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으러 왔다 절로 명상하는 절…산불 전소로 재건 후 SNS 명소로 강릉 인월사

색색 블록의 ‘인드라월’ 궁금증 유발
불교 경전 속 인드라망을 건축에 녹여
재범 스님 “구멍 뚫은 건 소통 의미”
전통 양식 건축 비용이 너무 비싼 탓
현대식 건물로 재건 후 세계건축상
기도·명상·밥 한 끼만을 위한 공간
강릉 인월사는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화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찰이다. 색색의 블록으로 채워진 벽, 맑은 물 위에 비친 곡선의 법당. 세련된 미술관 같기도 하고 작은 리조트 같기도 한 이곳을 보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방문객이 몰려든다. SNS ‘사진 맛집’으로 떠올랐다. 인월사 주지 재범 스님은 “젊은 남녀가 손잡고 오는 모습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라며 웃었다.
방문객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것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블록으로 만든 벽이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고 한참 동안 서서 들여다본다. “왜 사찰 벽이 이렇게 알록달록한가요” “블록에 구멍이 뚫려 있는 이유는 뭔가요” “건물 앞에 연못은 왜 만들었나요”…. 예뻐서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막상 살펴보니 이런저런 궁금증이 쏟아진다.

스님은 이 벽을 ‘인드라월’이라고 불렀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인드라망을 건축 언어로 옮긴 이름이다. 인드라망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설명하는 불교의 비유다. 우주를 덮은 그물의 구슬들이 서로를 비추듯 세상의 모든 존재도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인월사의 벽은 블록을 이어 붙여 그물을 표현하고, 불교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을 입힌 결과물이다. “불교의 오방색을 활용한 현대식 단청”이라는 스님의 설명에 그제야 방문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블록의 앞뒤로 뚫린 구멍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스님은 “블록에 구멍을 내지 않고 막혀 있었다면 색깔은 지금처럼 생기 있는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도 의미가 있어요. 자기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보존하되 조금만 색을 덜어내자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렇게 뚫려 있는 공간을 통해 빛도 들어오고 바람도 지나가지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색을 조금 덜어냄으로써 더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방문객들의 궁금증은 어느새 스님의 즉석 법문으로 이어진다.
벽 앞에 만들어진 작은 연못에는 ‘카르마의 거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카르마는 업, 즉 자신이 지은 행위와 결과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자는 뜻이다.
건물 안은 단출하다. 법당과 공양간, 명상실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한 시설 대신 사찰이 해야 할 최소한의 기능만 남겼다. 스님의 거처도 새 건물 안에는 없다. 일주문 옆 화마를 피한 옛집을 보수해 요사채(사찰에서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로 사용하고 있다. 법당과 명상실 벽은 종이로 된 기둥을 세워 따뜻함을 더했다. 특히 명상실 전면의 감청색 벽은 차분하고 맑은 느낌이 들게 했다. 부처님의 눈썹색이자 지혜를 상징하는 색이다. 사진 찍으러 왔다가 명상실에 들어와 짧게는 3~5분, 길게는 30분 이상 머물다 가는 이들도 있다.

인월사가 현재의 모습이 된 데는 아픈 사연이 있다. 2023년 강릉을 덮쳤던 산불로 인월사는 전소했다. 40년 넘게 지역사회에서 명상 도량으로 자리 잡아 왔던 공간을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까. 스님은 현대식 건물로 재건한 것에 대해 “거창한 미학이 아닌, 현실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전통 양식으로 건물을 지으려면 매우 비싼 비용이 든다. 또 한정된 공간을 활용하는데도 제약이 많았고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이 아니라 별도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스님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기도할 수 있는가, 명상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들어와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가.
스님은 윤경식 건축가가 상무대에 지은 군 명상센터를 보고는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인월사의 내력과 명상도량으로 쌓아온 시간, 앞으로 해야 할 일 등을 정리해 건넸고, 윤 건축가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불교철학에 대한 이해도 깊어 소통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지난 3월 세계건축상을 수상한 인월사는 이달 중 낙성식을 연다. SNS로 시작된 ‘강릉 경포호 옆에 있는 그림 같은 사찰’의 인기는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스님은 이 관심이 사진 한 장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사진 찍으러 왔다가 명상실에 잠시 앉았던 분들이 다음에 다시 오고, 좀 더 앉아있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좋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할 일을 한 것 아닐까요.”
강릉 |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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