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최전선, 몽골의 선택은 ‘나무’[기후변화 최전선 몽골①]

지난달 26일 오후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공항을 떠나 도심에 접어들자 느닷없이 거센 비가 쏟아졌다. 한 해 내리는 비의 양이100~350㎜ 남짓인 몽골에서 비는 생명을 살리는 신호였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집중 호우가 빈번해지고 홍수 피해가 늘면서 비는 이제 재난을 알리는 경고음이 됐다. 2023년 8월 울란바타르에서는 국지성 집중 호우로 4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몽골의 반가운 손님이었던 ‘비’…이제는 재해 신호탄
몽골 환경기후변화부가 2024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제4차 국가보고서에 따르면 2000~2020년 일 최대강수량은 과거보다 54% 증가했다. 비가 한 번 내릴 때의 강도가 크게 강해졌다는 의미다.
인구 밀집과 난개발, 취약한 배수시설이 맞물려 홍수 피해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몽골의 홍수 피해 규모는 연간 약 2400만달러(약 360억원)에 달한다.
이날도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비에 도로 곳곳에 물이 차올랐다. 울란바타르에서 부업으로 렌터카 운전을 하는 호야가(46)는 “몽골 날씨가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다”며 “예전보다 짧은 시간에 비가 한꺼번에 많이 내린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도심에만 머물지 않는다. 몽골 전역의 초지와 농경지, 산림은 줄어드는 반면 사막과 황무지는 늘고 있다. 현재 몽골 국토의 76.9%에서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 80년간 몽골의 평균기온은 2.46도 올랐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 기온 상승 폭의 두 배를 웃돈다.
최근에는 겨울철 혹한과 폭설로 가축이 얼어 죽는 ‘조드’(Dzud·재해) 현상까지 잦아지고 있다. 2024년에는 조드로 가축 710만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전체 가축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환경기후변화부에 따르면 몽골의 기후 재해 발생 빈도는 1989~1998년 29건에서 최근 10년간(2011~2021년) 80건으로 증가했다.

조드로 생계를 잃은 유목민들은 울란바타르로 몰려들고 있다. 유목민의 수는 2007년 약 37만명에서 2023년 약 30만명으로 20% 정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울란바타르 인구는 약 146만명에서 173만명으로 늘었다. 몽골 총인구(약 350만명)의 절반 정도가 울란바타르에 모여 사는 셈이다.
기후변화로 기후난민 급증…인구 과밀화로 온실가스 배출 심화
울란바타르 주민의 절반가량은 게르(Ger·천막 형태의 몽골 전통가옥)와 판잣집이 밀집한 게르촌에 거주한다. 전기·가스 난방이 어려운 게르촌에서는 석탄과 각종 폐기물을 태워 난방하는데,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은 대기질을 악화시키고 온실가스 배출을 늘린다.

여기에 몽골 전체 차량의 60%가 내뿜는 온실가스와 전력의 90%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가 맞물려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있다. 기후변화로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고, 이들이 다시 화석연료 소비를 늘려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몽골 정부가 내놓은 기후위기 대응책은 ‘나무’다. 우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은 2030년까지 ‘10억 그루 나무 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조림 사업을 통해 사막화 토지 비중을 4% 줄이고, 산림 지역을 기존 7.9%에서 9%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몽골발 황사 영향권’에 속한 한국도 몽골 나무 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매년 봄 한국에 유입되는 황사의 80%가량은 몽골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황사를 줄이려면 발원지의 사막화를 막아야 하는데, 나무는 토양 유실을 줄여 사막 확산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몽골 소규모 마을 ‘숲 조성’ 통해 일자리·수익 창출
울란바타르에서 차로 2시간 반 거리의 투브아이막(광역지자체·도) 소재 바양척트솜(기초지자체·군)에도 ‘한국’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한때 밀 농사와 목축업으로 번성했던 바양척트는 1990년 몽골 민주화 이후 계획 경제 체제가 붕괴하고, 옛 소련의 지원이 끊기면서 지역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젊은 층은 일자리를 찾아 울란바타르로 떠났고, 사막화로 땅마저 황폐해지면서 마을은 활기를 잃었다.

지난달 27일 찾은 바양척트 곳곳에는 한때 지역 산업을 떠받치던 농기계 정비소와 공장, 노동자 숙소가 폐허처럼 남아 있었다. 주민 뭉흐바트(48)는 마을 외곽의 낡은 건물을 가리키며 “젖소 수백 마리를 사육하며 운영하던 우유 생산 시설이 있었던 자리”라며 “문 닫은 공장과 설비들이 수십 년째 방치돼 있다”고 말했다.
약 2000명이 모여 사는 바양척트에서 나무는 기후위기 대응 수단이자 마을을 되살릴 희망이다. 한국 기업과 비정부기구(NGO)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바양척트에 축구장 140여개 면적에 달하는 100ha 규모의 숲을 조성했다. 황폐한 땅에 숲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모습은 바뀌고 있다.

주민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조림지에 관수 설비가 공급되고 토양이 회복되자 주민들은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숲을 관리하는 일자리가 생겼고, 비타민 나무 등 유실수가 열매를 맺으면서 추가 소득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마을 주민 엥흐저리트(58)는 “나무를 심고 나서 토양이 되살아났다”며 “조림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기관·기업·NGO 몽골 ‘나무 심기’ 지원
올해부터는 숲을 더 넓힌다. 기존 조림지 옆으로 2028년까지 30ha 규모의 생태림이 새로 들어선다. BGF리테일과 코리아세븐, BC카드,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푸른아시아는 ‘페이퍼리스’ 캠페인으로 조성한 환경기금을 활용해 오는 2028년까지 3만그루의 비술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페이퍼리스는 CU와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 소비자들이 종이 영수증을 받지 않아 아낀 비용으로 환경 기금을 조성해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푸른아시아는 페이퍼리스 생태림 조성을 통해 온실가스 5125t(토양 4966t·수목 159t)을 감축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날 페이퍼리스 생태림 조성을 기념해 열린 식재 행사에는 어르신과 아이들 등 주민 80여명이 모여 일손을 보탰다. 바트투식 바양척트 솜장은 “나무를 심는 것은 숲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마을의 미래를 심는 일”이라며 “조림을 통해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정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울란바타르·바양척트 |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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