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마적단 닮아가는 정치
집권 세력, 주인 아닌 관리자인데
공직 나눠 먹고 예산으론 표심 유혹
마적이 약탈한 노획물 나누듯해

지방 선거가 여야 어느 쪽도 승리라고 단언할 수 없는 절묘한 결과로 끝났다. 선거는 각 정치 세력에게 그간의 정치 활동을 성찰하게 하고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정치가 조금씩 발전해야 할 텐데, 과연 우리 정치는 거듭된 선거를 통해 발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야말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절차이다. 선거 승리로 집권한 세력은 국민이 일정 기간 위임한 권력을 행사할 뿐이다. 권력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로 일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공직(公職)이나 예산과 같은 국가의 공적 자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최근 집권 세력들은 위임받은 권력을 마치 마적단이 노획한 전리품을 다루는 듯한 경우가 적지 않다.
마적(馬賊)은 기동성과 조직력을 갖춘 무장 도적을 말한다. 개인이나 가정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약탈을 일삼았다. 약탈한 노획물을 수하들에게 어지럽게 분배하고,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며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렇게 노획물을 탕진하고 나면 또 다른 마을 약탈에 나선다.
집권 세력이 공직을 다루는 행태가 마적단의 이런 모습과 흡사한 면이 있다. 도저히 적임으로 볼 수 없는 인물을 공직에 앉힌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이후에는 주로 유튜브 등에서 보수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조롱한 인물을 국립정동극장 대표로, 소셜미디어에서 강성 발언과 ‘이재명 방탄’에 앞장선 것으로 더 유명한 음식 칼럼니스트를 박사급 연구원들이 즐비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에 앉혔다. 더 악성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변호인을 공직에 줄줄이 앉힌 것이다. 올초까지 확인된 사람만 14명이다. ‘국정 철학 공유’라는 명분의 정실 인사가 있어 왔지만, 공직의 사유화가 이 정도로 노골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노획물 나눠 주듯 하는 이런 인사가 공직의 전문성과 공공성이라는 자산을 탕진시킨다. 이런 인물들이 행사하는 국가 권력이 공정하게 작동한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아예 대놓고 국가 자산을 노획물처럼 인식하는 행태가 드러났다. 정청래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민주당 후보를 찍어주면, 예산을 전폭 지원하겠다” “민주당 후보 찍어주면, 농어촌 기본소득 지역으로 지정해주겠다”고 수시로 공약했다. 물론 집권 세력은 공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주도권을 갖고 있다. 그렇더라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전체 국민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공공성을 갖추는 것이 최소한의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 후보를 찍어주면”이라고 꼬박꼬박 단서를 달았다. 예산은 집권 세력의 쌈짓돈이 아니고, 유권자를 매수하기 위한 미끼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마적이 수하들에게 노획물을 나눠주며 충성을 유도하듯, 예산을 자기편에게만 배분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것이다.
정치 권력이 국민의 세금을 표를 사기 위한 미끼처럼 활용하면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지역이나 계층은 자원 배분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암시하는 이런 오만한 태도는 정치 갈등을 극대화한다. 정치가 공적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약탈 전쟁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 남발되는 것도 약탈 전쟁, 즉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세력이 공적 자산을 노획물처럼 다루지 못하게 하는 길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감시뿐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탕진하지 못하도록 투표 이후에도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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