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공 ‘손끝 기술’도 AI가 배웠다…“8명 할 일 AI 로봇 1개가 대체”[Pick코노미]
철강·배터리·조선 곳곳서 피지컬 AI 활발

11일 경북 포항 소재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 안전로봇실증센터. 벨트 컨베이어 사이를 돌아다니던 로봇이 돌연 한 롤러를 살핀 뒤 이내 새 롤러로 교체한다. 벨트 컨베이어의 한 구간에서 발생한 이상한 소리를 감지하고 해당 구간을 살펴봐야겠다고 인지한 것이다.
KIRO 관계자는 “소리로 고장을 알아채는 것은 일종의 암묵지(경험과 학습으로 몸에 쌓인 지식)의 영역이었는데 이제는 인공지능(AI)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KIRO, 포스코 등 10개 산·학·연이 함께 포항·광양 제철소에서 정상 소리 9406개, 비정상 소리 8654개 등 총 1만 9407개의 음향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킨 결과다. 연구진은 이를 포함해 제조업 인공지능 전환(AX) 기술 개발 1단계를 마치고 실증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같은 제조업 AX는 곧 작업장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것이 포스코의 설명이다. 벨트 컨베이어 롤러를 교체하는 작업은 단순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사람의 인명을 위협하는 고난도 작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협소한 공간에서 교체 작업을 하던 작업자가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존에는 이상이 생기면 4~8명이 가서 벨트를 멈추고 세운 뒤 롤러를 교체해야 했는데 이제는 벨트를 멈추지 않고도 로봇 1대가 롤러를 교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숙련공의 경험에 의존해야 했던 제조업 현장을 AI로 대체해내는 작업은 배터리 산업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에코프로가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에 조성한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에서는 소성로(가마) 공정에 AI 자율 제조 시스템을 도입했다. 길이 65m, 온도 700~800℃의 밀폐된 소성로는 내부 확인이 불가능해 품질 제고를 숙련공의 손끝 기술에 의존해야 했는데 이것을 표준화하기로 한 것이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최종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462개의 핵심 인자를 AI로 분석해 품질 예측 정확도를 99.62%까지 끌어올렸다”며 “기존에 6시간이나 걸리던 품질 검사를 실시간 예측으로 전환해 불량품이 후공정으로 흘러 들어가는 리스크를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에코프로는 2030년까지 완전 무인 공장(다크 팩토리)를 구축해 경쟁국인 중국 대비 300% 이상의 제조 생산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조 AX의 흐름은 주문 생산 방식인 탓에 획일화된 공정 도입이 어려운 조선 산업에도 스며들고 있다.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한 러그나 설계 도면대로 수행하면 되는 용접 작업에 AI를 탑재한 로봇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12일 찾은 울산 동구 소재 HD현대중공업에서는 숙련 용접공 대신 레일 위에 올라탄 협동로봇이 일사분란하게 용접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협동로봇 6대를 동시에 가동할 때 필요한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2023년 말 처음 협동로봇을 도입했을 때만 해도 1명이 가동할 수 있는 로봇은 2대에 불과했는데 국책과제를 통해 이 로봇에 AI를 장착한 결과다. 이제 협동로봇은 스스로 설계 도면과 현장 상황을 비교한 뒤 2㎜의 오차도 직접 수정하며 용접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용접을 마치면 그 다음 현장도 알아서 찾아갈 수 있게 됐다.

선박 블록 인양에 쓰이는 핵심 부재이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러그 제조 역시 HD현대로보틱스의 로봇을 기반으로 전 공정 무인화에 성공했다. 비전 AI를 탑재한 로봇이 러그 용접부터 절단, 재생 등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다.
그 결과 과거에는 6명이 하루에 최대 100개의 러그를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제는 4명의 로봇 관리자만 있으면 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연속 생산 시 러그 생산량은 기존 수작업 대비 87.5% 향상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금은 정형 부재만 자율 제조로 만들고 있지만 비정형 부재로까지 기술을 확대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 같은 제조 현장에서의 AI 도입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산업통상부는 올해 제조 AX 확산을 위한 예산을 전년 대비 2배 확대한 1조 1347억 원 편성한 데 이어 지난 추가경정예산에서도 830억 원을 추가로 편성했다.

포항·울산=조윤진 기자 j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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