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눈’ 달린 로봇팔, 이동·용접 척척…선박제조 부품 생산량 87%↑
조선소·제철소·양극재 공장서 실전 작업
“2030년까지 AI공장 500개 이상 구축”

주황색 로봇팔 세 대가 차례로 움직였다. 첫 번째 로봇이 철제 부품을 집은 채 앞으로 길게 이동해 내려놓자, 두 번째 로봇이 그 부품을 다시 들어 용접 작업대로 옮겼다. 세 번째 로봇이 다가서자 곧 푸른빛이 번쩍였고 불티와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난 12일 울산 동구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중형선사업본부 선각5공장에서 만난 황상민 중형선자동화혁신부 선임은 “비전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로봇이 부품을 촬영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그 정보를 ‘눈 없는’ 로봇에 전달해 용접 등 부품 제작을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로봇들이 함께 만드는 이 철제 부품은 블록(배의 일부를 이루는 대형 구조물)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릴 때 블록과 인양 장비를 연결하는 ‘러그’다. 거대한 크레인과 도크, 선박 블록이 들어선 조선소에서 러그는 비교적 작은 부품이지만 배를 만드는 데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에이치디현대중공업이 가동 중인 ‘러그 자율제조 시스템’은 산업통상부의 제조 인공지능 전환(M.AX·맥스) 지원이 생산현장에 적용된 사례다. 회사는 이 시스템으로 실제 선박 건조 공정에 쓰이는 러그를 양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지컬 인공지능’이 실증을 넘어 실제 생산에 돌입한 것이다. 시스템 도입 뒤 러그 생산량은 기존보다 87.5% 늘었다.
지난 11~12일 울산 에이치디현대중공업과 포항의 포스코·에코프로 현장을 둘러보니, 제조 인공지능은 업종마다 다른 모습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맥스는 제조업에 인공지능을 접목하고, 현장에서 검증한 기술을 공급망 전반으로 넓히려는 산업부 정책이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안전로봇실증센터에서는 포스코 원료공장에 투입할 벨트 컨베이어 점검 로봇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 로봇은 롤러의 소리와 열 등 고장 징후를 분석하고, 설비 가동을 멈추지 않은 채 고장 난 롤러까지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는 사족보행 로봇이 풍구 주변의 고온 설비 사이를 돌아다니며 온도와 가스 누출 여부를 살폈다. 포스코는 사람이 고온의 쇳물 가까이에서 하던 온도 측정과 시료 채취를 이동형 양팔 로봇에 맡기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에코프로의 포항 배터리 소재 생산단지에서는 인공지능이 품질을 예측하고 로봇이 설비를 점검했다. 양극재를 고온에서 열처리하는 소성로 주변을 자율이동로봇(AMR) ‘티포이’가 돌며 음향·열화상·영상 센서로 배관 누수와 설비 이상 징후를 살폈다. 고온과 분진이 많은 환경에서 사람이 하던 일상 점검을 자동화하는 것이다. 회사 쪽 설명을 들으면 약 200개 점검 항목 가운데 70%가량을 로봇으로 점검할 수 있다.

기업들 설명을 종합하면, 국책사업의 이점은 자금 지원에만 있지 않았다. 인공지능 전환을 앞당기고 적용 범위를 넓히는 역할도 했다. 포스코 과제에는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로봇·센서 업체, 대학 등 10개 기관이 참여한다. 포스코가 실제 제철 공정과 데이터를 제공하고, 참여 기관들이 로봇과 센서, 고장 징후를 미리 찾아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나눠 개발해 현장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구조다. 에코프로비엠 과제에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정보기술 업체 등 6개 기관이 참여해 데이터 플랫폼과 인공지능 학습데이터, 품질 예측 모델 등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현장에서 검증한 기술은 다른 공정과 산업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포스코는 로봇과 센서, 디지털트윈을 하나의 운영체계로 묶어 모듈형 제품으로 만들고, 시멘트 공장과 화력발전소 등 비슷한 설비를 쓰는 산업에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에이치디현대중공업은 공동 개발한 시스템을 표준모델로 만들어 협력사와 중소 조선업체가 활용하도록 하고, 러그 자율제조 기술을 다른 공정에 적용하려는 협력사에는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품질 예측 과제로 개발한 기술을 생산·품질·설비·안전을 아우르는 자율제조 라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결국 산업부가 ‘맥스’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제조 인공지능 전환은 대기업 공장에 로봇 몇 대를 넣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술 개발과 현장 실증의 부담을 여러 기관이 나누고, 검증된 기술을 다른 공장과 산업으로 넓히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궁극적으로는 개별 공정을 넘어 제조 전 단계를 인공지능으로 연결한 ‘풀스택’ 기술을 구축해 최고 수준의 자율공장인 ‘다크팩토리’를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산업부는 2030년까지 자율제조 인공지능 공장을 500개 이상 구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번에 찾은 세 기업의 제조 현장은 산업부가 맥스를 통해 그리는 완전 자율화의 초기 단계에 있었다. 제조 현장 곳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었다. 이 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곳은 조선소였다. 12일 오전 10시께 자전거를 탄 작업자 세 명이 에이치디현대중공업 울산 사업장 안을 가로질렀다. 멀지 않은 곳에는 작업자들이 넓은 조선소를 오갈 때 쓰는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빽빽하게 세워져 있었다. 다음 주 진수(건조도크에 물을 채워 배를 띄우는 작업)를 앞둔 초록색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위와 주변의 작업자는 눈대중으로도 20명을 넘었다. 이 조선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20대 작업자는 “선박의 어두운 밀폐공간에 기어 들어가 용접하거나 녹을 제거하는 작업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며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작업이 많다”고 말했다.
에이치디현대중공업은 현재 러그 제조와 같은 정형 작업에 집중된 인공지능·로봇 적용 범위를 건조도크 주변과 선박 외부 등 작업환경과 부재가 제각각인 비정형 작업으로 넓힐 계획이다. 윤대규 에이치디현대중공업 중형선사업본부 상무는 “비정형 작업은 제품과 작업환경에 맞는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다”며 “사족보행·이족보행 로봇 등을 활용해 지금은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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