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개방 급했나… 트럼프, 이란과 합의 서명 초읽기

권경성 2026. 6. 1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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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나중에 협상할 의제로 돌려
핵물질 처리 등 쟁점들 놔둔 채 미봉
“현금 선불 없다”… 여론 무마 급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미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석탄 관련 지원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 발발 뒤 호르무즈해협을 틀어쥔 이란과의 국면 전환 합의를 서두르는 기색이다. 개전 명분이었지만 관철하기 쉽지 않은 비핵화를 나중에 협상할 의제로 돌리면서다. 종전 논의 착수에 필요한 양해각서(MOU) 서명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선물 같은 타결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과의) 합의가 내일 서명될 예정이며, 서명 직후에는 호르무즈해협이 모두에게 개방된다”고 밝혔다.

조속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데에 양국이 공감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2월 말 개전 뒤 벌써 4개월이 다 돼 간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고물가를 부추기는 전쟁은 인기가 없고, 오랜 제재로 여의치 않던 원유 수출이 전쟁 통에 아예 막히다시피 한 이란도 돌파구가 절실하다. 이번 MOU는 양국 전쟁에서 협상으로 국면을 전환하자는 양국의 정치적 타협이다.

이날 앞서 협상 중재국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엑스(X)를 통해 “향후 24시간 내에 (평화 합의가) 최종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에 MOU 서명이 며칠 내로 이뤄질 수 있지만 그 시점이 트럼프 대통령의 80번째 생일인 14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서명식은 화상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당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양국 협상 수석 대표인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14일 만나 서명한다는 게 미 측 구상이었다. 하지만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12일 자국 국영TV 대담 프로그램에서 “서명은 디지털 방식과 원격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 교대

12일 이란 테헤란에 있는 옛 미국 대사관(지금은 박물관)의 벽에 걸린 반미 벽화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MOU 작성 작업은 거의 끝났다. 12일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와 아라그치 장관의 각각 소개로 윤곽도 드러났다. △4월 8일 합의 휴전의 60일 연장 △호르무즈해협 재개방과 미국의 대(對)이란 해상 봉쇄 해제 △휴전 중 종전을 목표로 한 이란 비핵화 및 미국의 보상 방안 협상 등 세 가지가 핵심 내용이다. MOU에는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획득하지 않고, 모든 농축 우라늄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하에 희석한다는 이란의 두 가지 비핵화 관련 약속이 포함될 전망이다.

최대 쟁점인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처리 방식은 60일간 협상 의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트루스소셜 글에서 “모든 상황이 안정된 적절한 시기에 화강암 산맥 깊숙이 묻힌 ‘핵먼지’(고농축 우라늄)를 확보해 이란에서든 미국에서든 희석하고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와 방식을 모두 열어 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누그러뜨린 요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소식통을 인용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60일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안전 운항 서비스 수수료 명목의 통행료를 받아 내겠다는 미래 구상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바가이 대변인은 “연안국인 이란과 오만이 협력해 통항 관리 및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동결된 자산의 절반인 120억 달러(약 18조 원)를 선불로 달라는 요구도 철회하지 않았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런 쟁점 사안들은 당장 합의 대신 추후 협상으로 해결책이 모색되리라는 게 중재국들 의견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오바마보다 낫다?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이 전향적 태도를 취한 것은 호르무즈해협부터 열고 보자는 심산이었을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수십 년 만에 최악인 세계 에너지 위기를 촉발하고, 선거 코앞에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을 치솟게 만든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해제가 급선무였다고 FT는 지적했다. 결국 이란의 정권 교체 및 핵무기 위협 종식을 목표로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 앞에 더 강경하고 핵 보유 동기가 강한 데다 해협 봉쇄 효과까지 알게 된 군사 정권이 등장했다고 NYT는 분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은 불만 여론 무마에 급급한 눈치다. 이란이 합의에 따른 의무를 이행할 때만 제재 해제 등 상응하는 보상이 제공되리라는 주장이 골자인 12일 미국 당국자 대언론 브리핑은 이란에 우호적인 합의안 입수 보도에 반박하라는 트럼프 대통령 지시가 배경이었다고 WSJ가 13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올린 장광설을 통해 이란에 핵 보유 길을 열어 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달리 자신이 한 합의는 핵무기 차단 장벽이 될 것이며, 오바마 행정부 당시 합의와 달리 현금 선불도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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