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경찰” 몰고 얼굴 촬영까지…잠실 시위에 상처받은 현장 경찰 [채민석의 경솔한이야기]
시위대의 공권력 무시에 ‘눈물’
강경대응도, 상황방치도 어려워
내부망에는 지휘부 비판글 쇄도

“경찰이 실책을 책임지고 고쳐나가면서도 우리가 그로 인해 나약해지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 섞인 시도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상 초유의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당초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고 자발적으로 모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관리 부실을 규탄하는 성격의 시위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지도부가 부재한 상태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집회 참석 인원이 줄어들자 점차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아스팔트 보수가 시위에 참가하면서 정치색도 짙어졌다.
시위에서 정치색이 드러나는 일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공권력을 무시하는 상황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을 향한 분노의 화살이 질서 유지에 나선 경찰한테 돌아가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핸드볼경기장 앞을 막고 있는 경찰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거나, 특정 경찰관에게 ‘중국인’이라고 하는 등 시위대의 행동과 언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격해졌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의 얼굴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허위 사실과 함께 올리기도 했다.
시민들이 잠실에 모인 이유를 알고 있는 경찰 입장에서는 강경하게 대응하기도, 그렇다고 경찰관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방치하기도 어려웠다. 경찰 지휘부가 대응 수위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현장 경찰관들은 장비를 챙기기 위해 핸드볼 경기장에 입장하려고 하는 유소년 핸드볼 선수들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곤혹을 치르는 상황을 제대로 제지하지 못했다. 결국 시위대는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경찰이 이럴 때 출동을 안하면 어떡하냐’는 불만이 나왔다. ‘국민을 위한 경찰’이 모두에게 욕을 먹는 상황이 온 것이다.
억울함은 온전히 현장 경찰관의 몫이 됐다. 이달 5일 현장에서 시위대에 둘러싸여 “무전 해봐라”, “왕따냐” 등 모욕을 당하고 ‘중국 경찰’이라는 오해를 받은 당사자인 서울경찰청 2기동단 경비과장 김민규 경정이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은 이러한 억울함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다. 김 경정은 “추락한 교권 회복을 위해 교사들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제는 우리의 인권과 자존심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추락했다면 이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시위 양상은 어디까지 경찰이 용인해줄 것인지를 시험하는 수준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며 “그만큼 경찰에 가해지는 압박이 험악해질 것이고, 우리의 인내심과 자존심은 그것을 견뎌낼 만큼 대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경찰청은 이달 9일 언론 공지를 통해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정당한 의사 표현은 최대한 존중하고 적극 보호하되 시민, 기자, 경찰·소방 등을 대상으로 한 폭행·명예훼손·강요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뒤늦게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찰관을 ‘가짜 경찰’로 몰거나, 욕설을 하고, 심지어는 감금과 폭행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한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도 없고 용납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백주 대낮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찰관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경찰관은 선글라스나 마스크 등 장비를 착용한 것과 관련해 시위대 사이에서 ‘왜 경찰이 얼굴을 가리냐’는 의심이 나오자 경찰 지휘부에서 장비 해제 후 현장 투입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극성 시위대는 현장 경찰관을 보면 직무집행 대상자가 아님에도 마구잡이로 지나가는 경찰의 얼굴을 찍고 관등성명과 한국어를 해보라고 한다”며 “경찰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악성 유튜버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이 힘들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관의 말실수와 찰나의 짜증을 촬영하고 그 것을 기회삼아 영상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경찰관 얼굴 앞에 담배 연기를 뿜는 사람도 있고 수많은 사람이 얼굴 앞에서 불만을 드러내니 경찰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선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경찰관이 시위대에게 휘둘리는 모습에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경찰관이 시위대에게 근무교대 투입인원을 알리고, 철수하거나 잠시 자리를 이동할 때 시위대의 허락을 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지휘부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랑 마스크 1장에 의존하는 경찰이 됐다’는 한 경찰관의 분노가 수만 명의 경찰관에게 공감을 받는 일도 생겼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관은 물론 이를 지켜본 동료 경찰들의 사기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경찰이 가지고 있는 것은 텅 빈 공(空)권력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오고 있다. 경찰관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제복을 입은 한 시민이지만, 결국 누군가의 폭력행위를 묵인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가장 먼저 희생을 당한다는 현실이 근무지로 향하는 경찰관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있다.
한 지역 경찰서 직협 회장은 “이번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무고한 경찰관들만 국민 욕받이가 되고 화풀이 대상이 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참아야하는지 모르겠다”며 “국민 참정권이 침해돼 구제를 받으려면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받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 공권력을 경시하고 우습게 보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공무집행방해죄를 세분해서 사법기관종사자공무집행방해죄를 신설해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에 대해 폭행, 협박, 위계, 위력 등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경우 현행 처벌 규정보다 더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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