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에 ‘간첩’ 날조, 71세에야 ‘무혐의’ 처분

한승동 에디터 2026. 6.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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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병진
전두환 정권 때 연세대 대학원 다니다 연행
고문하며 ‘처와 두 살 아기 해치겠다’ 협박
공소 보류 상태로 보안사가 강요한 통역사 근무
2년 근무 후 석방된 뒤 오사카로 몰래 도망
김대중 대통령 취임 뒤에야 여권 받아 한국방문
지난해 8월 공소보류 취소 청원, ”무혐의“ 처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 100명 넘어
지난 3일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있는 '한글강좌' 교실에서 강의 중인 김병진 씨.  아사히신문 6월 13일

"15년 전쯤에 같은 사건으로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은 재일 한국인 남성을 취재한 적이 있다. 판결문을 읽기 전까지는 뭔가 의심받을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체포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이 완전히 날조된 혐의로 붙잡혀 간 사실을 알게 됐다. 고문받고 장기간 수감됐으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긴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는 재심 청구를 하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두 번 다시 그 악몽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1988년에 군사정권의 내부사정을 고발하는 책을 한일 양국에서 출판했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특히 한국에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28세에 '간첩' 날조, 71세에 '무혐의' 처분

오사카 태생으로 아사히신문 문화분야 취재기자로 오래 일한 뒤, 지금은 대학생 시절 유학한 한국에서 문화분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리카와 아야(44) 씨가 13일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논평이다. 논평에서 언급한 '같은 사건'은 군사 독재정권 시절 모국인 한국에 유학왔다가 북한 간첩이라는 날조된 사건 피해자가 돼 장기간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으며 인생 경로가 뒤틀려 버린 수많은 재일동포 유학생들에게 덮씌워진 '간첩단 사건'을 가리킨다.('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날조사건에 대한 자세한 애기는 <조국이 버린 사람들 :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기록> 김효순, 서해문집 2015년 참조)

나리카와 씨의 논평은 13일 아사히신문에 실린 "'북조선 스파이' 혐의로 43년, 김씨가 마침내 맞이한 해방의 날"이라는 기사에 대한 것이었다. 43년 만에 한국 국가보안법의 멍에에서 해방된 주인공은 자신의 실체험을 근거로 국군 보안사령부가 재일동포 유학생들 상대로 벌인 악랄한 반인도적 '간첩 날조' 범죄 진상을 폭로한 <보안사>(1988, 소나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재일동포 김병진 씨다. 1983년 보안사에 영장 없이 끌려 갈 당시 28세였던 김 씨는 71세가 돼서야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

아사히신문이 보통의 일본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그 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13일자 기사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연세대 대학원 유학 시절 연세대 구내의 윤동주 시비 앞에서 찍은 사진. 아사히신문 6월 13일

전두환 정권 때 연세대 대학원 다니다 보안사에 연행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던 1983년, 유학 중이던 한국 서울에서 '북조선 스파이(간첩)'로 한국군 정보기관에 연행돼 공소보류(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재일 한국인 남성에게 한국 검찰이 5월 28일, 43년 만에 '혐의 없음'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남성은 "무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압박을 받아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린 감격이 솟구쳤다"고 말했다.

남성은 (오사카 부 소재) 사카이 시에 사는 김병진(71) 씨. 그 지역 사람들에게 30년 간 '한글 강좌'를 열어 수강생들로부터도 도움을 받아 왔다.

고베 시에서 태어난 김 씨는 서울 연세대학 대학원생이었던 1983년, 한국군의 정보・방첩기관인 보안사령부(보안사. 지금의 방첩사령부)에 영장도 없이 갑자기 연행됐다.

고문하며 아내와 두 살짜리 아기 해치겠다 협박

당시 28세. 제주도 출신인 아내와의 사이에 생후 2개월 된 장남이 있었다. 김씨가 끌려간 뒤 아내와 아이도 모두 자택에 연금된 상태에서 감시를 받았다.

김씨는 밀실에서 고문을 당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족이 다치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 3개월 구금된 뒤 '북조선 간첩'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검찰이 범행동기와 범행 뒤의 상황 등을 고려해 공소(기소)를 보류할 수 있고, 경우에 띠라서는 재구속할 수도 있게 규정하고 있다.
김병진 씨 아내 강영미 씨와 당시 두 살였던 장남. 부부가 일본으로 도망갈 때 놓아 두고 갔던 사진으로, 한국 수사당국은 이 사진을 복사해 나눠 주면서 그들의 소재지를 탐문했다.  아사히신문 6월 13일

공소 보류 상태로 보안사가 강요한 통역사로 근무

공소보류된 김씨는 감찰 대상자가 돼 보안사에서 (보안사가 요구하는 대로) 통역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행당한 재일동포 유학생들이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날조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보안사에서 2년간 근무하고 나서야 석방됐다. 1986년에 처자와 함께 오사카로 몰래 도망갔다. 센보쿠 뉴타운 단지에서 숨죽이며 조용히 살았다.

2년 근무 뒤 석방, 오사카로 몰래 도망

1988년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한국 군사정권 내부사정을 고발하는 저서 <보안사>를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했다. 보안사에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라며 출두하라고 명령하는 문서를 보냈지만, 응하지 않았다. 김 씨 집과 한국의 친인척 집에도 (보안사)전화가 걸려 왔다.

그 무렵 아내 강영미(68) 씨는 단지의 공원에서 놀고 있던 유치원생이던 장남을 수상한 남성 몇 명이 숨어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잠시 보이지 않기만 해도, 끌려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뒤에야 여권 받아 한국방문

다시 여권을 갖게 된 것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인 2000년이었다. 14년 만에 한국에 갔다. 그 뒤 자신이 당한 '국가 폭력'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시효 만료로 청구자격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지난해 8월, 김 씨는 서울의 한국 대검찰청을 변호사와 함께 찾아가 공소 보류 취소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8월 공소보류 취소 청원, "무혐의" 처분

올해 5월에 검찰에 제출한 서류에서 그는 "나와 가족은 지속적인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지금까지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살아 왔습니다. 모든 시작은 공소 보류 처분이었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변호사로부터 낭보가 날아 왔다.

서울 중앙지검이 5월 28일 김 씨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의 통지에 따르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공소보류 처분을 받은 사람에게는 구제방도를 정한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김씨는 1983년 연행당한 뒤 검찰이 기소를 미루는 '공소 보류'(유죄를 전제로 기소를 유예하는 처분)를 받아 재판 자체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재심 청구조차 불가능한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공범'은 2017년에 이미 무죄 판결

그 때문에 검찰이 직권으로 사건을 재검토해서 공범이 이미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 등을 고려해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다.

김 씨에게 지령을 내린 이른바 '상부선'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공범 서성수 씨가 이미 2017년 8월 재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검찰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범의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지 10년이 지나도록 검찰과 사법부가 김 씨나 재심 청구를 하지 않은 억울한 피해자들 구제에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식의 검찰 직권 무혐의 처분은 김 씨의 경우가 처음이라고 한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 100명 넘어

한국이 군사정권 통치하에 있던 1970~80년대에 김 씨처럼 모국에서 유학하던 재일 한국인 젊은이들 다수가 정보기관에 연행돼 '북조선 스파이'로 기소당했다. 사형과 장기 징역형 판결을 받았으나 2010년대 이후 잇따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00여 명이 그처럼 부당하게 구속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의 진상은 아직 알 수 없다.

조국에 유학왔다가 아무 이유 없이 '간첩'으로 몰려 희생당한 재일동포 청년 피해자들이 100명이 넘는 데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 조용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에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고향인) 나라를 방문했을 때 재일동포들과의 간담회에서 피해를 당한 재일 한국인과 유족들에게 사죄했다.

김 씨의 대리인을 맡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파이 낙인이 찍혔으나, 재판을 받지 못한 채 공소 보류된 김씨는 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이번 (검찰의) 결정은 국가 폭력에 의한 '재심을 청구할 수 없는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1월 한글강좌 개설 30주년 기념식 때의 김병진 씨와 강영미 씨 모습.  아사히신문 6월 13일

김 씨, 강 씨 부부는 사카이 시의 생협 '에스코프 오사카'의 협력으로 '후레아이 공생숙(교류공생학원) 한글강좌'를 열어 지역 사람들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쳐 왔다. 강좌는 올해 30주년을 맞아 1월에 기념모임을 갖기도 했다.

수강생과 생협 사람들은 김 씨의 도항(한국방문)금지 해제를 한국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서명작업에 참여하는 등 부부를 계속 도와 주었다.

아내 강 씨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웃사람으로 받아 준 지역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풀뿌리 교류 덕에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다."

sudohaan@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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