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소 봉쇄가 순수한 2030 시위?" 대학생들 "언론이 혼란 키웠다"
[인터뷰] 선거부실 사태, 학내 극우 규탄 행동하는 학생들
"주변 친구들이 극우에 흔들리는 모습 보며 대자보 썼다"
"극우가 민주주의자 행세"…"빌미 준 선관위에 분노"
대진연 몰이도…"참정권 요구만? 보고 싶은 대로 본 언론"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윤석열 탄핵 반대 시국선언을 하던 학생들이 갑자기 '민주주의'를 외치며 학생총회를 열자고 하더라. 극우 세력이 민주주의자 행세를 하며 부정선거론과 계엄 정당화를 할 발판으로 삼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정말 참정권 침해에 맞서려는 건 계엄 당시 내란을 막으려고 나섰던 시민들이다.” (김민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극우세력의 세 키우기에 활용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학생들이 직접 항의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언론 역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를 '2030세대의 순수한 분노'로 묘사하며 혼란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친구들도 흔들려”…학내서 번진 '극우' 위기감
김민수씨(연세대 정치외교학과)는 지난 10일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시국선언에서 자유발언대에 올라 “내란 세력에게 빌미를 준 선관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부실한 선거관리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 반등의 기회를 제공했다”며 “이번 지방선거는 내란 청산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제시된 선거였다. 그러나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관리는 이런 역사적 의미에 오점을 남겼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내란을 옹호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던 세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금 자신들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글은 그가 지난 6일 학내에 발표한 대자보 내용으로, X(엑스, 옛 트위터) 등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김씨는 지난 12일 통화에서 대자보를 쓴 계기로 “주변 친구들이 (극우 부정선거론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경각심이 들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부실선거에 비판 의식을 갖고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데, 나오는 자료가 부정선거나 내란을 옹호하는 이들이 만든 자료이니 이를 수용하는 모습을 봤다. 같이 계엄에 반대해 탄핵 촉구 집회에 나갔던 친구들도 성조기와 태극기 흔드는 영상을 공유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더불어 전한길 유튜브채널에 나오고 탄핵반대 시국선언을 하던 연대생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학생총회를 열자고 말하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이 제 글에 같이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을 보면서, 어느 정도 혼란스러워 하던 친구들도 생각을 정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에선 지난 8일 극우성향 학생단체인 '트루스포럼' 회원들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학내 시국선언을 개최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맞불 성격의 집회를 열었다.
항의 행동과 서명을 진행한 이시헌씨(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통화에서 “진보 진영 안에서도 부정선거와 재선거 요구 시위에 대해 혼란을 갖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트루스포럼에 대해 확실한 반대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자보를 쓰고 '10명만 동의해줘도 만족스럽겠다'고 생각하며 연명을 받았는데, 만 하루가 안 돼 174명이 연명했다.
그는 “선관위 부실선거 사태가 터지고서 많이 분노했다”며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번 지선을 내란세력을 청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데 선관위가 오히려 내란 세력에 빌미를 주고 기름을 부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은 언론이 이번 시위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짚었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아쉬움을 표했다. 시위 현장에선 '좌우가 없다'며 순수성을 강조했고 이견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부정선거 재선거'를 핵심 구호로 내걸고 개표소 봉쇄와 검문·검색 등 이례적인 시위 양상도 나타난 만큼 이를 분명히 규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러 언론은 해당 시위를 '2030의 청년의 분노'에 초점을 맞춰 그렸다. 조선일보는 '청년들의 순수한 정치적 각성'으로 규정하며 '잠실 참정권 집회'라고 명명했다. 중앙일보는 “4050의 내로남불”에 환멸을 느낀 “정치 무관심층”이자 “앵그리 영”의 선전포고라 풀이했다.
한겨레는 “상식적 분노와 이를 부정선거론 땔감으로 삼으려는 극우 정치권의 욕망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광장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 이들은 20~30대 청년”이라며 “'극우 세력의 반발'로만 낙인 찍는 분위기가 자신(청년)들을 움직였다”고 전했다.
'트루스포럼' 반대행동 이시헌씨 “언론, 특정 행태에만 주목”
이시헌씨는 이번 시위 성격을 두고 “단순히 선관위를 규탄하기 위해 참가한 시민들도 있겠지만, 시위 자체는 부정선거 주장과 결코 절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개표 전부터 재선거와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전한길도 중앙선관위 과천청사를 항의 방문하는 등 극우 주도로 이어진 시위였다. 시위도 개표소를 포위해 봉쇄하는 형태였고, 그 명분은 부정선거의 증거를 인멸하게 둬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민주당 일부 인사나 정의당에서도 선관위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시위대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는데, 언론에도 비슷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스케치북을 들었다거나, 전한길씨가 쫓겨났다거나, '부정선거론을 배격하고 재선거만 외치자고 한다'는 등 특정 행태에만 주목한 결과, 재선거 요구 시위 자체는 경청할 만하고 정상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효과를 낳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혜령씨(건국대 사학과)는 “언론은 마치 잠실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가 2030 전체의 목소리인 것처럼 과장해 보도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며 “실제 학생들 분위기는 다르다. 전한길이나 자유대학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고, 이들이 민주주의에 관심 없는 세력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9일 윤석열 탄핵을 반대했던 학생이 '재선거 요구' 시국선언을 발의하자 학내 '맞불' 항의 행동을 벌였다.
김씨도 “언론이 (현재 시위의 본질을) 전혀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며 “시위 현장에서 계엄을 옹호하는 발언이 나오고, 사상을 검증하며 폭력성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이를 '참정권 침해 규탄'으로만 보고 고발하지 않는 것은 언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 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는 14일 열흘째에 접어들며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스톱 더 스틸'로 구호가 통일됐다. 이견을 보이는 참가자를 향해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 '좌빨(좌파 빨갱이)', '중국인' 등으로 낙인찍는 행태도 이어지고 있다.
대진연 조두윤씨 “윤어게인, 내란과 싸운 우리 마녀사냥”
특히 '대진연 몰이'는 학생들이 시위의 극우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 대목이다. 현장에서는 “다른 구호를 주장하는 사람이 대진연이다”는 말이 돌았다. 일부 참가자들은 이견을 말하거나 기자로 추정되는 이들을 에워싸고 “너 대진연이지”, “좌파지”, “중국인이지”라고 몰아세우거나 �i아다녔고, 폭행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에서 활동하는 조두윤씨(동덕여대)는 미디어오늘에 “시민들의 정당한 참정권 요구가 일부 극우 '윤어게인' 세력의 난동과 폭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에는 참정권 보장과 재선거를 요구하며 나온 시민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이재명 정부 탄핵을 선동하는 세력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지난 검찰독재 윤석열 정부에 맞서 최전선에 싸웠던 학생단체이며 지금도 내란청산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윤어게인 세력들은 이런 우리가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마녀사냥식으로 나오는 것”이라고도 했다.
강혜령씨는 “대진연이 시위에서 '재선거'를 외치자 한다는 주장이 말이 되나”라며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좌파나 대진연으로 몰아가는 모습 자체가 극우적”이라고 비판했다.
“언론, 극우 드러내며 가르마 타주길”
김민수씨는 언론에 “이번 사태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마를 타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참정권이 일부 훼손된 데에 대한 분노를 조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기사는 충분히 많이 나왔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등을 통해 후속 조치가 나오고 있고, 민주당도 국정조사를 약속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사태를 이용하려는 극우 세력의 행태를 드러내고 분명하게 비판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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