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사라지는 AI시대 … '역사지능' 없인 가치판단 힘들죠"
AI 적극 활용하는 대학생들
자료·정보는 금방 잘 찾지만
정작 글 읽는 능력은 떨어져
정보 많을수록 방향감 상실
결국 역사가 '나침반' 역할
시대 흐름 속에서 가치판단

자고 나면 새로운 인공지능(AI) 버전이 쏟아진다. '빨리빨리'의 민족조차 따라가기 버거운 속도다. 어떤 질문을 해도 AI가 바로바로 답을 내놓는 시대, 즉문즉답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 혼자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일수록 오히려 혼자 깊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금의 변화가 정말 새로운 것인지를 판단할 '역사 지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역사학자들이 수많은 사료를 읽으며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것처럼 AI가 가져올 변화를 차분히 짚어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AI를 운석에 비유했다. 지금은 갑자기 운석이 떨어져 충격이 휘몰아치고 있는 격이어서 시간이 지나고 흙먼지가 가라앉아야 그 충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AI가 새로운 현상을 초래하고 있지만 정말 새로운 '문명'인지 알려면 시간이 지나봐야 한다"며 "지금은 아무도 실체를 모른 채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지금처럼 혼란한 시대, 특히 AI 시대를 앞두고 있을 때 역사 지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파고를 넘어 'AI 이후'를 준비하려면 거시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사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역사 지능이란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금의 현상이 정말 새로운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겉포장만 다른 현상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변화로 새로운 문명을 가져올 현상인 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를 사는 사람은 언제나 현재가 새롭기 마련"이라며 "변화를 감지하는 장기적인 시간 감각이 있어야 속지 않는다"고 했다.
'총, 균, 쇠'나 '사피엔스' 같은 책들도 모두 역사 지능의 산물이다. 과거에서 새로운 것과 계속되는 것을 구분하고, 미래를 내다보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오늘날처럼 정보가 많을수록 방향 감각은 사라진다. 이럴 때 역사가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학자들이 수많은 사료 중 의미 있는 걸 가려내는 것처럼 우리도 중요한 변화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역사 지능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건 끈기다. 오늘날 속도에 익숙해진 AI 네이티브에게는 제일 취약한 개념이다. 조 교수는 "요즘 학생들을 만나보면 자료를 못 찾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료가 많아도 오래 읽지를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편소설은커녕 영상도 긴 걸 못 봐서 쇼츠를 보지 않나. 하지만 소위 두꺼운 '벽돌책'을 격파할 수 있어야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긴다"고 했다.
이는 문해력과도 맞닿는 개념이다. 조 교수는 문해력을 위해 1998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A4 반 장 이상 직접 글을 쓰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 쌓인 글만 1700쪽이 넘는다. 조 교수는 "AI를 통해 쉽고 빠르게 쓰고 싶다는 유혹도 강렬하게 느끼지만, 이 유혹을 이겨내는 것 역시 AI시대의 새로운 역량"이라고 했다.
조 교수와 가족이 35년간 함께 가족신문 '비둘기집'을 만들어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은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매달 혹은 넉 달에 한 번씩 신문으로 만들었다. 집안의 역사는 물론,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사료인 셈이다. 조 교수는 "종이신문 읽기를 넘어 가족신문 만들기에도 도전해 볼 만하다. 마감을 지켜서 글 쓰는 훈련, 신문이라는 포맷에 맞춰 글을 배치하고 조절하는 기획력,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통찰력 등을 기를 수 있는 일"이라며 "내 경험을 의미로 번역해 본다는 게 가족신문의 최대 장점이자 역사 지능을 함양하는 좋은 훈련법"이라고 했다.
교육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시대에 지식의 양이 아닌 고유한 생각을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은 많지만, 조 교수의 지적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조 교수는 "더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구두 시험이 필요한 때가 돌아왔다"고 했다.
조 교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은 진정 내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AI처럼 첨단 과학이 나올수록 우리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돌아가 앎을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부할 때는 AI를 쓰되, 평가는 AI 없이 홀로 받는 것이다. 조 교수는 "교육자도 학생의 느린 답변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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