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점검 아니다”… 19만동 전수조사, ‘소급적용’으로 가나
4개 부처 합동조사반… 9월부터 3단계 본조사
‘안전강화방안’에 “기준 강화” 명시… 소급 신호탄?
헌법 장벽 여전하지만 ‘한국형 그렌펠법’ 가능성도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정부는 지난 12일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공장ㆍ창고 화재안전 실태조사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조사 대상은 연면적 500㎡ 이상 공장ㆍ창고 19만동에 위험물보관소ㆍ고위험 사업장을 더한 ‘19만동+α’다. 국토교통부ㆍ고용노동부ㆍ기후에너지환경부ㆍ소방청 합동조사반이 민간전문가 중심 정밀조사반과 청년인력 기본조사반으로 나뉘어 가동되며, 다음주 시범조사를 시작으로 오는 9월 1단계, 내년 상반기 2단계, 하반기 3단계까지 위험도별로 점검을 마친다. 위반건축물, 준불연 샌드위치패널, 소방시설, 위험물 취급 등을 종합 점검하고 현장 위반사항은 즉시 개선조치한다.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안전기준 강화ㆍ안전투자 인센티브 확대를 담은 ‘공장화재 안전강화방안’도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안전기준 강화’라는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현황을 파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존 건물에 적용되는 기준 자체를 손보겠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결국‘소급적용’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도 출발은 비슷했다. 2017년 72명이 사망한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 이후 영국 정부는 전국 고위험 건물에 대한 전수 점검과 공공조사위원회를 가동했다. 조사 과정에서 위반 건물이 속출하자 조사 개시 5년 만인 2022년 ‘건축안전법(BSA)’을 제정해 18m(7층) 이상 건물의 설계ㆍ시공 결함 책임소추 기간을 기존 6년에서 최대 30년으로 소급 연장했다. 보수 비용도 입주자가 아닌 건물주ㆍ시공사가 전액 부담하도록 했다. ‘조사’에서 시작해 결국 ‘소급 입법’으로 끝난 셈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도 영국의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점차 커진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대전 안전공업㈜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화재가 잇따르며 ‘참사의 연속성’이 형성됐고, 오는 9월 1단계 조사에서 고위험 공장의 위반율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여론ㆍ국회의 압력이 단기간에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헌법적 장벽은 여전하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완공된 건물에 새 법을 적용하는 ‘진정소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대법원도 “새로 제정된 법률은 그 이전 사실에 원칙적으로 소급효가 배제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영국에서도 ‘건축안전법(BSA)’의 책임소추 기간을 6년에서 최대 30년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건물주ㆍ디벨로퍼들이 재산권ㆍ법적 안정성 침해를 이유로 위헌 소송을 낸 바 있다. 다만, 2025년 영국 항소법원은 그렌펠 참사로 드러난 안전 결함을 시정해야 한다는 공익이 사업자 측의 신뢰 이익보다 크다고 보고 시행사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역시 진정소급이라도 “공익이 신뢰 침해보다 현저히 중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판시한 적이 있어, ‘소급적용은 위헌’이라는 통념이 이번 기회에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소급적용의 현실적 경로를 두고 분석이 엇갈린다.
건축법상 기존 건물에 패널 전면교체를 강제하는 것은 진정소급에 재산권 침해까지 겹쳐 위헌 소지가 매우 크지만, 소방시설법 시행령 부칙에 소급 대상ㆍ이행기한을 명시하는 방식은 부진정소급으로 구성돼 합헌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가 스프링클러ㆍ감지기 등 소방시설을 먼저 소급 의무화하고, 패널 교체는 증축ㆍ용도변경 시점에 적용하는 방안을 택할 경우 위헌 리스크를 덜어낼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건축법상 일괄 소급은 위헌 소지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소방시설법 등 개별법 부칙에 소급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건설업계에서는 시장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준불연 패널 전면교체를 일괄 의무화하면 인증을 보유한 일부 업체로 수요가 몰리면서 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수급 불안정이 심화할 수 있다”며 “단계적 이행기한 부여와 인증 공급망 확충 및 신기술 공법 인정 등이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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