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도 다시 짓는 마음으로 쓴 사랑의 시”

장유진 2026. 6. 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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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출신 김륭 시인 ‘전업 눈사람’ 출간
지난 4월 작고한 어머니 위한 시편 담아
“눈사람 = 마음, 보이지 않아도 내내 존재”

“이제는 꼭 보여줘야 할 사람도 없고, 문단의 평가도 필요치 않아요. 그냥 너무 멀리 가지는 마시라, 그 한마디 전하고 싶어서 시집을 냈어요.”

거동이 불편할 만큼 쇠약해지신지는 꽤 오래됐다고 했다. 10년 전부터 요양병원에서 생활 중인 어머니에게 이제는 정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준비하게 된 시집. 우리 문단의 거목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륭 시인이지만, 이번 시집 ‘전업 눈사람’을 만드는 과정은 여태 그가 펴낸 어떤 책과도 같지 않았다.

지난 5일 마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륭 시인이 새 시집 ‘전업 눈사람’을 펼치며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어머니가 눈 감으시기 전 책을 손에 쥐여 드리고자 내년쯤 여유롭게 출간하려고 했던 기존 계획을 전부 뒤바꾸고 수록할 시편을 채우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반년 이상 일정을 앞당겨 ‘박정임 여사님께 이 시집을 바칩니다.’를 첫 문장으로 새긴 시집 ‘전업 눈사람’을 이달 초 완성해 세상에 공개했다. 하지만 운명이 야속하게도 김 시인의 어머니는 책이 나오기 두 달 전인 지난 4월 하늘의 별이 되셨다.

“수록작 대부분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것들이에요.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시집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어머니를 주제로 급하게 새로 써낸 작품들도 더러 있고요. 작품성이나 문학적 완성도를 생각하기보다는 정말 오롯이 어머니한테 전해드리려는 마음이 앞섰어요.”

지난 5일 마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륭 시인은 출간 기념 인터뷰가 익숙지 않다며 조심스레 시집을 건넸다. 평소 자신의 책을 직접 나서서 알리는 건 쑥스러워하는 시인이지만, 이번 시집만큼은 할 수 있는 한 널리 출간 소식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유명세나 인정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지금은 어디서 지켜보고 계실지 가늠할 수 없는, 떠나신 어머니의 귓가에 언젠간 시집 이야기가 닿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엄마, 저기 좀 봐. 수국이 밥 먹으러 왔네./ 더 이상 마주 앉아 밥 먹을 수 없는/ 저녁, 여우비 지나간 그림자 끝에서 도르르 울음이/ 베개처럼 부풀어 오르고요.// 흰밥 같은 밤은 눈을 감아야 보일 거예요./ 살아갈수록 어두워지는 몸에/ 죽은 마음이 빛을 꿰매는’ - ‘수국’ 중.

어머니가 그토록 좋아하셨던 꽃, 수국. 미안함만 가득 찬 마음으로 마주 앉은 사이에 뒀던 병원 식판. 그리고 꼭꼭 닫아둔 병실 창문 사이로도 스며들던, 막을 수 없는 찬 바람까지. 함께 했던 시간 속의 수많은 존재들이 미어지는 의미를 지닌 채 시의 소재가 됐다. 그리움이나 아쉬움, 슬픔 같은 명료한 단어로는 다 표현 못 할 감정들이 뒤섞여 책장 너머로 흘러넘친다.

‘평생을 따라다닌 눈사람이 있다는 걸/ 어젯밤에야 알았어요// 반려동물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여자가 말했고, 나는 거기 있었다.’ - ‘전업 눈사람’ 중.

뒤섞여 번지는 감정들 중 유일하게 존재를 확언할 수 있는 건 어머니와 평생을 주고받았던 사랑뿐이다. 김륭 시인은 자신의 문학 세계 속 ‘눈사람’이라는 사물이 뜻하는 바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따금 사람의 육신보다 사람의 마음이 세상에 먼저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그는 “보이지 않게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는 마음이 눈사람을 짓듯 몸이 생기고 나면 거기 깃들어 있다가, 눈이 녹으면 형체만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는 말을 남겼다. 돌아가신 어머니 역시 몸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지만 마음만은 남아 계시리라 믿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표제작 작품 명이자 시집 이름인 ‘전업 눈사람’은 제 마음을 말하는 거기도 해요. 눈사람은 다음 날 해가 뜨면 녹아 없어져도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내내 존재하니까요. 어머니를 향한 제 감정들도 그렇게 계속 있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 물이 돼 사라지는 눈사람이지만, 만들며 더한 사랑만은 영원히 잊을 수 없기에. 녹을 걸 알면서도 다시 짓는 마음으로 시인은 변함없이 사랑의 시를 써 전한다.

글·사진= 장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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