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경제, 무너지는 중소기업]45조 찍고도 일자리 2만개 증발…구미산단, '구조 전환' 시급하다

조규덕 2026. 6. 1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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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액 전성기 99.7% 회복 속 근로자 2만952명 감소
가동률 64.3% 전국 최하위권…소기업 절반 멈춤 위기
R&D 빠진 생산기지 한계…'앵커 기업' 중심 체질 전환 요구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매일신문DB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지난해 45조4천988억원의 생산액을 기록하며 전성기(2014년)의 99.7% 수준까지 회복했다. 여기에 민선 8기 이후 방위산업과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16조1천42억원 규모의 막대한 투자 유치까지 더해지며 겉으로는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지표의 착시를 걷어낸 현장의 현실은 참담하다. 생산액이 전성기를 회복하는 동안 근로자 수는 무려 2만952명(21.3%)이나 증발해 지난해 말 기준 7만5천591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고용 없는 성장'의 모순 속에서 구미산단을 지탱해 온 절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일감 절벽과 조업 단축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도 소기업도 멈췄다…기형적인 '항아리 구조'

구미 국가산단 가동률 데이터는 산단 생태계의 붕괴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구미산단의 전체 평균 가동률은 64.3%로, 전국에서 가동 중인 34개 국가산단 중 33위를 기록했다. 가동업체가 50개 미만으로 소규모인 '대불 외국인 국가산단'을 제외하면 대형 단지 중 전국 꼴찌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구미산단 업체의 90.8%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소기업(2천94개사)의 줄도산 위기다. 이들의 가동률은 51.88%에 불과해 절반 가까운 공장이 멈춰 서 있다. 가동업체가 50개 이상인 전국 주요 25개 국가산단 중 구미 뒤에 있는 곳은 전북 군산(50.24%, 25위) 단 한 곳뿐이다.

하지만 50인 미만 소기업이 141개에 불과한 군산과 무려 2천여 개의 영세 생태계가 반토막 난 구미의 체감 위기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사실상 대한민국 주요 대형 국가산단 중 하청 생태계가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 곳은 구미인 셈이다.

글로벌 경기 변동과 신산업 전환기를 맞은 대기업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IT·전자 업종 중심의 300인 이상 대기업 가동률은 64.71%에 그쳐, 전국 대기업 평균(87.31%)과 무려 22.6%포인트(p)의 큰 격차를 보였다. 오직 기술력을 갖춘 50~300인 미만의 중기업(82.04%)과 구미 외투지역(71.71%)만이 근근이 버티며 산단의 붕괴를 막고 있는 비정상적인 '항아리형 정체' 구조를 띠고 있다.

더욱 뼈아픈 대목은 미래 동력인 청년층의 이탈이다. 2024년 기준 구미의 청년 고용률은 34.5%에 불과해 양질의 일자리 가뭄을 방증한다. 그나마 글로벌 공급망과 탄탄하게 연계된 외국인투자지역이 가동률 71.71%로 선방하며 방어선을 지키고 있다.

이는 구미 중소기업들이 단순 하청 구조를 벗어나 글로벌 밸류체인 편입이라는 질적 도약을 이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R&D 빠진 '단순 생산기지'의 취약성

이러한 기형적 위기는 구미산단이 지닌 '생산기지 모델'의 태생적 취약성에서 비롯됐다. 과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핵심 연구개발(R&D)과 제품 기획, 마케팅 기능은 수도권에 둔 채 구미를 비용 효율적인 조립·생산 라인으로만 활용했다.

이후 사업 재편 과정에서 대기업 생산기지가 수도권과 해외로 빠져나가자, 하부 벤더 역할을 하던 2천여개의 지역 소기업들은 곧바로 치명적인 일감 절벽을 맞았다.

최근 구미에 LIG D&A(옛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등 방산 분야와 SK실트론, LG이노텍 등 반도체 분야에서 수조 원대 투자가 몰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대규모 투자가 과거의 뼈아픈 이탈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개발 인력 상주나 핵심 설계 기능 이전이 동반되지 않은 단순 '생산 설비 확대'에 그친다면, 언제든 기업 전략 수정 시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는 '이동 가능 자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앵커 기업' 육성 필수…중앙정부 결단 필수

구미산단이 '공장 도시'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정책이 '얼마를 투자했는가(양적 지표)'에서 '지역에 무엇을 남겼는가(질적 지표)'로 완전히 전환돼야 한다.

본사 기능과 핵심 R&D 조직이 지역에 고정되는 '앵커 기업'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16조 투자의 온기가 밑바닥 고사 위기에 처한 영세 소기업들의 일감 낙수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할 지역 맞춤형 부품·소재 가동 지원책이 시급하다.

나아가 투자 금액 중심의 기존 인센티브를 R&D 센터 이전 및 핵심 인력 상주 여부에 따른 차등 지원 구조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지자체의 권한과 한정된 예산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중앙정부 차원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과감한 규제 완화 등 전폭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교육, 의료, 주거 등 정주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핵심 인재들의 '수도권 거주, 지방 근무' 이중 구조가 지속돼 결국 지역 정착이 아닌 '임시 체류형 투자'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미 경제계 한 관계자는 "구미산단이 풀어야 할 숙제는 이제 공장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인재가 지역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