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K컬처는 이제 완전 주류... 佛·中보다 친근, 日보다 순발력”

2011년 주헝가리 한국문화원이 설립될 때 ‘1호 현지인 직원’이었던 도라 팔피(Dóra Pálffy)씨는 이제 헝가리의 ‘한국 문화 대표 전도사’로 활약하는 홍보 전문가다. 그는 1635년 개교한 헝가리 최고(最古) 대학교인 외트뵈스 로란드(엘테) 대학교에서 헝가리의 대표적 한국학자인 초머 모제스 교수(2018~2022년 주한 헝가리 대사 재임)의 지도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한국 연세대 유학과 유네스코 사업을 통해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이후 헝가리 한국문화원의 현지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도라씨는 지난 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국문화원에서 본지와 만나 한국 문화의 매력을 “프랑스나 중국 같은 대국(大國) 자의식이 있는 국가보다는 훨씬 친숙하고, 한국과 유사한 일본보다는 한층 순발력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헝가리와 한국은 역사적·문화적·정서적 유사점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고, 이제 헝가리에서 한국 문화는 어엿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다.
―어떤 계기로 한국 문화 전도사로 활동하게 됐나.
“한국과의 인연은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대학 친구들을 통해 우연히 한국인 유학생들을 만났다. 한국어라는 언어, 그리고 한국 문화가 너무도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마침 그해 헝가리 지상파에서 유럽 최초로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돼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 ‘괴물’도 우연히 봤다. ‘한국은 내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테대에서 초머 모제스 교수의 지도 아래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유네스코 ‘브로시스(BroSis)’ 장학 프로그램에 선발돼 처음 서울 땅을 밟았다. 낯선 타국임에도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강렬한 영적 느낌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며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팔피씨는 2011년 11월, 부다페스트에 한국문화원이 처음 터를 잡고 건물을 단장할 때 첫 현지인 직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각 사무실의 이름을 짓고,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개설하고, 첫 보도자료를 쓰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팔피씨는 “이후 10년 동안 홍보 전문가이자 한국문화원 대변인으로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헝가리에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특권이자 기쁨”이었다고 했다.
―헝가리는 유럽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최초로 방영한 국가다.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헝가리 내 K-컬처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했나?
“격세지감이다. 대장금은 당시 헝가리 시청자들에게 한국의 역사, 음식, 복식, 궁중 문화를 처음으로 선보인 거대한 이정표였다. 한국의 스토리와 가치가 헝가리 대중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한국 문화는 2000~2010년대 초창기엔 K팝, 드라마, 영화, 태권도 등 일부 장르에 국한돼 전파됐다. 하지만 파도가 치듯 한류의 외연이 점차 넓어지더니, 이제는 한국어 학습, 한식, K뷰티, 문학, 시각 예술, 전통 무용, 심지어 재즈에 이르기까지 헝가리 내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한국 문화의 영역은 단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류가 완벽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헝가리에서 한국 문화가 일부 마니아층의 하위 문화를 넘어 주류 문화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 변곡점은 무엇이었나.
“넷플릭스’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전 세계를 뒤흔든 ‘오징어 게임’과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같은 글로벌 메가 히트작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문화는 이제 완전한 ‘주류’가 됐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헝가리 대중에게 한국의 사회 구조와 일상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호기심을 촉발했다. 이제는 10대부터 노년층까지 전 세대가 한 공간에서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세대 통합적 주류 문화’가 됐다.”
―미국·프랑스·중국·일본 등 기존 문화 대국들과 비교해 한국 문화가 가지는 독특한 매력은 무엇인가?
“홍보(PR)적 관점에서 한국 문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고유하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접근하기 쉽다’는 점이다. 아주 강렬한 시각적 아이덴티티와 깊은 감정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 지점은 다른 문화 대국들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헝가리 관객들에게 미국 문화가 다소 거대하고 상업적이라면, 한국 문화는 훨씬 개인적이고 감정적 뉘앙스가 풍부하다.
프랑스 문화가 다소 엘리트주의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반면, 한국 문화는 대중에게 매우 친근하게 다가간다. 일본 문화와 비교했을 때 한국은 글로벌 트렌드에 훨씬 빠르고 유연하게 반응하며, 중국 문화에 비해서는 서구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동화될 수 있는 현대적인 ‘팝 컬처 언어’를 완벽하게 구축했다." 일방적인 홍보가 아닌, 헝가리 대중의 정서적 서사와 맞닿아 시너지를 내는 것이 한국 문화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이다."
―현재 헝가리에서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K컬처의 핵심 분야는 무엇인가?
“단연 K미식이다. 미식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헝가리인들에게 한식은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다.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김치, 비빔밥, 한국식 바베큐(삼겹살)은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미식 선택지가 됐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 드라마 속 인물들이 음식을 먹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며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한식 소비 행태를 모방하고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는 점이다.
―헝가리는 ‘노벨상의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화가 순수 예술 분야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나?
“과거에는 한류가 대중문화에만 치우쳐 있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 순수 예술 분야로 그 깊이가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특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단지 개인의 영예를 넘어 헝가리 대중이 한국 문학 전체를 재조명하게 만든 주춧돌이었다. 현재 헝가리 독자들 사이에서 한국 현대 문학 작품을 찾아 읽는 붐이 일고 있다.
한국의 문화 생산 맥락에선, 대중문화와 순수 예술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력하게 견인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K팝이나 드라마로 한국을 처음 접한 이들이 결국 한강의 소설을 읽고, 한국의 현대 미술 전시를 보며, 클래식 공연을 찾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한국 문화가 지닌 가장 도드라진 장점이다."
―헝가리와 한국은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겪은 격동의 역사나 압축 경제 성장 등 정서적으로 비슷한 궤적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이 한류 성공의 가장 중요한 ‘숨겨진 핵심’이라고 믿는다. 헝가리와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20세기 동안 외세의 침략과 지배, 격동의 정치 체제 변화, 그리고 가파른 현대화의 진통을 똑같이 겪었다.
이 때문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 문학이 다루는 핵심 주제들이 헝가리인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 예컨대 ‘가족을 위한 희생’ ‘교육과 성실의 가치’ ‘세대 간의 갈등과 봉합’ 그리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몸부림’은 헝가리 사회가 지금도 똑같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파편들이다.
언어와 풍습은 다를지언정 그 서사 밑바닥에 흐르는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고뇌가 똑같기 때문에, 헝가리 시청자들은 한국 콘텐츠를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거울로 받아들이며 깊은 정서적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인들에게 어필할 만한 헝가리 문화만의 독특한 강점은 무엇인가?
“헝가리 문화는 ‘철저히 유럽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독특하게 헝가리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음악 분야에서 서구 클래식의 거장인 벨라 바르토크, 졸탄 코다이, 프란츠 리스트의 위대한 유산과 풍부한 민속 음악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음악적 깊이를 중시하는 한국 대중에게 아주 훌륭하게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다.
두 번째는 ‘음식 문화의 놀라운 유사성’이다. 헝가리의 대표 요리인 굴라시나 굴뚝빵을 보면 알겠지만, 헝가리인들은 유럽에서 드물게 파프리카(붉은 고추)와 마늘을 엄청나게 사용하며 매콤하고 강렬한 맛을 즐긴다. 국물 요리나 찌개 문화, 발효 음식을 즐기는 전통, 그리고 식사를 통해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를 확인하는 문화까지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순대나 김치찌개, 부침개 같은 음식이 헝가리에서 전혀 이질적이지 않듯, 한국인들이 헝가리 음식을 맛본다면 단숨에 사랑에 빠지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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