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하자 신언한은 즉각 해임됐다. '비위 검찰로' 손가락질 받아 국회가 파면을 요구한 것이다. 1960년 5월 28일 '민주당 전복 음모 사건' 조작 혐의(무고죄)로 구속됐다.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법 위반'으로 1심 징역 6개월, 최종 징역 1년이 확정됐다. 1962년 1월 출감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98년 10월 30일 사망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신언한은 4·19 이후 처벌받은 몇 안 되는 이승만 정권의 실무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징역 1년에 그쳤다. 그가 마산 시민들의 피를 '빨갱이 소동'으로 덮은 것, 신앙촌 교주를 통해 부정선거를 조종한 것, 형무소 재소자들을 굶기면서 관사를 헐값에 사들인 것. 이 모든 것에 대한 법적 판단이 징역 1년이었다.
1961년 1월 1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는 민주당전복음모 사건의 홍진기(오른쪽부터), 신언한, 김시현, 유시태, 이태희 등 5명의 무고 교사 혐의 첫 공판을 열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1950~60년대 부정부패 공무원들이 어떻게 처벌받았는지를 생각한다. 사소한 부패도 공직추방과 형사처벌로 이어졌다. 법무부 차관이 형무소 관사를 헐값에 사들이고, 감옥에 있는 종교지도자를 통해 부정선거를 조종했다면, 그것은 최소 수년의 실형에 해당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신언한은 징역 1년을 살고 변호사가 됐다. 88세까지 살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신언한이 마산 시민들의 봉기를 "공산당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런 짓을 할 수 없다"고 말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국민이 권력에 맞서 거리로 나오면 '빨갱이'로 모는 그 문법이, 70년을 건너 다른 옷을 입고 귀환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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